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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Jul 06. 2024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고

재미있는 안톤 체호프 작품

  

 안톤 체호프를 알게 되었는지는 몇 년이 되었고, 로쟈를 통해서 체호프의 세계관을 공부했었고, 예전 이순재 선생이 <갈매기>1)를 가지고 연극한다는 걸 알았지만, 정작 체호프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안톤 체호프 저서를 선택한 이유는 그의 작품관에는 ‘유쾌함 속 진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2)을 읽기 전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가 추구하는 유쾌함이란 무엇이며, 그 속에 진지함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기대했다.

 <여인>의 스토리는 여주인공의 인상착의와 같이 다니는 개를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 불렀다. 남주인공 ‘드미트리 구로프’는 시립공원과 네거리 광장에서 하루에 여러 차례 간 그녀를 보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똑같은 베레모를 쓴 채 하얀 스피츠를 데리고 혼자서 산책을 했다.”(p. 205)

 드미트리는 40살 전이었고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 둘이 있었지만, 자신의 아내에게 구박을 많이 받아서인지 집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남자였다. 아내를 싫어했지만 두려워한 남자는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것을 싫어했다.

 조강지처 없이 떠도는 남자는 당연하게 외도를 택했다. 드미트리의 외도는 아내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외도로 풀고 있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만나는 여성들을 보고 ‘저급한 종족’이라 불렀지만, 그는 “‘저급한 종족’이 없이 단 이틀도 살 수가 없는 위인이었다.”3)

 드미트리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드미트리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오랜 외도를 통한 그의 노련함은 그녀와 대화를 끌어내기 충분했다. 대화를 통해서 드미트리는 그녀의 이름이 ‘안나 세르게예브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안나를 어느 정도 꼬신 드미트리는 그녀와 함께 식사하고 조금 걸었다.

 그들은 이야기하고 난 뒤 헤어졌다. 집에 온 드미트리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웃음이 얼마나 겁이 많고 부자연스러웠던지”를 눈치채고 그녀에게 ‘애절한 무언가’가 있다고 추측한 뒤 잠을 잤다.     

 그녀를 알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드미트리와 안나는 축일에 재회하게 됐다. 그날은 밖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악천후와 끔찍한 더위가 함께했던 여름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날씨가 진정돼 증기선이 들어오는 것을 보러 방파제로 나갔다.

 방파제에서 많은 군중이 흩어졌지만, 드미트리와 안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안나는 말이 없었고, 드미트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꽃향기를 맡았다. 이 순간이 아마 흔히 말하는 썸 타는 사람들의 정적이라 생각한다. 이 정적을 깨고 다음으로 넘어간다면 연인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썸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점의 분위기를 진작에 눈치챈 드미트리는 “저녁이 되니 날씨가 나아졌네요/ 이제 어디로 갈까요? 어디 좀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p. 210)라는 수작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수작질에도 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나의 무반응이 드미트리에게는 긍정의 신호로 비쳤던 걸까? 드미트리는 안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갑자기 그녀를 안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혹시 누가 그들을 보지는 않았을까.”(p. 210) 바로 겁에 질린 듯이 주위 눈치를 살펴보았다.4)

 이후 드미트리는 “당신 방으로 갑시다.”(p. 210)라며 조용히 말했다. 안나와 드미트리는 재빨리 걸어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안나의 방에 도착한 드미트리는 그녀의 방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그 공간에 관한 생각과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드미트리는 많은 여성과 관계를 이어갔다. 불륜 초창기에는 드미트리도 행복하고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들의 표정이 맹수같이 변하고 “인생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얻고 쟁취하려는 듯한 고집스러운 욕망을 드러내곤 했다.”(p. 211) 이러한 모습을 본 드미트리는 그녀들에 대한 감정이 식었고, 그녀들의 아름다움이 증오로 불러일으켜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달랐다. 여전히 한결같았다. “여전히 똑같은 소심함, 경험 없는 젊음의 서툰 대응, 어색한 감정만을 보이고 있다.”(p. 211) 그들의 성관계가 끝난 뒤 안나는 불안해했다. 안나는 “이제 당신이 먼저 저를 존중하지 않으실 거예요./ 하느님, 용서해주세요!”(p. 212)와 같은 말이나 자신은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안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려있는 안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키스를 하고 그녀를 달랬다. 그러자 그녀도 조금씩 진정되면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웃기 시작했다.”(p. 213)     

 ―초반부긴 하지만― 해당 부분까지가 <여인>의 핵심적인 부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여인>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진정한 사랑―혹은 자아실현―을 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여태까지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5) 도덕적인 선을 넘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은 불륜 관계를 꽤 오랫동안 이어온다.

 불륜 관계를 이어온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아닌지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했었고, 그녀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말을 했었다.6) 하지만 그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7) 그러니 헤어진 뒤 몇 달 이후 갑작스럽게 재회했어도 안나는 드미트리를 모른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들의 사랑을 확신한 후에 진정한 사랑을 시작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의논하며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서로 다른 새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아 있으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두 사람 모두 분명히 알 수 있었다.”(p. 229)

 그들의 자아실현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것이고,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존재의 고상한 목적과 인간의 가치를 망각한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하면,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은”(p. 215) 아름답기에 그들은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체호프의 작품은 장편 소설로 이어지는 ‘이념’이나 ‘행동’을 인물에 부여하지 못해서 드라마를 썼다. ‘이념’이나 ‘행동’을 인물에 부여하지 못하니 당연히 ‘설교적인’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보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8)를 많이 썼다.9)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가 아닌 두 사람 사이에서 격정적인 일들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념’의 경우 ―억지일 수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진정한 무언가를 추구한다.’를 잘 보여준 교훈적인 작품이었다.

 만약 톨스토이처럼 <여인>의 초장만 보았을 때 ‘단순한 불륜극’이라 생각하고 곱씹지 않으며 작품을 읽었다. 하지만 불륜은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정말 진정한 사랑 혹은 바보들의 사랑을 알고 싶다면 <여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


 <여인>이 다양한 함의를 가지고 있지만, ー필자가 알고 있기로는ー 톨스토이를 까는(?) 소설로 알고 있다. 본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국, 진정한 사랑이든 바보같은 사랑이든 간에 어떠한 행위는 한 끗 차이 혹은 시점에 차이로 갈리는 것 같다.ー내가 하면 유쾌한 불륜이고 남이 하면 윤리의식도 없는 더러운 불륜인 것 처럼.

 인간의 시점은 참 갈대 같다.




인용문구


1) 안톤 체호프의 작품

2) 안톤 체호프. (2010). <사랑에 관하여>(안지영, 역). 웅진씽크빅. (원본출판 n.d.)/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이하 <여인>으로 표기하겠다. 그리고 본 책을 인용할 때 페이지만 표기하겠다.

3) 오히려 남성들과 있을 때 말을 잘 못 했으며, 여성들과 있을 때는 어떤 타입의 여성이라도 호감을 끌어냈다.

4) 이러한 겁과 관련된 이야기는 추후에 따로 서술하겠다.

5) 드미트리의 경우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안나의 경우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안나도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된 까닭은 “한 번 더 당신을 보게 해줘요……. 한 번 더 볼게요. 이렇게요. / 당신을 생각하고…… 그리워할 거예요.”(p. 216)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그녀 또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인 게 확실하다. 정말로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6) 안나는 “이제 당신이 먼저 저를 존중하지 않으실 거예요.”(p. 212)와 같은 의심을 했었고, 드미트리가 안나를 “존중하지 않고,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며 속물스러운 여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끈질기게 요구”(p. 215)했다.

7) 안나의 사랑은 각주 5번의 안나의 말을 참고하길 바란다.

8) 이현우. (2014). <로자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현암사. p. 285

9) 더 엄밀히 말하자면 “체호프의 인물들은 이처럼 주로 삶의 결정적인 기회를 두 눈 다 뜨고 놓쳐버린 가련한 ‘등신들’인데, 그걸 확인한 이상 차라니 ‘자살’이라도 하면 ‘비극적’일 테지만, 이 ‘등신들’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런 희망 없이 담담한 회한만을 가슴에 안은 채 예전의 일상적 삶으로 돌아갑니다.” - 이현우. (2014). 앞의 책. p.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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