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어떤 힘을 가졌을까?

보드리야르의 이론으로 알아보는 미디어의 힘

by Prosh 사회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



보드리야르는 보는 책이나 논문마다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해서 보드리야르 책을 읽게 됐다. 보드리야르의 책은 -최효찬(2016), 장 보드리야르, 커뮤니케이션북스. 참고함.- 시뮬라크르를 나름대로 이해했고, 재미있는 이론들이 많아서 흥미롭게 봤다.


이 글은 미디어의 힘을 말하는 글이지만, 보드리야르의 책의 이론을 다시 정리하는 글이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필자가 정리한 이론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1. 장 보드리야르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디어이론가이다. 1929년 7월 27일 프랑스 랭스에서 태어났다. 낭테르대학교에서 앙리르페브르의 조교로 일하면서 언어, 철학, 사회학을 공부했다. 1968년 기호학과 일상성 비판을 두 축으로 한 박사학위 논문 ‘사물의 체계’를 출간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1981년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발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이 외에도 여러 저작을 통해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실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리고 2007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1) 차이의 욕구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목적은 더 이상 본질에서 사용가치의 만족이 아니라 기호가치의 소비라고 말한다. 이 기호가치는 자신을 남들과 구별시켜주는 차이의 욕구, 차이의 소비를 지시한다.(본 책 1p.)

위 책에서 ‘광고는 사람들에게 차이의 소비를 부추기고 열망을 강박하게 한다. 그리고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광고는 억압과 배제 작용을 가한다.’라고 서술한다.(같은 책 5p.) 필자는 이 말에 심히 공감한다. 왜냐하면, 정말 가지고 싶은 물건을 광고하는데 가지지 못한다면 ‘나는 왜 저걸 못 가질까?’라는 억압이 생겨난다. 재미있는 점은 물건을 가지지 못하는 게 본질에서 불평등을 일으키는 게 아닌데 못 가지는 이들을 억압하고 ‘너는 나 못 가지잖아’라는 듯한 배제 감을 준다.

이러한 모습은 미디어가 사람을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소비를 할 때 자발적으로 한 것 같지만 미디어에 의해 조장된 욕구가 만들어져 소비할 뿐이다. 즉 조장된 욕망의 반영 물로서의 소비다.

차이의 욕구는 슬라보예 지젝의 ‘잉여쾌락’의 논리처럼 절대 채울 수 없다. 잉여쾌락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 명품의 소비다.


2) 미디어의 이야기

“이런 일은 노출된 지역에 사는 빈민들에게나 일어나는 법이야. 이 사회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자연재해나 인재의 주된 타격을 받도록 생겨 먹었어. (중략) 난 대학교수야. 당신 텔레비전에서 홍수 장면을 보여줄 때, 대학교수가 자기 동네에서 보트 타고 노 젓는 장면을 본 적 있어? 우리는 고상한 이름을 가진 대학 근처의 말끔하고 쾌적한 마을에 살고있어(DeLillo, 1986:199). 하지만 이는 독해 체계를 독점한 미디어가 만들어 낸 하이퍼리얼인데 글래드니는 이를 진짜 현실로 믿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러한 하이퍼리얼을 믿고 있지 않을까?”(같은 책 21p.)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를 가지고 설명했는데 미디어의 조작을 잘 설명한 예시이다. ‘하이퍼리얼의 리얼리티’에서 좀 더 설명하겠다.


2-1) 하이퍼리얼의 리얼리티

보드리야르는 TV와 영화가 만들어 내는 영상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는 실재인 하이퍼리얼을 재생산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같은 책 33p.)

이를 잘 보여주는 게 ‘9·11테러’다. “9·11 이후 미국은 아랍권 국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 실제로 과격 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시뮬라크르(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을 뜻함.)로, 이념적 구조 속에 놓여 있는기호로 추상화 됐다. 미국의 반이슬람 미디어 보도를 통해 과잉 이미지가 넘쳐나면서 이슬람 국가는 과격 이미지로 덧칠하는 시뮬라크르 자전이 이루어진다.”(같은 책 36p.)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인위적인 복사본이 아니라 ‘인위적인 대체물’ 개념으로 원본을 ‘재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원본’으로서 실재의 자리를 갈취할(뺏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9·11 이후 미국의 미디어 보도는 ‘아랍=테러리스트’를 만들어 버렸고, 당시에 아랍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Step’들이 존재하지만, 이 글을 보기만 해도 무슨 느낌인지 알 거라고 믿어 서술하지 않겠다.

이처럼 미디어는 ‘과장된 실재’를 만들어서 본인에게 유리한 부분만 보여주거나 보여줄 수 있고, 이러한 실재를 본 대중들은 여과 없이 수용한다. ‘뉴스(미디어의 보도)’라는 믿음의 존재는 우리에게 정보를 여과시킬 틈을 주지 않는다. ‘뉴스에서 그렇게 말하는데 이유가 다 있겠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과장되게 만들어준다.


3) 저지기계(혹은 저지전략)

본 책에서 나오는 저지기계 이론은 총 3가지 예시로 말해주는데 첫 번째는 ‘감옥’, 두 번째는 디즈니랜드, 세 번째는 ‘워터게이트 사건’이고, 필자가 제일 감명 깊게 본 이론이다.

우선 저지기계는 “파생 실재의 전략으로,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로 대체되어 버린 상황에서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가 아니라 실제인 척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부정적인 요소를 조작하는 작업”을 의미한다.(같은 책 44p.)

저지기계에서 첫 번째로 ‘감옥’을 알려줬는데, “감옥은 우리가 사회라는 거대한 감옥(억압)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감옥을 만들어 범죄자를 그곳에 집어넣고 수용함으로써 비 범죄자들은 감옥 밖에 있으니 자신들은 감옥이라는 억압된 공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같은 책 44p.) 사실 우리는 사회라는 억압된 공간에 있는데. 이처럼 감옥을 안에 만듦(부정적인 요소를 조작하는 작업)으로써 우리는 감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옥 밖에 있는 착각을 만들어줬다.

두 번째로는 ‘디즈니랜드’를 말했는데, 디즈니랜드가 존재함으로써 유아적 어리석음의 영역 바깥에는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합리성이 작동한다고 말하는 세상은 디즈니랜드처럼 유치하고 유아기적인 세상이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비이성적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 시에는 사회 자체에 혼란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유치한 세상에 있는데. 이처럼 디즈니랜드를 만듦(부정적인 요소를 조작하는 작업)으로써 우리는 ‘디즈니랜드’(혹은 놀이동산)에만 유아기적이고 유치한 세상이 있고 바깥세상은 언제나 정직하고 합리적인 것만 있는 착각을 만들어줬다.

세 번째로는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대통령 R.M.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된 미국의 정치적 사건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보드리야르는 워터게이트를 ‘도덕과 정치적 원칙’을 임시방편으로 되살리려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스캔들이라고 비판했다. 실재하는 현실의 정치적 부도덕성과 부패는 은폐되고, 정치 도덕의 질서가 새롭게 회복되었다고 국민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같은 책 55p) 워터게이트는 국민을 한쪽으로 밀어내기 위한 ‘수단’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보드리야르는 부도덕한 자본가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악에 상징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벌을 가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또 다른 광범위한 악들을 은폐시킨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같은 책 55p) 보드리야르의 이론에서 볼 때 워터게이트는 닉슨 라인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나쁜 놈’으로 몰림과 동시에 반(反)닉슨 라인 사람들은 ‘착한 놈’으로 몰리게 됐다. 중요한 건 닉슨 라인, 반닉슨 라인 사람들이 그전에 선과 악을 행했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워터게이트가 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닉슨 라인 사람들이 ‘면죄부’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광우병 파동 때 ‘미국산’ 소고기는 먹으면 안 됐지만, 그 외의 ‘호주’, ‘뉴질랜드’ 소고기는 그 덕에 안전한 소고기가 됐다. (실제로 당시에 안전한 소고기라고 홍보했다) 이처럼 ‘미국산 소고기’를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그와 관련된 자본과 자본가들은 악으로 분류됐지만, 그 외의 ‘호주’, ‘뉴질랜드’ 소고기는 악으로부터 일종의 ‘면죄부’를 받게 됐다. 말하자면 “미국산이 아니니 무조건 안전한 수입 쇠고기!”의 면죄부 말이다.


보드리야르 마무리

이 외에도 포르노그래피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보드리야르의 말보다는 다른 인물들의 이론이 더 많은 것 같아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의 성질을 지닌다. 시각적인 것은 결국 넋을 잃고 정신없이 매료되게 만든다.”(같은 책 73p)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시각적 매체가 전해 주는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우리는 ‘미디어에 의한 욕망’의 재현을 경험한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서 혁명은 절대 도래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소비인간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차이의 소비에 내몰려 욕구의 충족에 사로잡혀 반란을 꿈꿀 여력이 없다고 한다.(같은 책 82~83p)

하지만 그런데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성, 미디어 메시지를 읽어 내는 능력 즉 ‘미디어 독해력’을 가져야만 우리가 휘둘리지 않고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인간’이 ‘미디어 독해력’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미디어를 소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졌는데 역으로 지배당하는 모습늘 보면, ‘ 먼 훗날 AI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라는 말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조종당하지 않을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주제적인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최효찬(2016), 장 보드리야르,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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