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의견과 참고자료.
조선의 회화 작품을 통해 옛날 우리나라 미술은 서양 못지않게 의미와 치밀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서로주체성’을 가지고 근대로 나아갈 여지를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파리 시절 작품을 통해, 그가 서양화 양식에서 작품 형태나 청색을 통해 ‘한국의 美’를 보여주고 싶어 한 ‘의지’ 드러냈고, 말년에는 기존의 작품 형태를 벗고, 자신(개인)이 그리워하는 벗들을 생각하며 미술의 기본요소로 표현해 만든 ‘김환기’의 독창적인 ‘점화’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고상우 • 사석원 작가는 ‘근대 한국미술 작품 형태’를 뛰어넘어 ‘개인의 존재’와 ‘작품 속 개인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유하영 작가’의 작품은 동양화 요소 + 가족과 자신의 이야기를 통한 작품을 만들었고, ‘성다솜’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와 작품 형태, 인간 사회의 합을 통해 ‘타인’과 ‘나 자신’이 각각 존재함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나라 미술과 미론은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고, ‘추상 미술’ 또한 현대에 와서 포스트 모더니즘 • 엥포르멜의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추상 미술의 대표적인 형태 자체는 획일화가 됐고, 도그마 상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이런 식의 미술 흐름은 ‘누가 작품 속에 이야기를 잘 담았을까?’라는 형태이며, 1960~70년대 발생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미술가 • 미술 평론가들은 앞서 말한 형식을 탈피해야 합니다. 이를 탈피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된다면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립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잘 보이는 형태가 ‘고착화, 배척, 지적 허영심’입니다. 현대 예술계가 이러한 형태를 보이며, 현대 미술계를 술래잡기로 예를 들면, 술래잡기하는데,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이것도 몰라요?, 왜 몰라요?, 공부나 하시고 오시죠?’라고 답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참여를 안 한다면 ‘너희들이 우리랑 같이 안 노니까 인원수가 많이 없잖아, 너희가 관심을 안 줘서 우리가 게임을 못 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는 정말로 잘못된 태도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게임이론에서는 개인은 게임을 참가할 것인지 불참할 것인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데, 게임에 참가해도 불참해도 부정적인 태도, 작품이 관조적인 형태를 고수할 때 무분별한 추상, 자신의 것이 없는 비평은 ‘장난’에 불과하며 결국, 대중들은 이에 신물이나 게임을 외면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미술계는 이러한 태도를 벗어나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시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과 같은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미술을 자체적으로 재정립해 미술을 모르는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의 경우 자존적인 근대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 문학’과 ‘한국미술’의 연계성을 보였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나오는 친숙한 당대 문학가들과 미술가들의 연결을 보여줘 ‘미술 그렇게 안 어렵고 여러분들이 다 아는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온 거예요~’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분과 학문을 한국 문학에 들여오고, 자본적 세속적인 것을 벗어나려 하고, 인간이 이성적인 자각을 통해 한국 문학을 근대성과 탈근대성 문학으로 인도한 ‘이상’, 20년대 현실을 이미지화해 감정을 억눌러 한국 문학의 근대성과 30년대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하고, ‘선비 정신’을 통해 반(反) 근대성을 보여준 ‘정지용’ 등등의 근대 시기 문학가들과 미술가들을 엮어 기존에서 벗어난 한국 미학의 근대성을 보여줬습니다.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의 경우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선생 등등의 한국 미론에 기반하여 보인 전시회입니다. 물론 ‘고유섭, 최순우’ 선생의 경우 야나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김용준’ 선생과 같이 야나기의 영향에서 벗어난 미학자들을 통해 한국미술의 근현대를 재조명하는 전시회였습니다. 물론, 사전 지식이 있다면 미술을 더 풍성하게 볼 수 있겠지만, 한국 미론을 재정립한 전시회이기에 누구에게나 새롭고,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서양미술사’를 집필한 ‘곰브리치’는 “미술은 인간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미술은 기술의 학문이 아닌 인문학의 범주에 있는 학문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시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를 봤을 때 작가들이 미술에서만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닌 다른 인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화폭에 옮겨갔습니다. 1930년대 한국 시를 표현할 때 “1930년대의 시는 음악보다 회화이고자 하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미술과 문학은 접점이 많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미술 작품을 창의적으로 기발하게 창작하고 싶을 때, 미술 작품을 풍성히 감상하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은 ‘미술 기교의 이해’가 아닌 ‘인문학적 소양’입니다.
이번 발표는 ‘일본과 서양의 미론’을 최대한 벗은 발표입니다. 그들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서로주체성’, ‘동양철학 • 한국철학적’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했습니다.
현대미술은 아직도 진행 중인 미술 장르입니다. 그래서 말도 많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발표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안목이 더 깊고, 넓고,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저서는 「」 표시, 도록은 『』 표시함.)
고명섭, 김상봉(2015), 「만남의 철학」, 도서출판 길.
국립현대미술관(2021),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2021),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에른스트 곰브리치(2013), 「서양미술사」(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오주석(2016),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출판사.
오주석(2017),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솔출판사.
이충렬(2013),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유리창.
이현우(2021),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남성작가 편)」, 청림출판.
이현우(2021),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여성작가 편)」, 청림출판.
정현주, 김환기(2015),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예경.
최순우(2002),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학고재.
최열(201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도서출판 청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