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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언니 Jul 18. 2024

마주하기 싫은 곳, 산부인과

걱정되지만, 마주하기 싫은 나의 몸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증상으로 보아 흔한 질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지난 달 생리를 하지 않은 일도 떠올랐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왠지 11월이 시작되며 몸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산부인과 검진을 가보기로 했다. 혹시 폐경이 일찍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동네 산부인과 몇 곳을 검색하여 여의사가 진료하는 곳을 찾았다. 권선동 롯데마트 쪽에 두 곳의 산부인과가 있길래 끌리는 한 곳으로 발걸음했더니 외래 진료는 꼭 예약으로만 하는 곳이라고 하여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옆에 꽤 규모가 큰 산부인과가 또 한 곳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가보았다. 병원 특유의 냄새도 없고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곳이었다. 오래 전에 한 번쯤 와봤던 곳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공단에서 실시하는 자궁암, 유방암 검사를 해야 하는 연도라고 하여 그것까지 추가해서 검사하기로 했다. 진료카드를 작성하고, 간단한 문진표를 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은 여자 의사였는데 푸근하고 다정한 인상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부드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진료를 위해 옷을 벗고, 갈아입고, 여성들이 대부분 괴로워하는 그 ‘굴욕 의자’에 엉덩이 걸치고 앉아서 진료를 보았다. 한 달 가량 생리가 늦어진다고 했더니, 초음파 내진까지 하였다. 마흔이 훌쩍 넘고, 이제 오십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산부인과 진료는 불편함이 크다. 가능하면 가고 싶지 않은 병원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염증이 있다고 하는 소견과 함께 의사의 상담이 이어졌다.     

 

“아직 폐경은 아니시네요. 배란이 되었고 조만간 생리가 시작될 거에요. 그리고 지난 달 생리했다가 이번 달 갑작기 폐경이 되는 증상은 없답니다. 서서히 생리 주기가 늦어지거나 건너 뛰는 현상이 앞으로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염증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일주일간 약 처방해 드릴께요. 또 궁금하신 것 있으신가요?”      


친절한 어투로 환자를 배려한 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해주었고, 쉽게 알려주려고 하였다. 마음 속으로 ‘다음 번 진료에도 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유방암 검사를 위해 엑스레이 실에서 촬영을 하고 수납을 하고 설명을 들었다. 공단검사는 무료지만 초음파 검사비가 포함되어 8만원이 가까운 비용이 청구되었다. 다소 비싼 진료비 같아서 ‘내가 지불하는 돈에 친절함도 포함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일주일 치의 약값은 고작 4,400원.      


자궁암과 유방암 검사 결과는 한 달 뒤 나온다고 하지만 숙제같은 일을 해치운 듯하여 기분이 가벼워졌다. 이런 건 바로 별 것 아니지만 오늘의 기적같은 일 아닐까. 흐릿한 미세먼지 잔뜩 낀 하늘이었지만 낙엽밟으며 홀로 걷는 동네 길도 좋았다. 집으로 와서 밥을 해 먹고, 약을 챙겨 먹고 나니 대학원 출석수업 갈 시간이 되었다.      


삶은 언제나 불편함과 익숙치 않은 것과의 만남이다. 특히 일상에서 갑작스레 툭 하고 끼어드는 일은 예상치 않은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항상 알아차리면서 사는 건 아니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원래, 아니 모든 생명체는 ‘죽은 상태’가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찰나의 삶이고, 짧은 순간 동안만 생명현상이 주어진다. 한철 피어나는 꽃이나 풀잎도 짧게 살다가 소리없이 흔적없이 감동을 온 몸으로 마주하기만 하면 된다. 


사라진다. 그리고 시들고 썩어지고 흙이 되고 공기 중으로 어딘가를 유영하며 흘러간다. 그런 물질들이 또 어떤 화학작용과 물리현상에 의해 생명이 되고 또다시 순환하기를 반복한다.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생명력의 가능성은 그 자체로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기적을 깨닫고 삶의 감동을 온 몸으로 마주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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