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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언니 Aug 19. 2024

자비심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신 분

자비사에서 받은 법성스님의 마음을 기록하며... 


여름을 나기 점점 힘들어진다. 불볕 더위는 계속 ‘최고 온도’를 갱신해나가고 있다. 뉴스를 잘 보지는 않지만, 포털의 뉴스에서 더위로 인한 사건, 사고를 보도하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전 세계 곳곳이 뜨거운 가마솥처럼 찜통처럼 숨이 막힌다고 이야기한다. 도시의 여름은 더더욱 그렇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어디로든 가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 날씨다. 겨울에는 일부러 찜질방도 가고, 숯가마도 찾아가면서 더더욱 뜨거운 곳을 갈망한다지만, 폭염은 점점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여름이 더워진다면 어디에 가서 살아가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대도시를 떠나 숲과 산이 있는 곳,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원하다는 ‘대관령’ 같은 곳에 여름 별장이라도 사두어야 하나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세상사 나 몰라라 하고, 이기적으로 혼자만 잘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옆에 오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별 것 아닌 일에도 감정이 ‘훅’ 올라올 것 같은 날이지만 누군가의 정성스러움에 더위를 잠시 잊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이틀간 댓가없이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아도 되나’ 싶을 만큼의 사랑을 받았다. 저녁 대신 복숭아 세 개를 깎아서 배불리 먹고 나니, 적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조급증이 생겨 노트북을 열었다. 


경북 상주 ‘자비사’의 주지 법성 스님은 이틀 동안 싱글벙글한 미소와 함께 열 두 명의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계속 뭔가를 더 나누어 주시려고 애쓰셨다. 작은 절에 찾아 온 수행자들을 어찌나 환대해주셨는지 먹는 것과 잠자리, 그리고 집에 가는 순간까지 모두의 손에 선물을 그득 챙겨 주셨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통합치유학 전공생들의 집중수행을 위해 교수님과 인연이 있다는 ‘자비사’에서 이틀간 시간을 보내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감동이었다. 작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마을에 들어선 순간 ‘평온리’라는 마을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절 이름은 자비사. 자비와 사랑이 흘러 넘치는 곳 같다. 법성 스님은 청정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비춰지셔서 그런지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 얼굴 빛이었다. 절은 법당과 산신각, 스님이 거처하는 건물까지 합쳐서 작고 아담한 규모였다. 식당은 스님이 생활하는 공간이었기에 열 댓명이 비좁게 붙어 앉으면 될 정도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먹은 음식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자비사에 도착하자마자 복숭아, 단호박과 옥수수, 식혜까지 웰컴푸드를 내어 주셨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오전 명상을 마친 후 점심식사로 만들어 주신 냉면은 면이 초록색이었는데 시원한 육수와 함께 고명으로 수박, 사과, 계란까지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 근처에 국수 공장에서 파는 면이라고 하셨는데 사오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내려 주신 커피는 종이컵이 아니라 굳이 예쁜 커피 잔에 따라주셔서 호사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저녁은 비빔밥이었는데, 고사리, 취나물, 콩나물, 도라지, 버섯까지 골고루 들어갔다. 거기다가 미역과 오이냉국, 물김치까지 환상적이었다. 매 끼니 이렇게 잘 먹어도 되는가 싶을 만큼 밥이 맛있었다. 마음 속으로 다음 번 식사는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었다.      



절에서 하룻밤은 얼마나 평온했는지 꿀잠에 절로 들었다. 식탁을 다 치우고, 바닥에 매트를 깔아주셨는데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잤는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새벽 4시의 예불을 가고 싶었지만 몇몇의 선생님들만 참석하시고, 나는 잠에서 깨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잠결에 들렸던 목탁소리는 세상의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지켜주는 듯한 소리였다. 예불 이후 스님은 절 주변을 목탁 두드리면서 매일 걷는다고 하신다. 스님의 하루하루의 루틴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스럽고 의미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근처 복숭아 밭에서 가지고 오신 복숭아도 잔뜩 먹었다. 어느 순간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나길래 차려진 식탁을 보았더니 두부전, 버섯전, 감자전, 고추전까지. 색색깔로 만들어진 잔칫집 전이 놓여져 있었다. 김치도 여러 종류가 있고, 밭에서 갓 따온 오이무침, 청국장, 깻잎절임, 고구마순, 능이버섯 탕까지. 내 인생 최고의 아침상이라고 할 정도로 정성이 온전히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식사를 그냥 먹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감동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댓가없이 뭔가를 받는 게 익숙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세상의 논리를 뛰어넘어 그저 나누어 주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돈으로 환산하여 꼭 되갚을 것만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하지만 죄송하기도 했다. 그래도 맛있어서 꼬박꼬박 평상시보다 잘 먹게 되었다. 많이 먹어서 살찌겠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스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식사인 점심은 찹쌀 옹심이 수제비를 넣은 미역국이었고, 김치와 떡까지 곁들여졌다. 밖에서 사 먹는 것과는 비할 수 없는 맛 그리고 건강한 재료와 애정 때문인지 모든 것들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매 끼니 극진한 대접같은 밥상에 감동이 밀려오는데, 집에 가기 위한 헤어짐의 여정에서도 모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먼저 스님이 직접 담그신 솔잎청과 조선간장을 한 병씩 챙겨주셨다. 그리고 근처 과수원에서 수확한 복숭아까지 싣고 오셔서 봉지 가득 채워서 일일이 한 명씩 나누어주셨다. 시골 할머니가 챙겨주시는 것처럼 넘치도록 손에 들려 주셨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진언불교 종파인 자비사 법성 스님은 그림과 글씨도 대단한 실력이었는데, 직접 부채에 그림을 그려서 한 사람씩 나누어 주셨다. 반야심경 필사 노트와 염주팔찌까지 담은 선물꾸러미도 챙겨주셨다.       


뭔가 한 것도 없이 넙죽 받기만 했는데도 스님은 더 줄 것을 찾으시면서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셨다. 종교가 달라도 모든 이들을 포용해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넉넉히 먹을 것으로 사랑을 채워주신 스님을 잊을 수가 없다. 내 마음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절은 자비사가 될 것만 같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면 내 마음도 맑고 청정해질 것 같다. 마음과 몸이 허할 때 언제든 찾아가고 싶은 곳이 생긴 것 같다.      


자비사의 법당에는 ‘준제보살’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부처라고 한다. 천수경에 나오는 보살로, 산스크리트명은 춘디(Cundi)이다. 준제(准提), 혹은 준니(准尼)로 음역 되며, 준제관음보살이라고도 한다. 부처의청정한 심성을 찬양하는 여성명사가 춘디(Cundi)라고 하는데, 모성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아이에게 젖을 주듯, 불보살을 키우는 어머니 보살의 이미지를 세 개의 눈과 열 여덞개의 손으로 형상화했다. 힌두교의 여신이자 시바신이 불교 속으로 들어와 준제보살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유래설도 있다.      



바로 법성 스님이 계신 ‘자비사’에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준제보살이 있는 건 분명한 뜻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나누는 이타심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덕목이다. 진정한 이타 행동이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자의 복지를 위해 능동적 의도로 수행하는 행동이다. 이는 인간사회에서 큰 미덕으로 칭송된다. ‘자리이타(自利利他)’는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져 일체감을 이룬 상태다. 듀크대학교의 신경과학 교수인 ‘브라이어 헤어’의 베스트셀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협력했고, 그렇기에 진화하는데 유리한 방향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타적인 행동이 뇌의 전대상피질에서 옥시토신 호르몬을 분비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사랑을 실현하는 것 자체를 생의 의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타적인 행위로 인생에 가치를 느끼고, 그러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감동적이다.      



일정이 없는 날이라서 하루종일 집에서 쉬면서 빈둥거렸다. 자비사에서 갖고 온 오이와 가지로 볶음요리를 하고, 복숭아를 다섯 개나 까서 배불리 먹으면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 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말하지만, 꼭 살아남기 위해 다정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진정한 공감과 배려와 나눔과 희생 등은 서로를 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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