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도록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어떤 슬픔은 언어를 통과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겉으로 표현하면 슬픔이 감량될까 입 밖으로 뱉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말 않기로 한다.
대신 잘 먹고 잘 자고 가슴에 품고서 오래오래 애도하기로 한다.
그 시간 들떠서 그 주변에 있었던 내가, 그곳에 갈까 친구와 들떠서 고민했던 내가.
운이 좋아서 발길을 돌렸다는 이유로 집에 있는 내가.
함께 사는 친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잘못이 없을까?
그 일을 정말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을까?
매년 이맘때가 되면 모두들 조심하라고, 되도록 가지 말라고 안내했던 방송이. 문자가.
당연하다고 여겼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안일했을까.
이십 대 후반인 나의 친구고, 동생일 텐데.
미안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왜 항상 있었던 일 마저 대비하지 못했을까.
국가의 무능이 너무나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또다시 깨닫는다.
성인이 되던 해에 뼈저리게 느꼈던 일을 또다시 겪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을 거라 다짐했는데.
모두들 그러게 왜 그곳에 있었냐고 한다.
묻고 싶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당신들이 즐긴 젊음, 청춘.
숨죽여 지냈던 지난 시간 숨소리도 조심히 골랐을 아이들이
어디서 젊음을 내쉴 수 있느냐고.
우리가 기지개를 켜는 곳은 인터넷이었다.
현실이 아닌 가상. 화면 뒤. 기계의 안.
언제부터 그곳이 우리의 전부가 되었을까?
요청한다. 부디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것을 허용해줄 것을.
우리의 움직임이 객기가 아닌 안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되길.
어른들이 말하는 청춘과 젊음의 열기를 자유롭게 누리는 나라가 되어주길.
노는 것을 잘 배우는 나라가 되길.
숨 가쁘게 달려온 이십 대는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청춘의 찬양과는 사뭇 달랐다.
늘 부족하고 비교되고 열악한 상황에서 잠도 못 자고 공부하고 일하기가 일쑤.
공부, 일, 돈이 아니면 모든 것이 필요 없는 이물질 취급받는 세상.
그런데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부디 젊음이 웃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