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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24. 2023

탈피하는 매미, 본 적 있나요?

매미의 꿈

혜숙 님께서 자작시 한 편을 보내주셨다. 탈피라는 시우 작가의 글에 영감을 받아, 혜숙 님은, 따뜻한 봄볕 아래 새 잎을 터뜨리는 떡갈 고무나무를 단아한 시로 창작해 냈다. 선선한 아침 공기와 더불어 시 한 편에 기분이 맑아졌다. 탈피의 릴레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혜숙 님께서 기어코 나를 끌어들이셨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두 해 전, 딱 이맘때쯤에 봤던 생생한 광경이 번뜩 떠올랐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잠을 자는 게 싫어서 나는 캠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코를 뻥 뚫리게 하는 신선한 나무 냄새와 온통 초록에 둘러싸여 무념무상되는 순간은 참 좋다.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불멍을 하며,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에 취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녹음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장작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깜깜한 밤이 뼛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어 함께 불을 쬔다.


두 해 전, 동네 이웃과 캠핑을 갔다. 주립 공원에 마련된 캠핑장이라 숲이 울창했다. 그러나 캠핑장에 도착하자마마자 정체 모를 냄새가 코끝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비가 왔었는지 땅도, 공기도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해가 쨍한 날이었는데도 녹음이 우거져서 음산한 것이, 캠핑 장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후 느지막이 텐트를 쳐놓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스멀스멀, 그것들이 몰려왔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땅을 뚫고 매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껍질을 벗어던지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는, 아직 매미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매미들이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자, 어린 매미들이 내 다리로 자꾸 기어올라왔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매미가 사방에 깔렸다. 그리고, 몇 시간에 한 번씩 플래시로 비춰봤는데, 껍질을 벗어던진 유약한 아기 매미들이 매 순간 색깔을 바꾸어가며 진화를 하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어른 매미로 탈바꿈하다니, 정말 경이로웠다.


오름 본능에 충실한 매미들은 내 다리로, 그리고 텐트 위로 열심히 기어올랐다. 텐트가 매미에 에워싸였다. 매미의 행군은 밤새도록 진행되었다. 수백 마리가 맴맴 미친 듯이 울며 나무를 찾아 행군했다. 그중 얼마나 많은 매미가 그들의 목적지인 나무에 잘 안착했을까. 밤새도록 울려 퍼지는 매미 떼의 소리에 잠을 설치면서, 그들의 숙명에 대해 생각해 봤다. 수년 간 땅속에 묻혀있다가 겨우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어떤 매미들은 목적을 이루고, 또 어떤 매미들은 나무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고 생각하니,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린 매미의 시체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공기는 여전히 눅눅하고 쌀쌀했다. 공동묘지에서 눈을 뜬 기분이었다. 나무 오르기에 성공한 매미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목청껏 질러대고 있었다. 맴맴맴! 치열한 사투의 흔적이 널려있는 캠핑 장소에서 아침을 먹고 있자니, 목이 막혔다. 얼른 짐을 꾸려서 캠핑장을 떠났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탈피라는 제시어 때문에 잊고 있었던 매미가 떠올랐다. 그때 찍어 둔 사진을 찾아보니 여전히 봐도 봐도 신기하다. 저렇게 여린 몸뚱이와 날개에 삶의 의지를 담고 탈피를 했다. 어떤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 채, 탈피를 하고 홀로 묵묵히 걷는다! 


껍질을 겹겹이 쓰고 있는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껍질을 쓰고 있는 것일까. 두려움의 껍질이 한 겹, 안주하는 껍질이 또 한 겹, 권태의 껍질이 한 겹, 나태함의 껍질이 한 겹, 너무 오래되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껍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나의 껍질은 아주 단단하다.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세상 안전하다. 탈피를 하면 다칠 수도 있다, 죽을 수도 있다. 잘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다. 탈피를 하고 싶은가. 탈피를 하지 못하겠는가. 누군가가 예리한 칼날로 나의 껍질을 찢어주기를 바라는가. 


껍질 안에서 꼼지락꼼지락 바동거린다. 떡갈나무가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와 톡 터지고, 매미가 탈피를 하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동안, 나는 단단한 껍질 안에서 오늘도 꼼지락꼼지락. 작은 바동거림이 단단한 껍질을 무르게 만들기 바라며, 꼼지락꼼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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