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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Sep 29. 2024

공부

지나고 보니 가장 잘한 게 공부였다나고 보니 가장 잘한 게 공부였다

공부가 그렇게 하기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가장 잘한 게 공부였다

공부로 승부를 봤으면

뭐라도 됐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공부를 버렸다


눈물 꾹 참으며 하기 싫어도 공부했다

가난한 집 딸이 눈에 띄려면 뭐라도 잘 해야 했다

다행히 공부 머리가 있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공부 방법을 터득했다

시험 기간 이 주 전

앉은뱅이 밥상 앞에 앉은 새벽이 그렇게 고요했다

오십팔 명 중에 키 오십팔 번 꼴찌

작고 볼품없는 가난한 집 딸을 선생님은 본체만체했다

오십팔 명 중에 석차 오 등

선생님이 그래도 모범생이라고 눈길 한 번 줬다

소극적이고 인기 없는 이름 모를 학우에서

공부 잘하는 학우로 이름이 알려졌다


가난한 집 딸에게 중학교 삼 학년 담임 선생님은 관심이 없었다

여고 대신 여상에 입학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께서 무지한 나와 부모님께 일깨워 주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너는 공부를 잘하니 공부를 계속하라고 꿈을 꾸라고

선생님은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여상에 입학한 후 공부가 지루했다

윤리 선생님께서 말했다

이 학교는 우수생이 와서 바보가 되어 나가는 곳이다

선생님이 틀렸다

가난한 집 똑똑한 아이들은 졸업 후 취직했지만

결국 제 갈 길 찾아갔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겉멋이 들어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화구박스 들고 다니면서 부잣집 딸 놀이를 했다

현실은 참담했다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한 회사보다 못한 직장을 전전했다

소설을 쓰겠다 영어를 익히겠다

꿈은 또 넘쳐났다

공부로 승부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러 직장을 거쳐 마지막으로 은행에서 일하다가

목이 콱콱 막혀 회사를 때려치웠다

이번에는 여행에 미쳤다

돈이 바닥났을 때 영어 강사가 됐다

어쩔 수 없이 공부했다

토익 점수를 만들고 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잔꾀를 굴려 공부하는 시늉만 하면서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사가 될까 잠시 생각했지만

학비가 아까웠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이걸로 됐다며 잘난 체했다


딸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내 생애 처음으로 공부가 하고 싶었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예전처럼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나는 진심인데 내 머리는 녹슬어 기능이 마비됐다

딸은 그것도 모르고 유치원 학부모 날에 발표했다

우리 엄마는 공부를 가장 잘해요

밤을 꼬박 새우며 영상 강의를 시청했다

1.5배 속으로 강의를 듣는 동안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초 집중했다

그러다가 이명이 찾아왔다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학업을 포기했다


공부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맞으면서 틀리다

나는 지금 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나

가끔 글을 쓰는 게 공부인가

영어 원서를 읽는 게 공부인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머리를 쓰는 게 분명하지만 소극적 두뇌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노트 펼치고 펜으로 메모하면서 암기하려 들지 않는다

독해지지 않는다

공부하느라 홀로 맞이하던 새벽, 그 고요한 정적이 그립다

미치도록 공부하고 싶지만 공부하는 게 두렵다


공부를 했으면 분명 내 삶이 지금과 달랐을 테다

이타심을 발휘하는 전문직 사회 구성원이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중학교 삼 학년 내 인생 첫 갈래 길에서 내가 한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자만했다

그 선택 덕에 남편을 만났다며 위안했다

공부를 폄하했다.


공부를 버린 삶에 미련이 남는다

나의 어리석음이 이제야 보인다

공부만 그랬을까

잘난 게 없어도 당당하다면서

잘난 척하는 내가

미련한 내가

그간 놓친 게 얼마나 많을까

침침한 눈을 껌벅거리며

허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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