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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육복근 Feb 22. 2024

가해자 없는 죽음

톱스타 A씨는 '국민 연예인'으로 불린다. 무엇보다 10대부터 40대까지 남과 여 모두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그를 칭송하는 연예인이다. 사건의 발단은 A씨의 외삼촌 B씨로부터 시작됐다.


A씨와 B씨는 가까운 사이다. 모두에게 외삼촌은 애증의 존재이지 않을까. '엄마'와 같지만 조금은 '철 없는' 그런 존재, 그러면서도 또 친숙한 존재가 외삼촌이다. B씨에게 있어 A씨는 대단한 자랑거리일 것이다. B씨는 A씨의 이야기를 이곳저곳 항상 하고 다닌 사람이었다.


"내가 A씨의 광고를 연결해줄 수 있다" 어느샌가 B씨의 이야기는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사람이 사업가 C씨다.


C씨는 건실한 중소기업 사장이다. 그가 생산하던 제품은 업계에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었고 펜데믹이라는 '호재'까지 겹쳐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품에 '국민 연예인' A씨가 광고를 해준다면 업계 정상이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B씨는 C씨에게 호언했다. "내가 A의 외삼촌이니, 내가 부탁하면 분명히 광고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C씨는 B씨가 실제 A씨의 외삼촌인 사실도 확인했다. 자신의 성공 커리어는 쉽게 풀릴 것으로 예상했다.


B씨는 조건 하나를 더 내걸었다. "어차피 A의 소속사와 광고 계약을 맺으면, 기타 조건 등등으로 인해 떼어주는 돈이 있고 금액을 더 지불해야 할 거야. 그걸 감안해서라도 선계약금 명목으로 나에게 몇억원 좀 넣어줘"


C씨에게 있어 A씨가 자신의 제품 홍보를 해준다는데 몇억원이 문제일까. 광고 계약만 성사된다면 몇십억원, 아니 몇백억원을 벌 수도 있는 기회였다. 그만큼 A씨는 국민 연예인이 맞으니까.


C씨의 몇억원의 돈이 B씨의 계좌로 들어갔다. 그렇게 A씨와 C씨의 광고계약이 원만히 성사됐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났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시간은 약 일년 정도가 더 흐른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비극이다.


C씨는 B씨의 말만 믿고 공장 라인을 늘렸다. 그리고 가동되지 않았다. 손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B씨는 C씨의 연락을 회피하진 않았다. A씨의 소속사 앞에 데려다 주거나, 실제 A씨가 살고 있는 거주지 앞까지 찾아가거나, 이와 비슷한 미팅을 잡아 주었지만 온갖 핑계가 이어졌다.


이 와중에 실제 A씨의 친척들이 C씨의 공장에 방문하거나 A씨의 친척을 임원으로 앉혀 달라는 B씨의 부탁을 들어주는 등 C씨는 B씨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C씨도, B씨도 절규했다. 돈을 이미 준 쪽도, 받은 쪽도 함께 절규했다. 그래서 B씨가 내놓은묘책은 기이했다. "나를 고소해. 나를 고소하면 A씨의 가족들을 비롯해 누나들(A씨의 엄마, 이모)이 도와줄거야.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해결해주겠지. 그러니까 나를 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고소해봐"


기이한 작전은 그대로 실행됐다. B씨를 향한 경찰의 수사는 시작됐다. 하지만 A씨의 가족·친척들은 B씨를 도와주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 몰린 것은 결국 B씨와 C씨뿐이었다.


이 때부터 B씨의 히스테리가 시작됐다. "해결해달라"는 C씨의 답장에는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건 자신의 셀카 모습과 유서를 찍어 보냈다. "죽음으로 해결하겠다"는 답장과 함께.


C씨 부부를 만난 시점은 사건이 이 정도로 흘렀을 시점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건실하게 운영되는 기업이 B씨의 말만 믿다 결국 부도 위기까지 가게 됐습니다. B씨뿐 아니라 A씨의 친척들에게도 민사 소송을 제기할 생각입니다" 자신의 아내까지 그간 마음고생으로 결국 병을 얻었다고 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앞서 수많은 연예인들이 가족이나 친척들의 '빚투' 폭로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연좌제냐, 책임이냐는 갑론을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일단 소장이 완성되면 보내달라고 했다. A씨 소속사에도 연락해 상황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상황이 어찌됐든 C씨의 상황은 딱해 보였다.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셀카를 찍었던 B씨의 처절한 눈빛 또한 뇌리에 박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처절한 눈빛이었다. 그 또한 막다른 길에 몰린 처절함이 눈빛 하나로 느껴졌다.


보통 이런 자살 소동을 벌이는 사람은 실제로 죽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 사기꾼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기를 빠져 나가려는 방법을 쓴다는 것 또한 안다. 다만 B씨의 그 처절한 눈빛이, 그 처절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C씨를 만난 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B씨가 죽었습니다. 정말로 죽어버렸네요"


장례식장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안치된 이는 B씨가 맞았다. 아, 이렇게 급작스럽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C씨의 절규가 이어졌다. "우리... 이제 돈 어디서 받아야 하나요. 우리는 이제 어찌해야 하나요..." 나즈막히 옆에서 아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 앞에서 막막해지는 건 C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피해자일까. 자신의 의도와 달리 자신의 이름이 이리저리 팔리던 A씨일까. 결국 죽음이란 선택까지 한 B씨일까. 아니면 이제는 정말로 돈을 되돌려 받을 방법이 사라진 C씨일까.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 상황인 것 같다. 잔인한 상황이다. 현 상태로서 가해자는 남아 있지 않다. 자신들의 원망을 들어줄 이도, 속 시원하게 책임져 줄 이도,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기사로는 어느 한 줄도 나갈 수도 없었다. 이 사건은 그렇게 내 수첩 깊숙한 곳에 숨겨졌다.


내게 남은 것은 두 가지다. B씨의 그 처절했던 눈빛과 죽음 앞에서 허탈했던 C씨의 그 한숨과 눈물. 신과 마주한다면 묻고 싶어졌다. 누가 가장 피해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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