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책임이 약속처럼 살고 있다
버려진 동물원에 살아있는 주어가 있다.
휴업이나 폐업으로 동물원에 방치된 동물들의 이야기다.
사유재산으로 취급되는 그들은 소유주의 허락 없이는 새로운 보금자리도 꿈꿀 수 없는 형편에 처해있다.
힘 없이 잊혀가는 것에 대해 인간으로서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오가던 중 몇 년 전 인상 깊게 보았던 EBS 다큐가 뇌리를 스치고 갔다.
인간의 유희로 갇히고 죽임을 당하는 야생동물들.
야생에 있는 사자보다 우리에 갇혀있는 사자가 더 많다는 미국의 적나라한 현실도 헛헛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사실 세계 어디에나 우리의 이기가 만든 속박은 살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처음부터 동물원의 주어가 동물이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 아닐까.
언제부턴가 동물원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길티 플레저처럼 이중적이 되었다.
좋아하는 동물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자유와 그 자유가 만든 속박이 미안해 그들의 눈빛을 살피게 되었다.
우리의 사정에 공간은 버려진대도 삶에 대한 당위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답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주어는 운영자도 관람객도 아닌 우리의 욕구가 낳은 책임의 주어들이다.
그들로 인해 행복했다면, 사실 그 값은 그들을 지키는 윤리에 쓰여야 한다.
눈을 떠보면, 찰나의 행복 안에 인간의 책임이 약속처럼 살고 있다.
버려진 그곳에 살아있는 주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