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루틴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44년 동안 지켜온 루틴, 그것을 먹어야 비로소 하루가 열리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입안에서 오래도록 씹으며 맛과 향과 행복을 느끼며 평화로운 하루를 입속에서 시작했던 오랜 습관을 눈물을 머금고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3년전 쯤인가 당뇨전단계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아침에 빵을 먹는 이 오래된 습관과 결별을 해야할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절대, never 라고 외치며 이성적 판단과 행위를 결단코 거부해 왔던 나였는데 드디어 굴복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무슨 대단한 거라고 굴복 운운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아침 시간의 이 빵먹는 순간만큼은 그 어느것에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던, 생활의 일부, 나 자신의 일부로 여길 만큼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에 마음의 갈등이 그만큼 컸다.
독일에서 살던 시절부터 44년을 지켜온 생활습관이었고 나의 살이나 피가 돼버린 것처럼 ‘빵이 없는 아침’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당뇨의 위험’과 ‘빵’ 사이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줄다리기 끝에 ‘빵’이 어쩔 수 없이 내 생활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을 때 나의 상실감은 실로 막대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주방으로 달려가 커피메이커에 물을 붓고 필터를 손으로 접어 깔대기에 얹고 그 위에 커피가루를 차숟갈로 떠서 넣은 다음 커피향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커피가 유리 주전자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그 모든 루틴을 너무도 사랑해왔다. 냉동고에서 썰어놓은 호밀빵을 꺼내서 토스터에 집어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고 또 다시 몸을 돌려 냉장고에서 버터와 베이컨, 슁켄(독일식 햄), 치즈, 잼, 요구르트, 견과류를 꺼내어 식탁위에 늘어놓고 각자의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런히 놓고 의자를 꺼내어 앉은 다음부터 시작되는 아침 식사 시간은 바쁘지 않은 날에는 평소에 거의 한 시간을 끌고 학교로 출근하던 때에는 적어도 30분 이상을 할애하며 즐기던 나의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싶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투자되면서 엄청난 의미부여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즐겨오던 시간이었다.
토, 일요일이나 공휴일일 때는 좀 더 풍성한 아침을 차리는데 그런 날은 본격적으로 아침을 길고 풍요롭게 즐기는 날이다 . 빵과 커피, 요구르트 외에도 푸른 색 채소와 토마토와 과일에 페타치즈와 올리브오일을 잔뜩 뿌린 샐러드볼이 식탁 가운데에 자리잡게 되고 계란을 삶던지 프라이를 해서 각자의 접시에 올려놓고 치즈와 쨈도 여러 종류를 늘어놓는다. 또 오렌지쥬스나 사과쥬스를 곁들이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여느 5성 호텔 조식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짜릿한 조식이 되곤 한다. 월~금요일 동안 그런 날만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보내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여행을 가거나 무슨 일로 다른 곳에서 자게 될 때, 시댁에 가서 몇날 몇일을 숙박하게 될 때 이 루틴이 깨지면 하루의 행복이 날아간 듯한 실망감으로 오전시간 내내 우울해질 정도였으니 나의 빵에 대한 집착은 다른 사람에게는 ‘과하게 이상한’ 현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두 아들은 엄마의 이러한 ‘빵‘ 사랑을 비웃기라도 하듯 줄기차게 아침부터 ’밥‘을 먹어야 하는 애들이었으므로 식탁 한 쪽에는 아이들을 위한 ‘밥’이 차려지고 식탁 다른 쪽은 ‘빵’을 위시한 다른 것들이 차려지는 옛날의 아침 식탁은 분주하고 번거롭고 힘도 드는 복잡한 리츄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때로는 미안한 마음, 또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마음 비슷한 것을 합쳐서 “엄마도 밥을 드시면 이렇게 복잡하게 차리지 않아도 될텐데..“라며 내 반응을 주시하지만 ‘빵’에 대한 나의 완강한 태도를 어찌할소냐, 기대난망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내 대답을 애써 기다리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니들이 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내 ‘빵‘을 포기할 순 없어” 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애들에게 눈길도 주지않고 내 할일을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렇게 차려야하는 아침 식사가 곤혹스럽다는 사실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양보없는 대치는 큰 아들이 결혼하고 분가하고 나서 가끔 우리 집에 올 때도, 바로 얼마전까지도 쭉 이어져 왔었다.
그런데 이 현상에 일대 대균열이 오고야 말았으니 바로 나의 ‘당뇨전단계’ 판정이 그 원인이었다. 당뇨에서 제일 금기시하는 영양소가 바로 탄수화물이다. 그렇기에 당뇨인들은 ‘빵’ ‘떡’ ‘면’ ‘흰쌀밥’에 대해서 경기라도 일으키며 도망가야 마땅하다는 듯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 무지막지하게 범람하고 있다. 당뇨인들이나 당뇨전단계인 사람들은 그런 프로그램 앞에서 오금을 저리며 죄지은 사람들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아직은 전단계인데 뭘, 괜찮아”라며 애써 그런 말들을 무시하며 꿋꿋하게 ‘빵’ 먹는 일을 중단할 의도가 없었는데 적은 양이긴 하지만 당뇨약을 꾸준히 먹고 있는데도 당화혈색소가 6.1~6.2 에서 요지부동 꿈쩍도 않는 현실 앞에 서서히 오기와 끈기, 배짱이 무너져가고 있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더더우기 요새는 혈압도 높고 고지혈증 수치도 더욱 나빠져 가고 있어서 무턱대고 나의 ‘빵’사랑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고민은 점점 깊어졌고 나이와 더불어 병행되는 건강염려증, 자신감상실은 급기야는 수십년간의 ‘빵집착녀’ 마저도 두손 들고 굴복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아침 시간에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주위에 퍼지는 커피향과 버터 바른 빵이 주는 향긋한 환상적 콤비의 향연은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내 과거의 행복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커피만은 포기할 수 없어서 계속 마시면서 빵 대신 사과+당근 쥬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나 못지 않은 내 남편의 ‘빵‘ 사랑도 커다란 한숨과 함께 포기되었다. 하루 세끼 중에서 점심과 저녁은 어떤 것을 먹던 관심 없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맛있는 건 아무거나 먹는 편이지만 나의 행복과 직결되었던 아침식탁의 빵은 이렇게 나와 결별하게 되었다.
밀가루로 만든 빵이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면 그 대신에 통밀빵이나 호밀빵, 귀리빵을 먹어도 된다. 사실 나는 밀가루로만 만들어진 빵을 먹는 일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발품을 팔아서라도 호밀빵을 만드는 빵집을 알아두고 한꺼번에 빵 두 세 덩어리를 사갖고 와서 먹기좋게 슬라이스로 썰어서 냉동고에 보관해서 먹는다. 그렇게 하면 빵을 계속 먹는다고 해도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지만 빵과 함께 필수적으로 먹게되는 버터와 햄류, 쨈 등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라서 더 이상 고집할 수 없게 된다. 빵을 먹는 것만이 주목적이라면 올리브오일에 찍어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거기까지에 이르면 빵 먹는 습관의 즐거움은 거의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린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좋아하던 사람이나 좋아하던 대상과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헤어지고 나면 후유증이 오래 남는다. 옛날의 그것에 대체된 현재 눈앞의 대상에 대해서 관심이 요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서 살아 숨쉬고 요동치던 내 감정은 차디차게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리고 건성으로 눈앞의 대상과 만나게 된다. 무언가를 느끼고 관찰하고 음미하고 싶다는 욕망은 없이 거세된 감정의 찌꺼기만 남아서 무덤덤하게 행동하는 기계적인 행위체가 된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아침 식탁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먹는 행위에 수반되던 모든 감정은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처럼 맛이 없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조금 있다 앉게 될 식탁에 대해 갖게 되던 소박한 기대도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 그런데 이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해질 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침 식탁이 예전의 그것처럼 친숙해지고 기대만발의 즐거움을 동반한 아침 루틴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