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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오름>에 오르다

by olive Feb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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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섭지코지>에 산책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내친 김에 <섭지오름>에 올라갔다. 솔직히 말해서 <섭지오름>은 오름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작은 오름이다. 그냥 언덕이라고 말하면 가장 적당할 정도의 구릉에 불과한 작은 곳이다. 아마도 오름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 중에서 가장 작고 낮은 오름으로 일등을 다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섭지코지>를 오갔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근처에 <섭지오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그곳에 올라본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다. <섭지코지>를 워낙 좋아해서 수없이 여러 번  <섭지코지>에 갔던 나조차도 가고 오는 중에 몇년에 한번씩 두 번 가본 것이 전부이니 다른 사람들에겐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존재 불명의 장소이다.



  <코지>는 제주말로 <곶>을 뜻한다. 장산곶, 호미곶, 간절곶처럼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뾰족하게 돌출되어 나온 땅을 이르는 제주방언이다. 나는 맨처음 이 <코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편안하고 아늑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 cozy가 붙은 지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순수 제주방언이라는 걸 알고 약간 우리말이 아닌 것 같은 발음상의 이질감 때문에 당황했었다. 그러다가 말을 곱씹어보니 역시 제주말의 특이성이 실감되어 왔다. 제주말은 낯설면서도 자꾸 자꾸 발음해보면 몹시도 정겹고 친밀한 느낌이 든다. <오름>, <옵서예>, <놀멍 쉬멍>, <간세>, <조꼴락호다> 등과 같은 말들이 우리 마음에 얼마나 편안함을 주는 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서 제주방언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보존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사라지려고 하면서 뒷모습을 보이는 것들에 애착을 느끼는 내가 유별난 건지는 모르겠다. 뭔가 오래된 것, 근원적인 것, 우리가 보다 순수할 때 가졌던 마음들, 갈라져나가기 이전의 원류와 원형들에 내 마음이 이끌린다. 어머니나 고향에 대해 가지는 아련하고 아득한 그리움이 겹쳐지기 때문인 것 같다.



  제주도에 가면 내가 제일 자주 찾는 곳이 섭지코지 해안 산책로다. 1km 남짓한 길지 않은 산책로지만 바다를 옆으로 보면서 구불구불 이어진 산책로 옆으로는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황무지 비슷하게 보이는 들판에 잡풀과 억새풀, 작은 키의 노란 국화꽃 무리들, 이름모를 관목과 나무들이 어울려 가슴이 확 트이는 경관을 자랑한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은 날에는 파도소리가 우렁차고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날에는 잔잔한 물결 위에 윤슬이 반짝이는데 그 풍경 또한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산책로의 중간 지점에는 바다로 튀어나온 작은 언덕 위에 하얗게 빛나는 작은 등대가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거기로 오르는 좁은 계단 양옆으로는 봄 여름 가을마다 서로 다른 식물들이 부지런히 피어나 각기 다른 색깔의 풍경을 연출하곤 한다. 그 등대를 마주보는 곳에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은 글라스하우스(Glashouse)가 저 멀리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서있는데 그 장면이 약간 이국적인 느낌이면서도 주위 풍경에 잘 스며들어서 보기에 좋다.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불어서 돌아가는 코스를 퓌닉스 아일랜드를 거쳐 주차장이 있는 아쿠아랜드로 가려다가 불현듯 <섭지오름>이 생각이 나서 거기에 들러가기로 한 것이다. 너무나 작고 낮은 오름이라 오름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라고 앞서도 얘기했지만 예전에 올랐던 때와는 달리 오르는 길을 둘레길 비슷하게 빙 돌게 만들어놓고 야자매트를 깔아놓아 <오르다>라는 동사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제일 높다라는 곳에 이르니 그래도 오름인지라 갑자기 전망이 확 트이고 주위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사방 360도의 들판과 언덕들, 등대, 해안, 바위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친숙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지만 또 이렇게 약간이라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왼쪽으로 저멀리에 늠름하게 자리한 성산일출봉은 변함없이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고 그앞의 광치기 해변은 푸른 물결과 하얀 포말이 어울리며 가슴에 잔잔한 그리움을 그려낸다. 그런데 오늘따라 사정없이 매서운 바람이 옷깃과 머리칼을 날려대는 바람에 곧바로 돌아 내려왔지만 맑은 바람 속에서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제주 풍경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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