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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랜드 1.

드디어 하일랜드에 오다

by olive



인간의 손길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 버려둔 땅, 인간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땅, 인간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해온 땅. 이것이 내가 하일랜드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다. 내가 보았던 하일랜드의 모습은 태초에 그것이 생겨났던 그모습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고 수억년 전의 모습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지켜 내려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압도적인 대자연은 신의 선물이고 신의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일랜드(Highlands)는 영국 스코틀랜드 북쪽의 고원지대를 이르는 말이다. 말 그대로 높은 지방, 즉 산세가 험하고 높고 황무지이고 인간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 광활한 지역을 뜻하는데 하일랜드라는 이름 자체가 풍기는 이미지에 막연한 호기심을 품고 있다가 이번 영국여행 때 드디어 기회가 된 것 같다 하는 심정으로 5일간 머무르며 탐색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일랜드 여행의 시작점으로 여기는 북쪽 해안가와 가까운 오래되고 유서깊은 도시, 인버네스에서 우리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 인버네스라는 도시는 <아웃랜더>에서 처음부터 등장하는 도시다. 에딘버러에서 버스를 타고 그 전날에 도착한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구글 지도를 보며 머리아프게 호텔을 찾는 수고를 덜으려고 택시를 잡아 타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택시값은 6.5파운드 밖에 안 나오는 짧은 거리였지만 남편은 숙소 앞에 도착하자 10파운드짜리 지폐를 건네고는 거스름돈은 사양했다. 자기 생각보다 훨씬 많은 팁을 받았다고 생각한 젊은 여자 택시드라이버는 목소리가 한껏 높아져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팁은 2파운드가 적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우리가 부자이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 여행경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라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살짝 올라왔지만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숙소를 일단 둘러보니 런던이나 에딘버러 보다 한결 겸손해진 가격으로 b&b를 잡았다는 남편의 말이 곧바로 이해될 정도로 차분하고 아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적 호텔 개념이 아닌, 이 지역의 가정집을 개조한 숙소는 아주 클래식한 분위기였고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그래도 조식 포함 1박에 120파운드는 작은 소도시의 이 조건에 비해서는 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에는 옛날 빅토리아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천장을 드리운 높은 침대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커튼이나 스탠드, 침대 협탁, 구석에 있는 커다란 서랍장, 여기저기에 있는 조명등도 완전 고전적인 분위기여서 옛날식이면서도 쉬크했다. 방도 한결 넓었고 조식을 먹는 식당 또한 페치카가 설치된 아주 멋진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렇게 영국의 100년 전쯤의 가정집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음을 알게됐다. 짐을 대강 풀고나서 산책 겸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곧바로 숙소를 나와 동네를 둘러보니 저쪽 강건너의 역과 관공서들이 있는 시 중심가(city center)와는 달리 여기엔 2층이하 낮은 집들만 모여 있어 아주 고즈넉하고 아늑하고 편안한 모양새였다.


집들 전부가 돌들로 지어졌고 벽의 두께만 봐도 족히 50cm가 넘을 듯해서 전쟁이 벌어져도 웬만한 공격으로는 무너뜨리기 힘들겠다는 실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격자형의 길을 따라 이층의 육중한 돌집들이 줄 지어서 세워져 있는 모습이 안전하고 튼실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저녁을 근처 식당에서 피쉬앤칩스와 스테이크파이로 해결하고 짐을 정리한 우리는 피곤이 몰려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들어간 호텔 식당에서 호스트가 차려주는 정성 가득한 정통 스코틀랜드식 아침을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기분좋게 인버네스 도시 산책을 시작했다. 인버네스는 인구 5만 남짓의 크지 않은 도시지만 매우 알찬 도시라는 느낌을 주었다. 시내 한가운데의 교회나 관공서, 인버네스 성 등 몇 개의 높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도시 전체가 2,3층의 낮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옛스런 중소도시의 모습으로서 시내 또한 정갈하고 네스강을 끼고 있어서 분위기도 예뻤다. 도시의 모습은 스코틀랜드의 전형적인 형태로 에딘버러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네스강은 옛날부터 소문이 흉흉한, 괴물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 그 네스호가 강으로 변해 도시와 마을을 둘러싸고 흘러서 북해 바다로 흘러가는 강을 말한다. 나중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면서 알게된 바로는 네스호는 어마무시하게 넓은 호수이지만 그 호수가 강으로 바뀌어 흘러갈 때는 그 무서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아주 친근한 느낌의 작은 강으로 변한다. 아침이나 오후, 저녁 때의 네스 강변 산책이 편안하고 느긋하고 안온한 느낌을 주었다.



인버네스에 온 목적이 하일랜드를 탐험해 보기로 한 데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셋째 날에는 스카이 섬으로 투어를 가기로 했다. 투어는 우리가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해서 가기 보다는 여행사 일일투어를 통해 가기로 결정했다. 스카이 섬을 주목적지로 해서 하일랜드의 중간 중간 이름있는 곳을 들렀다가 오는 코스인데 총 12시간 짜리라고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스코틀랜드 북쪽 지방, 이름하여 하일랜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스코틀랜드 국토의 1/2에 해당하는 면적인데 워낙 지형이 험준하고 높고 식물도 잘 자라지 않는, 황무지에 가까운 곳이라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어 버려진 땅들이다. 어차피 그 지역을 다 탐험해 볼 수는 없으니 일부 지역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서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이 스카이섬( Isle of Skye)이었다. 이 스카이섬은 넷플릭스 시리즈물 아웃랜더(Outlander)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투어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웃랜더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 시리즈의 처음 시작부분만 보다가 말았기 때문에 스카이섬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것저것 이미 아는 게 많은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걸 열심히 보는건데” 하고 쓸데없는 후회가 생기기도 했다. 투어에 온 사람들은 우리만 빼고 10명 전부 미국인이었다.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South Korea’ 라고 대답하자 “와우”라는 환호로 대답해 주었다.



아침 일찍 8시에 시작한 투어는 처음엔 네스강을 따라가다가 한 시간가량 지나자 어느덧 네스호에 도착했다. 네스호(Loch Ness)는 상상외로 큰 호수여서 스코틀랜드 그 넓은 땅에서 두번 째로 큰 호수라고 했다. 넓이는 56.4 제곱킬로미터, 가장 깊은 곳은 230미터, 서울전체의 1/10쯤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근처에는 도시나 마을도 없어서 우리는 거의 4,50분 이상을 달려서 네스호 주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호수는 옛날 빙하기 때의 빙하가 녹은 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하며 특이한 것은 호수 밑바닥에 쌓여있는 이탄(peat) (탄소함유량 60% 미만의 석탄) 때문에 호수의 물색깔이 검은 색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호수에다가 시커먼 물 색깔로 인해 이 호수는 아름답다는 표현 보다는 웬지 무섭다 같은 표현이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괴기스러운 네스호의 괴물 <네시> 이야기가 생겨났을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러한 하일랜드에도 교통의 요충지나 항구 같은 곳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그 중 한곳으로 스카이섬의 캐피털인 포트리(Portree)라는 작은 항구이다. 스카이섬(Isle of Skye)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서북쪽에 있는 이너헤브리디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고 가장 북쪽에 있는 섬으로서 인구 1만 정도의 옛날부터 꽤 알려진 섬이다. 하일랜드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지형과 암석과 폭포로 특히 유명해서 트레킹을 좋아하는 산악인이나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 사람들, <아웃랜더>에 열광하는 팬들이 많이 찾아서 세상에 점점 그 이름을 알리고 성가를 올리는 중이다. 가는 도중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풍광에 감탄하며 숨이 멎을듯이 지켜보면서 “이런 곳엔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안되는데…” 하며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며 씁쓸해진 적도 있다. 인간은 양가감정(兩價感情)에서 벗어나기 힘든, 원래부터 생겨나길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존재인가 보다 하고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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