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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로든 전투지(Culloden Battlefield)

피로 얼룩진 영국땅 최후 최대의 전투지

by olive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 보면 유적지 같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듣게되는 단어가 쟈코바이트(Jacobite)이다. 이 단어는 18세기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그 시대 역사를 집약시켜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앙숙으로 지내왔던 스코틀랜드왕국과 잉글랜드왕국의 전쟁이 마침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 배경에 쟈코바이트 반란(Jacobite Risings)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의 아들 제임스6세(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1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 없이 죽게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아일랜드를 통치하는 이른바 동군연합의 왕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주로 카톨릭을 믿었고 잉글랜드에서는 헨리8세의 치세후 영국국교(성공회)가 자리잡았던 터라 두 세력간의 다툼은 항상 일촉즉발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1세는 어느 한쪽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종교문제에 관한 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그 아들 찰스 1세는 청교도혁명에 의해 폐위되고 참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찰스 1세의 장남 찰스 2세는 아버지가 처형된 뒤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으로 망명을 갔다가 1660년의 왕정복고후에야 왕위에 오르게 된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럭저럭 영국을 통치했던 찰스 2세는 정부(情婦)들과의 사이에 숱한 사생아들을 남겼지만 그들에겐 왕위계승권이 없었고 찰스 2세 사후 왕위는 그를 충직하게 보좌하였던 동생 제임스 2세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제임스 2세도 카톨릭교도로서 종교적 문제에 양보가 없었던 점, 해군이 주력인 잉글랜드에서 육군을 상비군으로 육성하려던 것이 불씨가 되어 카톨릭계 군주를 축출할 명분을 찾고있던 영국 국교회 세력과 의회세력이 합작한 명예혁명(1688년)이 일어나게 되고 재위한지 3년만에 폐위돼서 프랑스로 망명하게 된다.


스코틀랜드에는 워낙 카톨릭 교도들이 많았고 같은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를 등에 업고 귀족 세력들이 제임스 2세의 왕위 복귀를 위한 폭동을 일으키게 되나 진압당하고(쟈코바이트 1차 반란, 1689년) 제임스 2세는 프랑스에서 사망에 이른다. 늦은 나이에 얻은 그의 막내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늙은 왕위요구자)도 이복누나인 앤여왕이 후사없이 죽게되자 영국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게 되며 이에 동조한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카톨릭계 귀족(Clan)들이 스튜어트 왕조의 부활을 외치면서 1715년에서부터 1746년에 이르기까지 쟈코바이트 반란을 이어갔다. 제임스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 찰스 스튜어트(젊은 왕위요구자)가 계속해서 반란세력들을 규합하여 여러 차례 봉기가 일어났다. 스코틀랜드에서 보니 프린스 찰리(어여쁜 찰리 왕자)로 불리며 사랑받았던 그의 염원은 그러나 처참한 실패로 끝나게 되고 하녀로 변장해서 스카이섬(Isle of Skye)으로 도망길에 올랐던 그의 마지막은 넷플릭스 영국드라마 <아웃랜더>의 노랫말에 쓸쓸히 남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Sing me a song of a lass

that is gone,

Say could that lass be I.

Merry of soul she sailed on a day,

Over the sea to Skye.


사라져 간 그 여인에 대해서

노래해 주오,

혹시 내가 그 여인일까.

어느 날 그 여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항해를 떠났지,

바다를 지나 스카이 섬으로.


<중략>


Billow and breeze, islands and seas,
Mountains of rain and sun,
All that was good, all that was fair,
All that was me is gone.


파도와 산들바람,

섬들과 바다,

비가 오거나 햇빛 비치던 산들,

좋았던 모든 것들, 아름답던 모든 것들,

진실로 나다왔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네.

이 가사에서 <그 여인>을 <그 사내>로 바꾸면 보니 프린스 찰리(Bonnie Prince Charlie)가 주인공임을 알게된다. 왕가의 핏줄로 태어나서 분명하게 왕위계승권이 있었지만두 차례의 혁명(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외로 망명한 상태에서 왕위는 앤여왕의 사후 하노버 왕가로 넘어가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자기를 지지해주던 수많은 목숨들이 참혹하게 전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 구차하게 보일 수도 있는 하녀로의 변장까지 마다하지 못한 채 배를 타고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비참한 여정이 묘사된 이 노래는 수많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마음에 동질감과 함께 연민과 슬픔을 자아내고 가슴 통증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크게 멜로디가 고조되는 느낌도 없이 잔잔하고 단조롭게 불려지지만 그래서 더 아픈, 가슴속 말못할 슬픔이 비장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



피와 눈물로 얼룩진 그들의 역사를 여기서 길게 논할 필요는 없더라도 약자의 눈물과 설움은 언제나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스카이 섬을 다녀온 다음 날 두번 째 투어로 택한 행선지는 그 모든 불행의 원천이었던 컬로든 전투(Culloden Battle)가 치러진 전장터(Battlefield)였다. 언뜻 보면 그냥 쫙 펼쳐진 평원에 불과했지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받쳐들고 발이 푹푹 빠지는 풀밭위를 돌아다니자니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어서 쓸쓸하고 슬픈 감정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커다란 평지를 가로막으면서 주차장 옆에 서있는 기념물은 단지 하나의 벽이었지만 그 벽을 이루고 있는 일자로 된 좁은 직사각형의 돌들은 어떤 것은 툭 튀어 나와있고 어떤 것은 단순한 평면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을 설명하던 가이드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벼파는 듯했다. “여기 튀어나온 돌들을 잉글랜드 군인들 사망자로 비유한다면 여기 편평한 돌들은 스코틀랜드의 쟈코바이트 군인들 사망자 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10배나 마찬가지이죠, 그것은 학살(Massacre)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말은 이빨 사이로 힘들게 삐져나오는 듯했다.


물자도 턱없이 부족했고 훈련도 제대로 되지 못했고 총도 많지 않고 무기도 변변치 않아서 집에 있던 곡괭이와 낫을 갖고서 싸워야만 했던 쟈코바이트 반란군에 비해, 잘 훈련되고 배불리 먹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된 잉글랜드의 빨간코트(잉글랜드 군사들이 입었던 빨간 제복을 이른다)의 군사력은 애초에 비교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략도 부족했고 끓어오르는 애국심 하나로 덤벼들기엔 막강한 군사력에 중과부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처음부터 예정된 패배를 불사하고 치른 전쟁이었기에 결과는 참혹했고 스튜어트 왕가를 이어받은 하노버 왕가의 죠지 2세의 동생 컴버랜드 공작의 기세는 사기등등해서 그 땅에 서있던 모든 것들을 평지에 눕혀놓고도 남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 땅위에 있던 모든 것들은 남김없이 쓰러졌고 묻혔지만 평원 귀퉁이에만 작은 초가로된 오두막이 하나 서서 그날의 모든 역사를 증언해주는 듯했다. 늪지로 이루어진 평원 한 가운데에는 스코틀랜드의 파란 깃발 하나와 잉글랜드의 빨간 깃발 하나가 마주보고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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