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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리메니 (Mani/Limeni)

by olive


이곳 마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지역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도 서쪽 끝,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서쪽으로는 메시니아만을, 동쪽으로는 라코니아만을 끼고 있다. 에인션트 올림피아를 떠나 그 다음에 묵을 곳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에이션트 올림피아에서 출발했을 때만 해도 지형이 비교적 평평하고 고속도로도 잘 닦여 있어서 수월하게 잘 왔지만 마지막 9부 능선을 넘는 것이 또 고역이었다. 다시 또 산악지형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산속에서 내가 느꼈던 지긋지긋한 고통은 “누가 그런 고생을 사서 하래?” 라고 되묻는다면 정말 어이없어지는 우스꽝스런 일이 될지도 모른다. 어쨋든 이 반도에서 어디든 가려고 한 다면 그 정도의 고통쯤은 능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눈앞을 막아선 산의 가파른 능선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에인션트 올림피아에서 칼라마타를 거쳐 아에로뽈리를 향해 가다가 중간에 까르다밀리(Kardamyli)를들러서 오는 중에 오른쪽으로는 계속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그 바다의 유혹적인 파란 물결을 외면할 수 없었던 우리는 까르다밀리가 끝나가는 무렵에 마침 점심시간도 넘은 때라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약간의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눈에 띄는 식당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식당은 주차를 하고 나서 몇 걸음을 옮겨 식당 정원에 들어서자 오! 하는 감탄사로 바뀌고 말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앉은 테이블 바로 아래로 시원한 바다와 예쁜 해변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뒤편의 뷰가 이렇게 아름다우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공짜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하고 나온 음식을 먹고 사진도 찍고 마지막에 웃음기 만발로 친절했던 종업원에게 보통보다 후하게 팁을 치르고 돌아서기까지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던 그 식당은 정말 음식의 맛도 너무 훌륭해서 누군가에게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었다. 까르다밀리라는 도시는 예전부터 근방에서는 자자했던,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막상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나서 떠나오기가 몹시 아쉬웠다.

고대 올림피아로 갈 때 식겁하게 만들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또 다시 높은 산의 능선을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산길을 뚫고 마지막 산을 넘어 도착한 리메니(Limeni)는 처음 느낌으로는 굉장히 생경했다. 바다에 딱 붙은 마을로서 파란 바다의 물결이 마을 전체를 에워싸는 매력적인 곳이었지만 평지라고는 바다에 면한 좁은 면적이 전부이고 대부분의 집들은 산 중턱에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어서 바다만 빼놓고 본다면 황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자동차 하나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길을 두고 길 양쪽에 자리잡은 평지에는 집들이 한 채씩 서있기에도 빠듯한, 띠처럼 좁은 평지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나마 바다 쪽에 면한 집들은 기둥 두 개쯤은 바다에 넣고 서 있어야 하거나 바다 쪽에 돌로 된 두터운 축대를 쌓아올려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좁은 곳에도 피서객은 꾸역꾸역 밀려들었고 멀리 눈을 들어 바닷물을 바라보면 그 파랗고 진하고 맑은 물에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남편이 굳이 이곳에 오고 싶어한 이유는 그리스의 ’마니‘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마니인’이라고 하면 아주 예외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하면서 뒤로는 타이게토스 산맥의 무시무시한 산들에 의해 타지역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되고 앞으로는 이오니아해의 메세니아만의 바다에 의해 고립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바로 몇 십년전까지만 해 도 육로로 이곳에 오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직 배로만 닿을 수 있었으니 육지 속의 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도 몇 십년 전의 제주도를 보는 듯 척박하고 거친 땅에 보이는 것이라곤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 뿐이다. 그래서 돌들의 색깔만 제주도하고 다를 뿐 집들 모두가 돌을 쌓아 만든 돌집들이었고 제주도에서 보이는 돌담처럼 이곳에도 어딜 가나 돌담들이 눈에 띄었다. 극단적으로 더웠다가도 살을 에이는 추위로 변하는 이곳의 기후는 여름에는 바위와 돌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찌르고 “겨울에는 바람이 몸을 뚫고 지나가 는 곳“(패트릭 리 퍼머, 2014)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제주도의 그리스 복사판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이곳에도 거지와 도둑과 대문이 없다고 하니 이쯤에선 손바닥을 탁 칠 수밖에 없다. 고립된 지역의 특성들이 그대로 일치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의해 지배된다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니 지역의 기상은 그리스를 400년 간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서도 결코 꺾이지 않아서 그들의 지배권에 들지 않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놓고 오랫동안 주도권 다툼을 해온 베네치아인들도 오스만튀르크도 마니인들에게는 두 손을 들고 느슨하게 자치권을 인정하는 식으로 지배해 왔던 것이다. 그들의 전투력과 끊기지 않는 고집, 불굴의 의지는 가히 유럽 제일, 천하 제일이라고 할만하다. 마니 지역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파르타인의 직계 후손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순수성에 있어서는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자부심과 독립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아서 섣불리 그들에게 시비를 걸어선 안된다고 한다. 워낙에 지리적으로 고립된 탓에 그리스의 주류 역사로부터 소외된 곳에 위치하지만 마니인 들이 그리스 역사에 두드러지게 출현한 시기는 독립전쟁의 영웅인 페트로스 마브로미칼리스가 등장한 시기와 일치한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 바로 예전에 그가 살던 집을 개조해서 호텔로 사용하는 곳이었다(마브로미칼리스 호텔). 리메니 지역에서는 매우 유명한 호텔이기도 하며 호텔 종사자들조차 자부심을 가지고 빙그레 웃으며 자기 호텔에 대해서 또 그리고 예전의 집 주인에 대해 말하기를 즐겨하던 곳이었다. 그들은 또 얼마나 친절했는지 모른다. 하나하나 세심한 부분까지 투숙객의 불편사항을 처리해 주었다 리셉션에는 마브로미칼리스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가 쓰던 총이나 집기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한쪽 벽면의 책장에는 그에 관한 책들 또한 자랑스럽게 정돈되어 있었다.

호텔의 위치나 방의 분위기는 나에게는 꽤 비싼 편이었지만 돈이 별로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다.. 바다에 바 로 붙여서 지은 호텔 2층 방은 2면이 바다로 향해 있어서 낮에는 창문으로부터 에메랄드빛 바다를 한없이 볼 수 있 고 밤에는 바다에 비친 달빛과 별빛과 물 위에 띄어놓은 보트의 쓸쓸한 모습을 원없이 볼 수 있었다. 호텔에서 제공 하는 아침 조식 또한 정갈하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차양이 드리워진 호텔 발코니에서 바로 발밑에서 어른거리는 바다 물결을 보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 맛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번 여정 중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곳은 이곳 마니와 나플리오가 유일했고 이곳에서는 하루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얕은 곳에서 수영을 즐기고 해산물요리를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는 것밖에 특별히 달리 할 일이 없었지만 우리는 이틀 밤을 이곳에서 자면서 고요하고 수정처럼 맑은 투명한 바다를 즐기면서 푹 쉬었다. ( tranquil and transparent...)

그러나 좀 더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마니라는 이 지역, 그것도 그 지역 사람들이 영웅으로 부르며 칭송해 마지 않는 페트로스 마브로 미칼리스의 일대기와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였다. 마니지역은 오스만투르크에게도 정복되지 않은 그리스 내 유일한 지역으로서 전통적으로 자치를 인정받아 왔다. 1776년 부터는 마니의 자치정부가 포르테(지방참주)에 의해 정식으로 인정되었고 8명의 통치자에 의해 다스려지는데 그 8번 째 통치자가 바로 페트로스 마브로미칼리스이다. 1821년에 그리스 전역에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마니를 대표해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운 마브로미칼리스는 1821년 3월 17일에 아에로폴리에서 혁명을 선포하며 전쟁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가 독립을 쟁취하게 되더라도 마니지역의 자치권만큼은 인정받기를 바랬는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크게 상심하고 분노했다. 그의 아들과 동생이 그리스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인 이오아니스 카프디스트리아스를 나플리오에 있는 세인트 스파이리돈 교회에서 일요일 아침에 암살하는데 있어서 그가 명시적으로 관여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 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리스 초기 정부의 혼란상이 그대로 드러난 이 사건으로 인해 그리스 정정은 혼돈의 도가니로 빠지게 되고 얼마 못가서 다시 그리스에 왕정이 이루어지고 독일계 혈통인 오톤 1세가 즉위하게 된다.

페트로스 마브로미카일스는 마니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것은 그가 마니 사람들의 혼에 불어넣은 강력한 자립심과 독립에의 의지, 그리스 근대사에서 한몫을 담당했다는 당당한 자부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마니인들이 온갖 종류의 타국 세력들에게 끝까지 저항하며 끝끝내 자신들의 독립을 지켜낼 수 있었던 그 밑바탕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그 지역만의 특이한 내적 기질이 한몫 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그들은 척박하고 거칠고 황폐한 땅에 살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켜내지 않으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에 일찌감치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믿을 것은 오직 자기자신밖에 없었던, 하늘로부터 세상으로 부터 아무것도 혜택받지 못했다는 실존의식이 질기고 질긴 생명력으로 그들을 오히려 보호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이 마니지역의 독특한 문화는 유달리 강한 복수문화(Vendetta)라 할 수 있다. 이 복수문화 는 종종 그들 자신도 괴롭혔기 때문에 근절해야할 나쁜 문화유산이지만 불과 한 세기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끈질기게 그들의 문화 속에 뿌리박혀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복수는 보통 가족회의에서 결정되며 한 가족 모두가 몰살되거나 타지의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는 종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때로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리기도 했으므로 쌍방을 참혹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이 복수문화는 지중해 문화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 무자비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또 하나 특이한 문화는 장례문화인데 이 의식은 보통 여자들에 의해 주도되며 울부짖으며 곡을 하고,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자학에 가까운 몸동작을 하는 등의 특이점으로 요약된다. 잔인하리만치 지독한 복수문화와 애통의 끝을 달리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같이 무덤 속으로 밀어넣는 듯한 이러한 대단한 장례문화와의 사이에는 그 지역만의 특수한, 비참하고 고통스런 현실들이 관련돼 있으리라 생각된다.


마니는 겉으로만 보면 아름다운 바다에 둘러싸인 평화롭고 조용하고 지형도 특이한 이채로운 곳이지만 속살을 파고 들면 수천 년의 시간동안 절박하고 고통스런 실존의 위험을 건너뛰어온, 아픔의 역사로 알알이 점철된 곳이다. 그리스의 수난의 역사 동안 내내 그래왔고 근세의 역사도 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요즘의 마니는 깨끗한 바다가 소문이 났는지 관광객이 찾아들고 해산물 요리가 맛있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주민들이 강인하면서도 매우 친절한 희망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고 느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려할 때 리샙션의 직원이 자기네 현금 사정이 몹시 좋지 않으니 숙박요금 반은 현금으로 지불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잠시 당황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할 것인지 눈치를 보았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어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절했던 직원의 간절한 눈빛을 모른 체할 수가 없어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러마고 하면서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주고 나머지는 카드로 계산했다. 나중에 아테네로 돌아와서 보니 아무래도 현금이 충분치 않은 것 같아서 ATM 기에서 현금 500유로를 출금했다. 서울로 돌아와 나중에 카드명세서를 보며 대충 계산해 보았더니 수수료가 10% 정도였다 완전히 우리가 손해를 본 거래였다 약간 씁쓸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냥 좋은 일 했다고 치고 빨리 잊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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