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숨 Jul 09. 2022

친구가 내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이상한 부부'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사냐?"


  보통 이 질문을 한다는 건 연락을 안 한 지 최소 1년은 됐다는 의미다. 후배 축의금 부탁 때문에 전 직장 동기 A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더니, 역시나 이 질문이 돌아왔다. 지금은 어느 부서에 있고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답변을 했다. 이 친구는 나보다 2~3년 일찍 결혼을 했는데 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비어있었다.


  그래서 내심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육아휴직 중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생이 많네" 정도의 대답을 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질문이 나오고야 말았다


"너는 제수씨랑 사이좋지?"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슴에는 불쾌함이 연기처럼 차올랐다. 순간 '궁예'로 빙의해 떠올려 본 이 녀석의 의식의 흐름은 이랬다.


"육아휴직을 했다는 반응에 '고생이 많다' 정도의 답을 했다는 건, 육아의 경험이 없다는 의미이고, 결혼한 지 4년째인데 아이가 없다는 건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전 직장 동기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봤다. 20명 중 17명이 결혼했는데, 16명은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순간 최근 들었던 두 가지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하나는 얼마 전 아내가 2018년 우리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했던 말이다.


"오빠, 결혼식 온 우리 친구들 중에 지금까지 애가 없는 부부가 하나도 없는 거 있지? 슬프다"


엥? 진짜 우리 빼고 애가 다 있네?


  두 번째는 지인의 안타까운 이혼 소식. 우리와 불과 일주일 차이로 결혼을 했던 지인이었는데 사유는 성격 차이였고,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이제야 왜 내 미간이 찌푸려졌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아이가 없음 = 금슬 안 좋음"이라는 도식에 우리 부부가 '강제로' 대입됐다는 사실에 대한 불쾌감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없는 이상한 부부?


  "아이를 일부러 안 낳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아이가 없다는 게 덜 이상하게 보이려나?"

  언젠가 저출산 대책에 대해 토론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내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분명 저출산은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20~40대에 결혼한 커플이 2년 넘게 아이를 '자의로' 갖지 않는 사례가 주변에 많지는 않다. 당장 주말에 도심 몰(Mall)이나 근교 아웃렛을 가면 어딜 가나 아이들 천지다.


  내가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저출산의 대표적 요인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원인이 아닌 요인이다)


① (출산이 왕성한 나이인) 20~40대에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 40대 후반에 결혼을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

② 20~40대에 결혼을 하긴 했는데, 대부분 아이를 한 명만 낳는다
※ 성인 2명이 후손을 1명만 남기면 당연히 인구는 줄어든다


  어쨌든 (우리처럼) 30대에 결혼한 신혼부부가 4년째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고 있다면 '이상한 부부'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의 A동기처럼 누군가는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가 있으면 금슬 좋은 부부, 아이가 없으면 사이 안 좋은 부부. 이 도식이 과연 맞는 걸까?



'남편'과 '아내'로서의 시간


  최근 <결혼지옥>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음소거 부부'를 봤다. 부부가 5년째 휴대폰 문자로만 대화하고 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다. 그런데 관찰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일상은 실제로 음소거돼 있었다. 두 사람은 집에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유일하게 부부가 집에서 입을 연 때는 아이 앞에서였다.


  그 집에는 '남편'과 '아내'는 없고 '아빠'와 '엄마'만 있는 셈이다. 오은영 박사님은 두 사람을 가리켜 '정서적 이혼 상태'라는 말 까지 했다. 그들에게 '아이'는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인공호흡기였다.


출처: 유튜브 MBC '엠뚜루마뚜루'


  그럼 우리는?


  인공호흡기 없이 '자가호흡'으로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고 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강제적으로 부여된 시간이기도 하지만 '남편'과 '아내'로서의 일상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있다.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이 시간은 아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임과 동시에, 우리가 아이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애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는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거리는 이 '연장된 신혼 기간'이 특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부부 생활에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다시 말해,

  꼭 아이가 있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둘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상황에서, 아기 천사로 인해 그 행복이 더 극대화되는 것이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최근 또 한 번의 임신 실패를 겪고 나서 아내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나 만나서 고생이 너무 많다. 나 안 만났으면 오빠도 지금쯤 아빠가 되어있었을 텐데 미안해"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자기랑 있는 지금이 행복해"


  우리는 유머 코드도, 식성도 잘 맞는다. 아내는 입 벌리고 자는 모습도 귀엽다. 그런가 하면 아내는 내 뱃살도 좋아라 한다. 아내와 둘이 함께 보내는 일상은 참 행복하고도 특별하다.


  물론, 힘들다. '힘이 든다'는 표현이 한없이 가벼워 보일 정도로 우리 부부는 3년째 난임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서로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첫 단추를 끼우지 못했다면.. 이토록 힘든 난임의 고통을 기꺼이 견디려 했을까?  


  우리가 지금 난임을 인내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서로가 '기댈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닮은 천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난임을 '기꺼이' 견디는 중이다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이 난임의 기간이 빨리 끝나도, 만약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다만, 삶의 방식과 행복의 양상이 달라질 뿐이다.


  그러니까 A동기여,

  우리 부부의 금슬을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충분히 사이좋은 부부니까.




<오늘도 아내를 바늘로 찔렀다(부제: 난임부부 생존기)> 시즌2를 시작합니다.


시즌1 보러가기

https://brunch.co.kr/brunchbook/sadneedl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