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삶이 있으니 죽음도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기도 한다. 나는 나의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보는 것이 더욱 무섭고 두렵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와 함께 공유했던 시간을 남겨진 나만 그 시간을 추억해야 한다는 생각에 외로워져서일 것 같기도 하고, 더 함께 지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외할아버지와 이모의 죽음을 경험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유치원 다닐 때 하원 후 할아버지가 장사하시는 곳에 의도적으로 방문하면 항상 바구니에서 100원을 꺼내 주셨다.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내가 그 100원으로 무엇을 하는지. 100원을 손에 꼭 쥔 나는 매일 슈퍼마켓에 들러 초코파이를 사 먹었다. 달콤하고 쫀득한 초코파이를 매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내가 매일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할아버지를 방문한다는 걸 알고 계셨을 것이고 그런 내가 아주 귀여웠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나를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비우실 땐 외할머니에게 꼭 당부하셨다고 했다. 유치원이 끝나면 로사가 올 테니 잊지 말고 100원을 주라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만났을 땐 내가 첫째를 임신 중이었고,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병원에 계셨을 때였다. 눈을 잘 마주치시지 않았다. 나도 할아버지의 눈을 마주칠 수 없어 할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만 있었다. 할아버지도 나도 그 상황을 마주하니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아마 할아버지는 쓸쓸한 마음이었을 것이고, 나는 그런 마음을 느끼고 있을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약 14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초코파이 이야기를 하며 할아버지가 계셔서 행복했다고 말씀드릴 걸 하고 후회한다.
부산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나는 2001년 부산에서는 나의 과목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화가 난다거나 허무하다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경기도에서는 선발 인원이 발표되었고, 이모가 수원에 살고 있었으니까 경기도로 가면 된다는 당연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비빌 언덕이 있었던 것이다. 2000년 벌써 22년 전 겨울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부산에서 수원으로 갔고, 이모는 나의 사촌 여동생 방을 기꺼이 내주었다. 시험 보러 가는 날 이모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정성스러운 아침밥과 점심에 먹으라며 맛있는 김밥을 준비해주셨다.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시험장에서 오전 시험 후 김밥을 혼자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던 그 기억. 조건 없이 나를 응원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던 그 기억. 1차에 합격하고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또 이모 집에 방문했을 땐 그녀의 집이 나의 집인 것처럼 편안했다. 아무런 걱정 말고 시험 잘 보고 오라는 이모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후 면접이었는데 따뜻한 아침밥과 든든한 점심밥으로 나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준 이모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모의 죽음 소식에 마음이 무너졌다. 아무도 몰랐고, 준비되지 않았던 죽음이라 충격이 컸고, 이모 스스로 선택했다는 소식에 더욱 괴로웠다. 이모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는데 왜 나는 이모가 힘들 때 몰랐을까? 왜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았을까? 왜 자주 놀러 가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모와의 시간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 나에게 후회와 죄책감을 들게 한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내 몸에 새겨져 있는 시간의 흐름은, 그 동네에서도 똑같이 찾아왔다. 저녁, 텔레비전 뉴스가 시작될 즈음, 새들이 서쪽 하늘로 날아갈 즈음, 서쪽에 떠 있는 둥그런 저녁 해가 천천히 땅으로 떨어질 즈음, 나는 늘 혼자서 걸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남자 친구 집에서 돌아오는 길, 학교에 안 가고 어슬렁거리다가 돌아오는 길, 엄마와 살 때 나는, 친구를 만나고 있다가도, 일단은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돌아갔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해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독자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주인공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드 보일드는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이였던 동성 연인의 기일에 생긴 이상한 하룻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넌, 정말 운이 강해. 그래서 좀 남다른 인생을 보내게 될 거야. 많은 일이 있겠지. 하지만 자기를 질책하면 안 돼. 하드 보일드(hard-boiled)하게 사는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보란 듯이 뽐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감정을 내보이지 말고 냉혹하게 살아가라고 조언을 해준 연인은 어쩌면 자신의 연인에게 용기 있게 삶을 살아가되 자책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연인은 자신의 죽음으로 상처받게 될 연인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드 럭은 죽어가는 언니의 주변을 정리하며 그녀와의 추억을 기억하고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밤중에, 그런 별 볼일 없는 대화를 곧잘 즐겼다. 천창은 없어도, 상상력의 힘으로,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을 느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언니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그 막은, 처음에는 눈물이 흐를 때마다 뜨겁게 흘러내려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내 온 마음과 몸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그 막은 내내, 언니와의 추억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시간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히 hard luck(불운)이지만 행복했던 추억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함께 했던 시간을 내 시간에 꾹꾹 눌러 담아 채우는 일은 헤어짐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아꼈고, 사랑했고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생각하며 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도 여전히 여운이 남는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아버지와 이모를 떠올린 것처럼. 오늘도 나는 죽음과 함께 존재한다. 그렇지만 행복하다. 나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그리고 그들을 기억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