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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을찍고돌아온그녀 Mar 01. 2022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오늘도 나는 열심히 윈도 쇼핑(window shopping)을 한다. 핸드폰 알람으로 계속 세일 상품에 관련된 메시지가 도착한다. 이상하다. 반드시 사야 할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핸드폰 앱을 실행시키는 순간 심장 박동수가 마구 올라간다. 지금부터 10분 후에 핫딜 쿠폰이 제공된단다. 시계를 보고 초초해하고, 또 시계를 보고 노트북을 보고, 또 시계를 본다. 이제 1분 남았다. 59, 58, 57... 미친 듯이 쿠폰 다운로드를 실행시키지만 마감이 되었다는 글자만 크게 뜬다. 분명히 빛의 속도로 클릭을 한 것 같은데 왜 나는 쿠폰을 받지 못했을까. 짜증 나지만 오늘은 어떤 물건들이 할인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있으면 편리할 것 같고, 바르면 예뻐질 것 같고, 살을 빼도록 도와줄 것 같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번에는 동네 엄마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는 명품 신발을 구경해 보려고 한다. 가격비교 사이트가 많아서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명품 공식 홈페이지를 가서 모델명과 가격을 확인한 후 초록색 검색창으로 가서 같은 모델명을 검색해 본다. 많은 가격대의 같은 제품들이 비교되어 나온다. 너무 비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다 갖고 있다. 나만 없다. 그래서 과감하게 22개월 할부로 산다. 신발장은 이미 꽉 찼지만 명품 신발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 전에 샀던 운동화는 창고에 잠시만 넣어둔다. 신발에 어울리는 바지, 바지에 어울리는 티셔츠, 티셔츠에 어울리는 겉옷, 겉옷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순서대로 구경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둔다.      

  박찬국 지음,『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는 에리히 프롬 지음, 『소유냐 존재냐』의 해설서이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에리히 프롬의 생애,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가치관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서론에서는 현대사회의 문제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1, 2부에서는 소유 양식과 존재양식의 차이 분석, 3부에서는 지향해야 할 인간상과 사회상 제시로 구성되어 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싶은데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은 이 책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에리히 프롬은 제1차 세계대전이 19세기 서구를 지배했던 낙관주의와 계몽 사조를 종결시킨 가장 잔혹한 사건으로 본다. 그리하여 프롬은 소유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 지구공동체(사람과 자연)에 대해 연대감을 가지고 세계평화와 형제애에 입각한 사회구조를 실현하고자 한다. 소유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할수록 소유물의 양과 질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들을 획득하기 위해 힘을 필요로 하게 된다. 내가 소유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빼앗기 위해. 마침내 폭력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소유 지향적 삶에 반해 프롬은 존재 지향적 삶을 주장한다. 존재 지향적 삶은 어떤 것을 소유하지도, 소유하려고 갈망하지도 않는 삶으로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면서 세계와 ‘하나가 되는 삶’의 양식을 말한다. 이런 존재 지향적 삶은 자신과 세계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느껴 타인과 사물 그리고 자연의 성장을 도우려고 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프롬에게 사랑이란 인간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책임 그리고 존경이다.     

  나는 공동체주의자이며 자연을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며 인류애를 실천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왠지 모르게 내 주변을 둘러싼 공기들이 몽글몽글해지면서 스스로 기특함을 느낀다. 똑똑해진 것 같고, 엄청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핸드폰에서 방금 알람이 울렸다. 명품쇼핑 사이트에서 또 할인 쿠폰 및 오늘 자정까지 일부 품목에 한해서 세일을 한다는 알람이다. 또다시 심장박동수가 올라간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 나올 것 같은 심박수다. 한겨울에도 머플러를 잘하지 않지만 멋쟁이들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가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방금 엄청 멋있고 중요한 이야기가 적힌 책을 읽은 사람이니까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하게 보지 않기로 한다. 한 번 더 내가 기특하다.

  텔레비전에서 홈쇼핑 방송을 한다. 바르면 얼굴에 광채가 나고 정말 어려 보이고, 하나만 발라도 피부과를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촉촉한 미백 크림을 판매한다. 무려 5개나 준단다. 그래, 어차피 크림은 필요한 거니까 머플러랑 다른 개념이니까 사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3개 값에 5개를 준다고 하니까 이건 절약하는 일이다.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해 박찬국 지음,『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는 책장 제일 낮은 곳 구석에 잠깐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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