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이 바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괴변을 듣자고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진실로 외로워졌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유독 이 즈음에 더한 것은 왜일까.
생각해 보면 난 열심히 살아온 것밖에 한 게 없다. 그 열심히 사는 것에 나의 자아가 상실되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로, 아내로, 자식으로, 며느리로, 역할에만 충실했지 내가 진실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옷을 하나 사 입어도 식구들 좋은 것 사 줘야 하니 언제나 시장에서 싸구려를 골라 입었다. 남편은 이런 나에게 눈이 싸구려라고 구시렁거렸지만 난 굳이 변경하지는 않았다. 밥을 먹어도 메뉴판 중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골랐다. 이 또한 다른 식구들이 원하는 메뉴를 고르라는 내심의 배려 속에서 말이다.
책을 한 권 사고 싶어도 도서관을 이용했고 남편과 둘이 놀러 가고 싶었어도 시댁식구들이나 친구들과 같이 가자는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 줬다.
그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변명해 보자면 그렇게 해야 좋은 아내이고 좋은 엄마라는 착각 속에 살았던 것이다.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시킨 적이 없다.
다만 그렇게 살아야만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어머니가 그러했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착각애 빠져서 말이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주어야만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인지.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줘야지 이 마음이 채워지는 것인지, 아직은 무엇도 알 수 없다. 자라오는 동안 속을 채우는 법을 좀만 더 일찍 알았다면 사는 법이 달랐을까? 스스로 깨닫는 진리가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이라 아무도 알려 주지 않은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좀 더 살아야 알 수 있을까
호된 신고식 중인 지천명에 내가 의지할 것은 오직 지적허영밖에 없고 어디라도 의지해야만 넘어지지 않으니 우주 한 귀퉁이를 방황하고 있는 내 영혼이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제자리라는 것이 진정 제자리였는지 그것도 지금은 의문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