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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May 08. 2022

오늘은 어제와 다르니까요

목 끝까지 차는 숨만, 잘 내쉬면 됩니다.

"엄마, 너무 힘들고 죽을 것 마냥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돼?"

"천천히 숨을 쉬면 돼. 다른 생각일랑 하지 말고, 해야할 일을 1/100로 나눠. 니가 오늘 할 일은 1이야. 100이 아니라."

mj가 떠났다.

당연히 떠날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서도, 영원히 그 시간이 안 올것만 같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를 줄 알았다면, 처음 봤을 때 더 잘해주고 더 친절하게 대해줄 걸 그랬나보다 싶다.

야 네가 이해해, 나도 대학원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세상 사람 다 싫고 지겨웠단 말이야.


그리고 우리들은 정말로 마지막이라며, 한데 모여 초밥을 먹었다.

직장사람들과 간혹 가던 식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j를 비롯한 b, yj, ygu언니와 함께 밥을 먹으니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식당처럼 느껴졌다. 역시 어디서 어떻게 먹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는가가 중요하다.

우리는 마지막이라도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부러 그녀의 떠남에 호들갑떨지 않았다.

언젠간 다시 만날 것이니까.

b도 나만큼이나 그녀에게 줄 롤링페이퍼를 쓰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어김없이 오늘도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야근을 했다.

이제 곧 부서가 바뀌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의 진행이 더욱 느렸고 더뎠다.

마지막이라고 받은 일들은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나는 떠나는 마당에 형편없는 전임자였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존경했던 상사들에게 예의를 다하고 싶은 마음에 부러 더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사무실 이사를 해야 하는 당일까지도, 컴퓨터를 빼지 못하고 일을 했다.

옆에 있던 후배만 불편했을 것이다.

호의를 베풀어준다며 내 이사를 돕겠다고 해줬는데, 금요일이 다 가도록 이사를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미안하다.

그리고 내 짐 다 옮겨줘서 고마워. 나 정말 복 받았다.

금요일 퇴근 후, 이삿짐 정리를 하고 있는 mj집으로 굳이 몰려가 우리끼리 한번이나마 그녀의 얼굴을 더 보고서야 결국은 이번주의 평일을 끝냈다.

그녀는 우리가 우르르 몰려갈 줄 몰랐는지 웰컴기프트라며 꽃을 꽂아 병에 담아줬는데, 저마다 사정이 있어 못 들고가는 친구들 덕분에 웰컴기프트를 독식한 나다.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로 사진을 찍어주던 친구들을 보면서, 왠지 그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토요일, 늦은 생일기념 식사를 위해 고향 땅을 다시 찾았다.

엄마는 나와 오빠가 회사에 취직을 하고서부터는, 집에 자주 오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가족 중 한 명의 생일이 되면 반드시 밥을 먹으러 집에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식당도 꼭 아빠가 좋아하는 그 고깃집이어야만 하는데, 어쩐지 괴상하게 만들어진 이 전통 덕분인지 일년에 몇 번은 반드시 온 가족이 얼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p까지 함께 고향을 찾아 여상한 기분 속에서 점심을 먹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밥 먹는 자리에서 우리 가족이 얼마나 화목한 가족인지, 우리 가족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꾸며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평소같았으면 더 화기애애한 척 하고 싶었을 것도 같은데, p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그래서인지 평소처럼, 앞으로의 직업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40살이 될 즈음의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을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엄마답게 p 인생에 대해서도 궁금해했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고향에 오면 당연하게 들리는 카페로 향했다.

횟집 건물들 사이 작은 골목에 위치에 있는데, 돌아오는 길 중간에 내려달라는 나의 요청에 엄마도 이제는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지 당연히 안다는 듯이 대답하는 장소다.

p는 옆에서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커피 한 잔 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먼저 가겠다고 한 후 둘러 앉아 p와 단 둘이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p와 나는 여전히 인테리어 고민이 한참이다.

p는 저 벽에 있는 선반처럼 만들고 싶다, 여기에는 온갖 브랜드의 조명이 모여있다고 하면서도 당장 벽에다 못질을 할 수는 없다며 침울해했다.

물론 나는 철없이 운치 있게 사진 잘 찍지 않았냐면서 기뻐했고 말이다.

배가 부를데로 부른 우리는 돈 한번 아껴보겠다고 KTX역까지 가는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리다, 배차 간격이 35분이란 사실을 깨닫곤 흐린 바닷가 풍경만 흝듯이 남기고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한 채로 돌아온 집, 오랜만에 p와 다투게 되었다.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편집증적인 집착 때문이다.

그걸 그냥 좋게 넘어갈 수 없고 꼭 싸워야 하는 나와, 자신이 없을 때 그로 인해 해코지라도 당할까 걱정인 p의 염려 때문에 길거리에서 한 판 크게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차 있었는데, 순간 p에게 이기고 싶어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p가 중간중간 '너는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잖아. 나도 똑같이 말하는데 왜 나만 용서가 안돼?'

라고 물을 때에는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결국 땡깡을 부리듯이 사과하라고 소리를 지르고서야 싸움이 끝났다.


겨우 이성을 챙겨 다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우리는 점점 나는 p처럼, p는 나처럼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놀라고 말았다.


과거 내가 무슨 일이든 맞서 이야기하고 당장에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p는 생각할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감정을 삭혀야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p의 요구에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p는 갈등상황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용기 있게 사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럴수가.


과거 p를 그렇게나 이해하지 못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한창 싸우고 있고, 내 기분이 이렇게나 좋지 않은데에도, 자꾸 졸리다고 내일 이야기하자고 하던 그다.

그러곤 더 이상은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했었고.

그런 p가 얼마나 답답했던지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건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 원래 싸우게 된 이유보다 그런 태도에 더 큰 화를 내곤 했던 나다.


그런 내가 이렇게 되다니.

갈등상황이 오면 너무 힘들고 도망가고 싶다. 잠시 p가 싸웠다는 사실을 까먹어줬으면 싶기도 하다.

몇 시간씩 싸우고, 용기 있게 갈등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정말로 지친다.

'아 내일 이야기하고 싶어, 내가 정말 뭐라고 말해야만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보고 사과하고 싶어.'

요즈음의 나는 싸울 때마다 목 끝까지 저런 말이 차오르고, p는 내가 먼저 화내지 않으면 결코 내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는데,

결국 내가 화나 언성을 높이다 p의 맞는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면, 사과하지 않는 못된 버릇이 나와 그 날의 싸움은 파국이 되고 만다.

아 난 왜 이따위 인간으로 살고 있나?


내가 잘할게 정말 미안해.

결국 카페에서 거나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p는 그답게 금세 나의 성찰에 자기가 더욱 진지해져 앞으론 내 편집증적인 집착도 무조건 지지하겠다고 말한다.

바람부는 저녁 괜히 더욱 머쓱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빨리 돌아가기는 싫었던 우리는 어묵탕에 배추전을 시켜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밤을 마무리했다.

일요일 오전,

어젯밤 당연히 그러리라는 걸 예상하면서 잠에 들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1시가 다 되어 쌀국수를 먹고 해장을 한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가버리다니.

큰일났다. p 오늘 서울 가야 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는 기분이라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괜히 쌀국수를 먹는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만 이상해지고, 그럴 필요 없다는 그의 떠나는 길을 배웅하며 한바탕 후회를 했다.

다음주가 되면, 너에게 더 큰 사랑을 줄게.

잘가!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한 주 새로운 부서에서의 일상이 시작됐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쉴 틈 없이 달려야만 하는 곳에서의 일상이라는 걸 알기는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힘들고 고되다.

원래도 무능한 느낌을 가장 싫어하는 나인데, 처음이라 당연히 무능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을 마주하니 맨발로 바늘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살고 또 버티고 있는 걸까.


이럴 때마다 수능 전 엄마가 해준 말을 기억하고 또 곱씹는다.


"엄마, 너무 힘들고 죽을 것 마냥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돼?"

"천천히 숨을 쉬면 돼. 다른 생각일랑 하지 말고, 해야할 일을 1/100로 나눠. 니가 오늘 할 일은 1이야. 100이 아니라."


그래, 오늘은 1/365를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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