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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May 12. 2024

벌써라니. 한창이야.

2024 여름_건축과 여유


벌써 5월이다. 한 해의 1/3이 지나갔다는 의미다.


뻔한 첫 문장이지만, 달이 바뀌고 나서 쓰는 글이면 이런 말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로운 달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묘하다.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 지나간 일을 복기하고, 후회는 버리고 다짐만을 가져가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하여튼, 잡담 여름호의 첫 번째 글을 맡아 쓰게 되었다. 메모장에 적어둔 ‘쓰려다 만 주제들’은 차고 넘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내는 작업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내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한다.


‘벌써’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지도 꽤 되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와는 상관없이, 앞날에 대한 조급함이 계속 마음을 두들긴다. 돌이켜보면 항상 여유가 없었다. 반수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옆에 있는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간다는 것이 항상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1~2년 차이는 비슷한 속도로 봐도 무방한데 말이다. 필자가 얼마나 짬을 먹었기에 이런 말을 하냐고?

아직 졸업까지 n년이나 남은 20학번 휴학생이다. 졸업을 목전에 두지도 않았는데 이런 푸념이나 늘어놓고 앉아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시간은 상대적인 것 아닌가. 그냥,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약간의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처음 접한 건축학과는 암담했다. 1을 배우면 10의 결과물을 가져가야 했고, 나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찾아가야 했다. 그야말로 자기주도학습의 끝판왕이었달까. 갈피를 못 잡았다. 지금까지 하던 공부처럼 정답이 있는 줄 알았고, 공식을 찾으려 노력했다. 책은 잔뜩 사놓고 읽기 싫으니, 타인의 시선으로 정리된 논문을 찾아 읽었다. 내가 찾던 것과 관련 있어 보이는 논문이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막연하게 앉아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날이 늘었고, 의자에 붙은 엉덩이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벌써 그러면 어떻게 해. 한창이야.”

선배가 스쳐 가며 해준 말이 가장 힘이 되었다. 그래. 앉아서 머리만 싸매고 있으면 뭐가 바뀌나. 과거의 나에게. 이 글을 보고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몇 개 적어봐야겠다.


1. 뭐든지 경험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저절로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주어진 과제를 끝마치는 일상을 보내면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림도 없었다. 누가 떠먹여 주지 않는 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일어나서 돌아다니자. 어느 곳이든 좋다. 인스타에 널린 핫플레이스도 좋고, 딱딱한 잡지에서 소개하는 건축물도 좋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 보기도 하고, 글도 많이 읽어보자. 당장은 와닿지 않더라도,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나만의 레퍼런스가 생긴다.


2. ‘왜’를 항상 품어두자.

나만의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확고해지면 익숙한 것도 달리 보인다. 대상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더 와닿게 되고, 관련된 것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별다른 기준이랄 것 없이 경험의 물량으로만 승부하고자 했던 나는 무언가를 접하면 감흥 없이 멍때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대상을 설명하는 글은 머릿속을 맴돌다 도로 나가버리곤 했다. 시간을 내어 공간을 가거나 책을 읽더라도 나에게 남은 것은 ‘나도 해봤다’는 찜찜함뿐이었다.

의미 없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준을 세워보고자 했다. 책을 보던, 영화를 보던, 여러 곳을 돌아다니던 간에 내 시선을 이끄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가 포인트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왜 맘에 들었는지 생각해 보자. ‘어떤 점에서 내가 끌리기 시작했는지’와 같은 것을 고민하다 보면 나만의 기준이 생긴다.


3. 무리하지 말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변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죽어도 밤은 새우지 않는 사람과 밤새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 나는 후자의 경우였다. 그렇다고 해서 ‘밤샌다’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창문 너머 중랑천에서 해가 뜨기 시작하고 지하철 첫차의 소리가 들려올 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가끔가다 새가 지저귀기라도 하면 얼른 집 가라는 신호로 인지했다. 노동요를 틀어두고 수다 떨며 과제 하던 우리가 좋았고, 새벽에 이른 아침을 먹으러 갈 때 들이켜는 새벽 공기는 시원했다.

서로 부대끼며 쌓을 수 있는 추억도 좋지만, 이런 낭만은 건강을 해친다. 건축학과는 마라톤이다. 타 학과와 비교하자면 1년을 더 다녀야 하고, 과제에 들이는 시간도 배는 많다. 이렇다 보니 밤샘만으로는 졸업까지 버텨 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나중에는 체력 자체가 부족해 밤을 새우는 데에 저절로 한계가 오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찍이 체력 관리를 해두자. 어렵겠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지녀보는 것이 어떨까.


4. 탈출구를 찾자.

여러 곳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필요하다. 초록색 병을 가까이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건강하게 가보자. 나 같은 경우에는 카메라였다. 새내기 시절 동기들을 보고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고, 4년째 카메라를 들고 있다.

‘셔터 한 번이면 자그마한 네모 안에 내 경험을 담을 수 있다’는 번지르르한 말로 남들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돈 꽤나 드는 취미라고 한탄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왔던 시간으로 인해 지금까지 힘든 일들을 버텨왔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일처럼 되어버려 예전보단 재미가 덜하지만, 가끔가다 종일 사진을 찍고 나면 ‘나 사진 찍는 것 좋아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재밌으면서도 재미없는 나만의 탈출구다.


안 보이는 곳에서 바쁘게 물장구를 치고 있을 누군가에게. 우리 모두 한창이다.




게재 : 건축과 여유, 2024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Z |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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