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_건축과 시간_특별잡담
올해 만리동 광장에서 진행한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사이트 답사와 시공을 위해 서울역~서울로 7017 일대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시간을 가리지 않는 일정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새벽, 오전, 오후, 저녁, 늦은 밤까지 하루 동안 볼 수 있는 서울로7017 일대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번은 바쁘게, 또 한 번은 느긋하게 서울로 7017을 거닐면서 서울 도심을 가르던 고가도로가 서울로 7017이 되기까지 고가가 겪었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1969년 착공해 1970년에 개통된 서울역 북쪽의 왕복 2차선 고가도로이다. 대한민국에 산업화의 물결이 강하게 일고 도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자동차의 원활한 소통은 도시 운영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다. 때문에 당시 서울의 핵심 도심이었던 남대문과 마포나루 일대에 원활한 소통을 위한 자동차 길에 대한 수요는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서울역 고가도로이다.
근대의 모습을 간직한 옛 서울 역사 옆으로 다리를 내려 퇴계로에서부터 만리재로, 청파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던 서울역 고가도로는 그 자체로 7,80년대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고가도로를 타고 바쁘게 움직이던 자동차와 그 안의 사람들은 어느새 서울역 앞에 고층빌딩군을 만들어내고, 올림픽을 개최하고, 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랑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세상 힙한 젊은이라 여겨졌던 X세대가 이제는 복고의 대상이 되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MZ세대가 되어 X세대와 세대 갈등을 겪는 시대가 왔듯, 서울역 고가도로의 빛도 저물어갔다. 30년간 서울의 성장을 주도했던 고가도로였지만 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고가도로를 ‘도심의 미관을 해치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고가도로의 미관 문제가 제기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고가도로를 이루던 슬라브가 노후화되어 시급한 보수가 필요했다. 30년 전 고도성장의 얼굴처럼 보였던 고가의 옆면은 이제 투박한 디자인의 옛 구조물이 되었다.
2001년 슬라브 보수 이후에는 13톤 이상 트럭의 출입이 제한되고 2004년에는 미관상, 안전상의 이유로 동자동 방향의 램프가 철거되며 서울역 고가도로는 점차 이제는 도시에서 사라져야 할, 옛날의 영광 중 하나가 되었다. 연이은 안전진단에서 D 등급을 받자 서울시민과 서울시는 정말 이 고가도로의 존폐에 대하여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세계적으로 쓸모를 다한 고가와 육교를 철거하는 분위기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서울역 고가도로가 40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철거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선택은 철거가 아닌 재생이었다.
2014년 9월, 뉴욕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한 전 서울시장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도심 속 보행 및 휴식 공간으로 재생하고, 더불어 고가도로로 인해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던 서울역 일대까지 통합재생하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라 고가도로 재생사업과 함께 서울역 서부, 기존에는 중구의 쓰레기 수거차량의 차고지로 사용되었던 자리에 만리동 광장이 새롭게 조성되어 서울로 7017 과 연결되었다. 서울역 서부 교차로와 서울로 7017의 서쪽 끝 램프 사이에 자리잡은 만리동 광장은 현재 서울역 인근 주민들과 서울로 7017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본격적인 서울역 고가도로 재생을 위하여 2015년, 서울로7017 프로젝트 국제 현상공모가 시행되었다. 지명 초청된 작가들이 각자의 시각으로 서울역 일대와 서울역 고가도로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고, 그중 MVRDV의 대표이자 네덜란드 건축·조경가 비니 마스(Winy Mass)의 ‘보행길을 수목원으로’를 주제로 한 ‘서울 수목원’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비니 마스의 설계안에 따라 고가는 공중정원으로 조성되어 2017년 개장하였다. 서울 지역의 기후와 인공 지반에서 생육이 가능한 수목들을 원형 화분에 담고, 수목의 학명을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치하였다. 그러다 보니 화분의 이름과 바닥에 새겨진 ‘목련과’, ‘장미과’ 등의 분류명에 집중하며 걷다 보면 마치 1km의 거리에 펼쳐진 식물도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2017년, 고가도로의 재탄생은 서울로 7017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에도 의미가 깊다. 새로운 고가의 이름이 7017인 이유도 1970년 처음 지어져 2017년 새롭게 재탄생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시민들이 빠른 속도의 성장이 필요했을 때 고가도로는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빠른 길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제 너무도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의 중심에 잠시 멈춰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삶이 필요해진 시기에, 고가는 시민들의 도심 속 쉼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도시민들에게 있어 필요한 ‘도시 속도’의 변함에 따라, ‘고가의 삶’이 변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걷는 이 길이 곧 서울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바빴던 시간을 지나, 주변을 돌아보고 머물러 갈 수 있는 여유를 얻은 오늘날이 되기까지의 길을 걷고 있는, 그야말로 서울의 시간을 따라 걷는 것이다.
참고 문헌
권완택 (2017). 사람 중심, 걷는 도시 실현을 위한 서울로 7017 프로젝트. 교통기술과정책, 55-62
조경민 (2015). [시민참여] 서울역 고가는 무엇을 넘고 있는가?. 환경논총, 56, 35-40
도판 목록
사진1,2 ㅣ세계일보
사진3 ㅣ트리플래닛
게재 : Vol.16 건축과 시간, 2021년 가을
작성 : 프로잡담러 B | 남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