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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2. 2023

삼백만 원

‘부모님’


 이 단어를 보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단어를 보자마자 따스함과 희생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한숨부터 나오는 사람도 있을 테다. 저마다 사정은 다를 테니 한숨이 나오는 사람을 비난하진 말자.


 나는 잘 지내다가도 ‘부모님’ 하면 숨이 턱 막힌다. 세 가족이 함께 지낼 땐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하진 않게 지냈지만 세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부턴 부모님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월 이백을 벌면서 대출이자 이백을 갚는다는 엄마와, 빚내서 코인에 몰빵 했다가 코인이 하락해 버려 수익은커녕 월세내기도 벅찬 아빠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글을 쓰는 삼십 대 딸인 나. 셋 중 누구 하나 넉넉한 사람이 없다.


 그래도 부모님과 떨어져 있을 땐 그놈의 가난을 잊고 살 수 있어서 숨통이 트인다. 많이 벌진 않아도 소소하게 벌면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적은 수입에 조금이라도 모으고 있고, 책 한 권을 낼 즈음엔 작은 카페를 차릴 생각이다. 남들보다 더딜 순 있지만 느릿느릿 나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부모님이다.


 지우고 살던 부모님의 존재가 불쑥 다가오는 날이면 제아무리 웃음이 많은 나라도 감당하기 힘든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가 집어삼켜버린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살진 못했지만 내게 피해만은 끼치지 않길 바라며 전전긍긍하게 된다. 제발 날 그들의 가난 속으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기도한다. 제 발로 가난의 구렁텅이로 향한 엄마와 아빠를 말릴 길이 없어 부모님에게서 도망쳐온 나다. 오를 수 없는 산을 바라보지 않고, 현재 내 위치를 알고, 작은 것에 행복하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것. 부모님을 보며 반면교사 삼아 늘 떠올리고 가슴속에 새긴 내 인생철학이다. 부모님은 늘 오를 수 없는 산을 바라본다. 터무니없는 생각과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 욕심이 세 가족의 행복을 망친 것만 같아 나만은 그런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일찌감치 욕심을 버리고 살고 있다.


 아빠와 집을 합치고 지낸 적이 있다. 도저히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맞지 않아 먼저 빠져나왔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원룸에 살 때 들어간 보증금이 그 집에 묶여있었다. 아빠가 이사 간 날에 맞춰 내 몫의 보증금을 돌려받고 싶었지만 아빠는 역시나 내가 묻기 전에 먼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사하느라 바쁘겠지. 정리가 되고 나면 돌려주겠지.’ 마음속으로 끙끙 앓다가 이대로 뒀다간 그 돈을 아빠가 또 코인에 재투자해서 날려버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대화지만 꺼내야 했다. 아빠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란 문자를 남긴 날, 아빠는 전화로 얘기하자고 했다. 같이 사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는 둥 상황이 안 좋아 가진 코인을 팔아 생활을 했다는 둥 변명이 이어졌다. 시간이 걸려도 돌려줄 테니 천천히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 통화를 할 당시 친구와 있어서 대강 전화를 끊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영영 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 같아 다음날 아빠에게 다시 연락했다.


 삼백만 원


 아주 큰돈도 아니다. 하지만 나도 적게 벌며 적게 모으고 사느라 생활이 빠듯했고, 그 돈을 돌려받으면 여윳돈으로 둘 수 있으니 숨통이 트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단 생각을 하니 절망적이었다. 함께 살면서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돈까지 돌려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같이 살았단 생각이 들었다. 부모에게 돈을 떼인 자식의 비참한 마음을 아는 사람이 아주 많진 않을 거다. 어디 가서 얘기했다간 욕이나 얻어먹을 것 같아서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계약기간보다 일찍 나와서 까인 금액이 있으니 이백만 원이라도 돌려달라 했다. 아빠는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백만 원을 송금했다. 그렇다. 줄 수 있는데 안 준 거였다. 전액을 돌려받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라도 돌려받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로, 부모님과 돈 문제로 엮이지 않아야겠단 다짐을 했다.


 삼백만 원으로 부모 자식 간에 깊은 골이 생길 수 있단 걸 깨달았다. 삼백만 원이 없어서 못 돌려주겠다는 아빠가, 그 나이 먹도록 모아둔 돈도 없고 돈이 생기는 족족 코인이나 사기에 날려버리면서 돈 버는 걸 우습게 보는 아빠가 얄미웠다. 나는 부모에게 용돈 얘기도 못 꺼내고 자랐는데, 아직도 할머니에게 얘기해서 턱턱 큰돈을 받아내고 갚지 않는 모습이 싫었다. 나는 저렇게 안 살아야지. 항상 다짐한다. 사람의 행실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때때로 떠올린다. 나에게서 부모님의 가난하고 무지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말과 행동을 돌아본다. 나는 그 가난이 나에게 물들지 않게 노동의 가치를 우습게 보지도 않을 것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 것이고, 가까이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고 감사하며 살 것이다. 삼백만 원에 마음이 팍팍해져서 울고 웃지 않도록, 몸도 마음도 넉넉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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