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Jan 18. 2024

예민한 나 자신을 사랑해


 내게 세상은 소음 투성이다.

 대중교통에서 크게 전화를 하는 사람, 온몸에 담배냄새가 밴 채 옆에 앉은 사람, 쉴 새 없이 다리를 떠는 사람 등 누군가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어떤 자극이라도 놓치지 않고 온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매일 출근길에 직면하는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으로 글을 쓴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자극은 어느새 희미해져 간다. 삼십 분이 넘는 출근 버스에서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의 시작부터 스트레스로 뇌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일하면서도 어떤 자극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정도 많고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 사람’이 아닌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때론 지친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부족한 사람과 함께 하는 건 예의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정말 힘들다.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인 걸 알면서도 ‘말을 굳이 왜 저렇게 하는 걸까.’, ‘내 입장은 생각 안 하고 그냥 뱉은 걸까? 아니면 교묘하게 까내리는 말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 옆에 있다 오면 스트레스받는 것뿐만 아니라 괜히 나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대하면서 나에겐 왜 그렇게 대할까?’ 하며 은연중에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너무 편한 이미지인가? 내가 그간 해온 말과 행동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도록 만든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매 순간 근거 없는 과대망상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세상을 대하는 태도, 자주 하는 말, 이전에 있었던 일 등을 조합해서 하는 나름의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냥 ‘저 사람이 예의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한데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나는 그게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불쾌한 사람과의 대화에 영향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


 자주 관찰하고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머릿속이 자주 복잡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하고 빨리 캐치하는 장점도 있다. 남들이 모르고 그냥 넘어갈 법한 것도 빠르게 알아챈다. 타인의 장점도 빨리 캐치하고, 단점도 빨리 캐치한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센스 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지만, 그만큼 평소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커서 정신적으로 빨리 지치기도 한다. 섬세해서 상황 파악을 빨리 해서 좋을 때도 많지만, 예민해서 괴롭기도 하다. 가끔은 무던한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의 세상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내 세상과 달리 참으로 단순하고 고요할 테니.


 하지만 스트레스와 함께 깨달음도 반드시 따라온다. 생각을 골똘히 하다 보면 해답을 찾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한때 나는 내 예민함이 혹여나 자존감의 결여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빠지기도 했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감만 높고 자존감이 낮아진 데서 생긴 예민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항상 흔들리지 않는 내 신념은 ‘결국 내가 가장 중요하다.’이다. 내가 힘들지 않고 내가 행복한 결말이 복잡한 생각 끝에 내리는 판단 기준이다. 그렇다면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큰 나는 자존감이 낮은 것은 아니다.


 예민한 덕에 생각도 많고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때론 생각의 조각이 뒤엉켜 환기를 시킬 수 있는 분출구를 막아버려 머리가 과열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은 예민함을 잘 꺼내어 쓰고, 잘 정리해서 집어넣을 줄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딱 맞다 싶을 정도로 각종 사건, 사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는 혼란한 세상이다. 한때 유행했던 밈인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생각하기를 멀리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게 편하고, 힘든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간 스스로가 누군지 모른 채 삶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내 안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갈 수 있다면, 삶은 그저 그러한 일상의 연속이 아닌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모든 성격엔 장점과 단점이 있다. 흔히들 ‘예민한 사람’이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단점을 잘 이용하면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잘 이용해 보는 것이다. 장점이냐 단점이냐는 내가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래서 난 예민해서 때론 세상의 소음에 귀를 막기도 하지만, 예민해서 세상을 더 깊이 관찰할 수 있는 내가 좋다.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