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어른이라고 착각을 하기 시작한다.
어른의 사전적의미는 아래와 같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나는 1번의 의미가 어른의 사전적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있다. 나는 끝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나의 지금 행동은 어른다운가. 나는 어른인가. 아니면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가. 그도 아니면 어른이라는 착각속에 살고있는 사람인가.
그 해 여름은 내 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름이였다. 상견례를 하고 양가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결혼할 날짜를 잡고 식장을 잡았던. 그리고 나의 배우자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던 나의 뜨거운 여름날의 생일까지. 그 해 여름부터 우리는 선택의 순간들을 계속 만나기 시작했다. 청첩장을 고르고 회사사람들에게 돌리고 나서야 모든 준비는 마무리로 향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사내커플이였는데 날을 정해 한 날 함께 청첩장을 돌리며 다녔다. 그 날 나는 과연 어떤 말들을 가장 많이 들었을까. 모든 사람들의 예상에 부합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악담'을 가장 많이 들었다. 물로 농담이라고 하면 그저 그렇게 넘길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도무지 축복이라는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말들. '결혼 꼭 하려고?', '와 이제 너희 자유는 끝이다.', '결혼은 해도 애는 낳지마.', '시댁이랑은 담쌓고 살아야해. 초장부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귀가 썪는 기분이였다. 청첩장을 돌리는 내내 나에게 진정한 조언과 덕담을 해 준 어른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사람들의 악담(?)을 들으며 청첩장을 돌리는 일은 마무리 되었다. 다행이도 나는 펄럭이는 귀를 가지지도 않았고 속에 꼭꼭 넣어두었던 황소고집같은게 있어서 그 사람들의 말은 귓등으로 들어버렸다.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고 한 해 후에 아이를 뱃속에 가졌을때도 사람들의 악담아닌 악담은 계속되었다. 임신소식을 알리자마자 나의 회사 지인들은 '이제 너 어떻게 할래.', '애 낳으면 내 인생은 없어져.', '애는 뭐하려고 가졌냐.' 등 수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조언들이 계속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집에가면 자신의 자식을 부둥켜 안고 어와둥둥하며 내새끼 금새끼 할텐데. 어딘가 아이러니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가족이야기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듣기 싫은 말들이 자꾸 내 귀에 밖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의 시댁어른들 이야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친한 동료나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신혼생활 내내 고민에 빠져 살기도 했다. 내 고민을 나눌 대상이 없었기에 아주 골머리가 터지는 시간이였다. 좀 더 잘 지내고싶고 갈등없이 잘 넘어갔으면 좋겠었던 사건사건들이 나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초장에 우선권 잡기따위는 하고싶지 않았다. 나와 평생 지낼 사람들과 잘 맞추어 살고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사람들의 조금 이상한 조언들은 나에게 독이 되었다. 오해를 하고 와전을 하고 피해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영양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기는 하는 걸까. 어른이 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몇살이 되어서야 어른의 멋이 가득 찬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에게 생각은 아주 큰 무기일지 모르지만 한 편으로는 큰 약점이다. 나도 그랬고 그들도 그렇고 우리는 어른이라는 착각속에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