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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Feb 05. 2023

청년과 로컬에 대하여

도시재생론


장소적 마케팅, 저렴한 임대료, 청년들 자립심,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시범 사업, 창업 유도,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원주민들이 중산층 이상의 예술가들에 의해 쫓겨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단 조건은 원주민들은 예술가들보다 경제적 여건이 미만이어야 한다. 그로 인해 지금의 서울은 빈부격차 만연한 도시가 되었다. 창신동과 약수역 근처에 있는 다산동이 그 예이다. 저지대 옛 건축물이 길 따라 쭈욱 이어져 있지만 정부에서는 이를 재개발로 다시 새로 구축할 것인지 아직도 논의 중이다. 그 옆에는 스카이스크래퍼처럼 높디높은 오피스텔과 마천루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우리 집 근처에도 그와 관련된 동네가 있다. 바로 공항동이다. 물론 김포 공항으로 인해 건축 재개발 및 제한을 빚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원주민들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10년 전 꽤 지난 일이었다. 혹시 용산참사를 들어본 적 있는 분 계실까 한다. 용산 재개발 원주민들의 보상 관련 이슈였고 화재로 인해 무고한 원주민들이 사망했던 사건이었다. 어느샌가 용산구에 있는 옛 집들이 점차 공실화되면서 이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논의하는 단체들과 전문가들이 등장했지만 정부의 입김은 여전히 강력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주도적으로 예술 단체에 의해 저렴한 임대료로 청년들의 자립심을 가질 수 있는 유휴공간과 경제적 협동조합을 만들도록 권고했다만 정권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종이 찢듯이 갈기갈기 날아간 용산 참사 주민들의 염원은 여전히 구슬프고 차갑다.


여러 사회적 경제 단체들과 도시재생센터는 용산 후암동 프로젝트를 하는 어느 예술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점차 새로운 로컬 사업 일환으로 바꾸려는 취지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100프로 완성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옛 건축물은 구시대적 산물이고 독재 정권의 유산물이다라고... 어찌 되었던 새로운 도시 구축에 문제를 삼았던 1980년대 구세대 건축물 논란은 여전하다.


그런데 참 웃기다.


독재 정권의 산물인 옛 건축물은 어딜 가나 있다. 조선총독부 파괴했던 김영삼 정부의 업적은 과감히 칭찬한다. 허나 서촌마을과 북촌마을에 있는 적산가옥은 일부 카페와 상권으로 형성시켜놓았다. 전 정권에서 이와 관련하여 이런 말을 뉴스에 언급했다.


"적산가옥(일제 강점기 적군의 가옥)은 일제 치하의 건축물인데 어째서 철거를 하지 않느냐."


그리고 우리는 뭣도 모르고 옛 가옥의 히스토리를 전혀 부정하고 그저 인스타에만 사진을 찍고 올린다. 감성 철학 가득하다는 말과 함께 구조 건축물의 역사적 소명조차 모르고 그냥 디저트만 음미한다. 아이러니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산가옥 또한 근대 건축물의 유산으로 남길 것인지, 아니면 재개발의 논란으로 치부될 것인지 다 제각각이다.


중요한 점은 딱 하나이다.


정권이 이토록 근대 건축물에 애를 쓰고 재개발 논지를 펼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바로 성수동이나 망원동처럼 새로운 로컬 활성화 상권으로 바뀔지도 모르지만, 그게 안될 경우 부담은 누가 질 것이냐는 책임론이다. 만약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그 낙후 지역과 동네를 매수하여 전반적인 상권 활동을 펼치면 가능하겠지만 안될 경우 예술 단체나 시민단체, 심지어 그들을 지원한 혁신 센터나 도시재생센터에 책임 전가할 여지는 크다.


과감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 또한 원주민들의 의견 또한 수렴해야 하는 과정은 단계를 넘기 힘든 도전 중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은 얽히고 얽혀 현재까지 도시 건축과 관련된 이슈가 터지니 그 어떤 청년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구매해서 자신만의 경제적 자립심을 키운다고 (혹은 청년 마을이나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개고생을 할까.


경제적 양면성이 있다.


현재 청년들이 도시 개발과 관련하여 그들의 도시적 스트레스 또한 날로 상승한다. 하지만 점차 인프라가 좋아지는 이 서울에서 어느 청년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싶을까. 아무리 도시 청년 시골파견제라는 지자체의 멋진 제도가 있으나 마나 1년 넘게 그 이전된 곳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며 얼마나 많은 예산을 받아 갈까. 행정 안전부가 주관하는 청년 마을의 취지는 참으로 좋다. 다만 조건은 언제나 청년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잉여금과 생활여금은 충분히 있어야 하며, 어느 마을마다 각 센터와 어떤 협동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더군다나 그 지역의 매력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목포를 예로 들어보자. 목포 청년 인구가 나날이 떨어지니까 청년 마을인 '괜찮아 마을'을 만들었다. 물론 1기 청년 마을이라 많은 청년들의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하지만 대표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때는 점차 괜찮아 마을이 활성화되기 직전인 2019년이었다. 어떤 기획과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나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무작정 구매하여 앞으로 불명확한 미래를 청년들의 결과물로 대처할 수 있을지 대표는 정말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아무리 청년 프로젝트와 도심상권 활성화를 이어가도 결국 하소연이 많았다는 것은 그의 히스토리를 보면(매거진) 간략히 알 수 있었고 중요한 점은 부동산 업체와의 공간 임대료 관련 싸움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늘 그렇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새로운 낙후지역을 찾았지만 부동산 업계는 이를 또 하나의 성장으로 새로 삼으려고 했다. 예술 단체와 청년들의 모험 심리를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대체하여 그들의 배는 호식 호위하였지.




장소를 마케팅하여 지가와 임대료를 상승시키는 부동산 투자자 욕망과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사업 실적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행정의 욕망이 젠트리피케이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일으킴.


By 도시재생과 로컬-청년의 실천과제 /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



이렇다. 청년 단체들이 나날이 상승하는 것에 반해 그 새로운 거점지역은 임대료가 나날이 상승한다. 새로운 로컬 상품과 아이디어 혁신으로 또 다른 상권으로 자리 잡히길 바라지만 정부의 입맛은 제각각이다. 강병기 교수가 바랬던 살고 싶은 도시, 즉 청년들이 바랬던 도시는 이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모종린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정권과 마주하며 때로는 갈등을 부추겨도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창구 모색을 하고 계셨다. 2년 전에 윤석열과 연희동 만찬을 하며 새로운 로컬 사업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길 현 정권에 간곡히 바랬지만 윤석열이 지금 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꼬락서니는 영 ...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만 작년에 진행했던 로컬 페스타 관련 이야기를 또 언급하면 예산 관련해서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정부가 로컬사업에 관심을 가져다주면 좋겠다. 그래야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한다. 강병기 교수님의 말에 씨가 있었다.]


앞서 김수근 교수를 욕하고 비난할 의미는 없었다. 다만 다시 정리하자면 정권이 추구하는 로컬사업과 청년 단체의 활성화를 위한 공모사업은 보여주기식이 너무 많다는 것. 예산의 쓰임이 적절히 어울려야 하는데 늘 언제나 다른 업체나 단체를 벤치마킹한답시고 80프로 복붙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예산을 퍼준다라니.


이러니 어떤 곳은 활성화되고, 또 어떤 곳은 나락가는거지.


[지방이 곧 위기이자 기회가 되려면 주먹구구식 정부의 명령이 아닌 청년들의 자립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관망과 기대효과만 봐달라.]


모종린 교수님의 대답에 대한 나의 의견을 덧붙인다.


청년들은 언제나 고달프다. 윗 세대들이 막론하고 만들었던 도시 개발의 틀과 재개발이라는 법적인 효력 아래에서 잠시나마 머물 수 있는 곳이 경쟁 사회 없는 탈서울 사회이건만, 거기를 가도 높은 지가와 임대료에 부담을 가지며 심지어 현주민과의 텃세, 오죽하면 부동산 업체와 용역업체까지 껴들며 구청의 민원까지 받아치는 현 청년마을, 협동조합, 청년단체들의 노고를 그 누가 이해해줄 것인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작년 로컬 성과 공유회를 보고 어딜 가나 아이디어는 다양하고 다채롭다만 정부가 퍼주는 지원의 범위를 고려하면 청년 대표들의 높은 고심과 노고, 심지어 운영 스트레스는 끝도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이제 어디란 말인가.


건축학자 강병기 교수가 추구했던 유토피아적 서울은 이제 없다. 있는 자들의 리그.


건축학자 김수근 교수가 추구했던 정부 중심의 도시개발 사업은 현재 청년들과 대립 중이며, 재개발 이슈는 여전하다.


경제학자 모종린 교수가 추구했던 로컬은 지방으로 이전하되 정부의 지원 범위 및 방법 변화에 대해 계속 일갈한다.


나, 로컬 크리에이터라 읽지만

부동산 업자의 마음에 서면 재개발이 필요하니 하겠지.

청년들의 마음을 읽으면 또 다르지. 그래서 지방으로 이전하지.

정녕 누구의 책임론인가.


나 또한 하염없이 비판만 하기에, 그저 일갈하며 생각하며 쓰기에 다소 내용이 복잡해지기에 여기서 마무리한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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