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여섯 살, 2023. 12. 5. 화요일 >
< 서른여섯 살, 2023. 12. 5. 화요일 >
#가족 #겨울 #선물
겨울인데 그리 춥지가 않다. 눈 대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런데 사실 이주 전쯤에는 제법 매서운 겨울날이 이어졌다. 일은 그즈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돌아오고 5개월이 채 안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걱정이 하나 생겼다. 겨울옷이 잔뜩 담긴 이삿짐이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달력이 11월을 향해 가는 것을 우리 가족은 몸소 느꼈다.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몸을 으슬거리게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다행히 우리 가족은 테이프가 칭칭 감긴 택배 상자를 받을 수 있었다.
들뜬 마음도 잠시. 차곡차곡 담긴 옷가지들을 꺼내는데 내가 입던 점퍼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겨울에 몇 번을 고민하고 사서 딱 한철 입었던 옷이었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 두툼해서 칼바람 부는 날이면 항상 꺼내 입었고, 그대로 이삿짐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그 옷이 사라졌다.
다행히 다른 가족들의 옷은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외출을 했는데 나는 누가 봐도 얇은 옷차림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갈 때마다 잃어버린 옷과 쌀쌀한 날씨에 대해 투덜거리자 아내는 옷을 하나 사라며 잔소리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고집스럽게 새 옷이 사기 싫어졌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날씨는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향에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며칠 정도 머물렀는데 혹시 그 사이 짐을 풀다 점퍼를 두고 온 게 아닌가 해서였다. 어머니와 동생은 집을 한바탕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패딩 1>
잃어버린 옷에 대한 아쉬움도 잦아들고, 정말 날씨가 추워져 도저히 제대로 된 겉 옷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아졌을 때 어머니는 문자를 하나 보내셨다. "네가 옷을 잃어버린 게 화가 나서 고집스럽게 얇은 옷을 걸치고 다니고 있을 모습이 선하다. 망설이지 말고 따듯한 옷을 하나 사 입어라." 그러면서 용돈을 보내주셨다. 그날 나는 내 옷을 사 입는 대신 아이를 데리고 나가 더 두꺼운 옷을 하나 더 사주었다. 그리고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싶은 날에 가벼운 마음으로 내 패딩을 하나 샀다.
<패딩 2>
동생을 만나 새로 산 패딩을 자랑하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동생은 기가 막히다는 눈치였다. 그리고 며칠 뒤, 동생으로부터 택배 하나를 받았다. 그 안에는 이불 같이 두꺼운 롱패딩이 들어있었다. 전화를 걸어 무엇이냐고 물으니 춥게 살지 말라고 보낸 옷이라고 했다.
추울 리가 있겠는가. 그 이후로 날씨는 다시 따듯해지고 오늘은 비까지 내리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춥게 떨고 있는 아들이, 형이 신경 쓰여 옷을 각각 선물하는 바람에 패딩이 두 벌 생겨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끼던 옷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부아가 치밀어 고집을 부리던 사람이 패딩이 두 개나 생겨버렸지만 날씨가 따듯해져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이 글을 적다 말고 일기예보를 본다. 어? 이번주 주말부터 영하권 날씨라고? 잘하면, 롱패딩도 입어볼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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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인사드립니다. 마지막 글을 올해 1월에 적고, 벌써 12월이 되었네요.
따듯하고 행복한 연말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옷 든든하게 입고 다니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