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을 읽고

- 지도자의 덕과 장수의 자격 -

by bansan


*도서출판 서해문집에서 펴낸 임건순의 책을 정리했다.


<손자병법>은 단순히 매뉴얼의 책략을 담고 있지 않다. 전쟁의 의미, 전쟁에 따른 손익,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욕구 등을 다룬다. 그래서 이 병법서는 상황에 대처하는 깊은 통찰의 실용 철학서라 할 수 있다. 군주와 장수를 위한 단순한 책략이나 전쟁 매뉴얼의 지식이 아니라 전쟁과 관련해 인식의 지평과 지혜를 넓혀준다.


이 책을 읽으면 현 정치인들의 태도가 저절로 머리에 오버랩된다. 손자가 보기에 한국 정치인은 참 한심한 수준일 것이다. 전쟁의 의미도 모르기에 전쟁에 대한 계획도 전망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면서 선동적이며 무책임한 말을 함부로 한다. 선제 타격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전쟁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미국의 전쟁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손자병법을 읽으면 전쟁은 군사력만으로 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심리, 정보와 책략이 난무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도 전쟁에서 이긴 사례가 많지 않다. 흔히 많은 이들이 혀를 차면서 정치가들을 욕하고 말지만 그들의 위치는 전쟁을 할 수도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는 자리에 있음을 잊기 쉽다.


손자가 산 시대는 정규군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농경시대에 비해 현재와 같이 정규군이 있는 시대는 전쟁을 하기도 쉽다. 625를 경험한 세대나 정치인들이 전쟁을 시도한다면 그들 자신이 전장에 총을 들고 나서지 않는다. 이 말은 전쟁을 결정하는 세력과 전쟁에 나서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한다.


전쟁불사를 외쳤던 남한산성의 사대부들이 민초의 아픔을 알긴 알았을까? 전쟁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김상헌의 말은 얼마나 무책임하며, 최명길을 삼전도의 굴욕의 원흉이라고 지탄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백전불태(百戰不殆):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하지 않았으며, 이 용어는 과장된 표현이다. 전쟁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지여야 한다. 그래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고 말한다. 백전백승은 전쟁을 잘하는 신이라 해석하고 웬만하면 전쟁을 해도 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백전불태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한다면 모든 계산과 준비를 갖추고 싸움에 나서므로 적어도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좋은 예가 이순신 장군이다. <명량>과 <한신>이란 영화에서 원표처럼 즉흥적이며 개인의 영달을 일삼는 장수도 있지만,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계획과 지휘가 치열하고 고뇌에 찬 결정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손자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선제타격을 운운하면서 '전쟁을 불사한다'는 투의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는 지도자나 장수로 위험하다.


남한산성5.JPG


손자는 전쟁론자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신중론 자이다. 그래서 <화공 편(火攻篇)>에서 말한다.


현명한 군주는 심사숙고하고, 훌륭한 장수는 신중히 처리한다.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고, 얻는 것이 없으면 부리지 않으며, 위급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군주는 분노로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노여움으로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계산하여 이익이 있으면 움직이고, 이익이 없으면 행동을 그쳐야 한다.


전쟁은 위급한 경우나 큰 이익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지, 상대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전쟁은 먼저 삶을 피폐하게 하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이겨도 삶을 망가뜨리고 지면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손자는 말한다.


분노는 기쁨으로 돌아갈 수 있고, 노여움은 즐거움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국가가 망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러니 현명한 군주는 전쟁을 신중히 생각해야 하고, 훌륭한 장수는 전쟁을 경계해야 한다.
(努可以復喜, 憤可以復悅, 亡國不可以復存, 死者不可以復生. 故明君憤之, 良將警之: 火攻篇)


만약 상대국의 약탈로 가족을 잃고 재산을 빼앗긴 백성이나 민초라면 분노하여 복수하는 전쟁을 외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를 경영하는 군주나 장수가 분노하여 칼을 빼들고 전쟁을 벌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조선사에서도 그랬고 현대에도 '전쟁불사'를 외치는 경우를 목격한다. 일부 대중의 정서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군사력을 높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위해서 전쟁 억지력을 키우는 목적이어야 한다.



남한산성에서 전쟁을 수행할 군인, 물자, 식량,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계획도 없던 사대부들이 무책임하게 항전을 외친다. 추위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임진왜란에서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자들이 다시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가문의 영달과 체면을 위한 전쟁불사라니. 손자가 보기에 참으로 못나고 몹쓸 사람이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적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다. 적의 성에 무모한 공격을 가하지 않고 빼앗는다. 장기전을 치르지 않고 적국을 멸망시킨다. 반드시 전승의 원칙으로 천하를 쟁취한다. 그러므로 군대는 소모하지 않고 이익을 완전하게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모략으로 승리하는 법이다(모공 편).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한다면 단시일 내로 끝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일단 시작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그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의 말을 이해한다면 위정자들이 사진 찍기 위해 초소를 방문하거나 벙크에서 회의하는 모습만 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보면서 러시아의 야만성을 비토하고 생명의 존엄을 논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은 먼저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점검하고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궁리를 하는 게 손자의 철학에 맞을 듯하다. 전쟁은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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