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히 잠들기를...
가끔 내리는 소나기가 시원하다. 머지않아 건기가 시작될 터이고 우린 푹푹 찌는 더위와 친해져야 한다. 시험 응시 접수 후 이맘때가 되면 학생들 이탈자가 나온다. 다양한 이유와 변명으로 결석하는 학생들과 실랑이하면서 관리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다.
며칠 전 한 남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학교에 잘 나오던 퀸따오였다. 번역기를 돌렸는지 어설픈 한국어였다. 본인이 몸이 아파서 이번 주 학교를 못 갔다. 죽을지도 모른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전까지 멀쩡한 녀석이 생과 사를 들먹이길래 번역기를 잘못 돌렸나 보다 생각했다. 별다른 말 하지 않고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도하는’ 이모티콘으로 답변했다.
오늘 오전에 보조 학생인 차차가 소식을 전했다. 퀸따오가 오늘 사망했다고...
작년 10월에 입학한 퀸따오는 동티에서는 보기 드문 건장한 체구에 늘 웃는 얼굴이었다. 학습 이해도가 떨어져서 보조교사를 옆에 앉혀놓고 수업하곤 했다. “퀸따오, 너는 한국 사장님들이 좋아할 만한 덩치를 가졌어. 한국 가면 일도 잘할 거 같아. 공부만 좀 열심히 하렴.” 한 번은 나랑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길래, 시험 합격하면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차원에서 종종 사용하는 말이다. 한국어 시험 접수 후 학생들의 응시표를 내가 보관하고 있다. 시험 날까지 학생들의 학습과 출결 관리를 위해 시험 전날에 배부하겠다고 공시했었다. 학생들의 응시표 보관함에서 퀸따오의 응시표를 꺼냈다. 증명사진에서도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사진 찍고 싶다고 할 때 찍어 줄 걸, 응시표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떠난 퀸따오에게 너무 미안했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동티에서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일들을 이곳에서 내 눈으로, 그것도 나의 학생이 겪은 것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례는 고향에서 치러지고 친한 학생 스무 명이 머나먼 길을 개의치 않고 참석한다고 한다.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 반 학생들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공부하자는 말을 꺼내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스무 살 청년의 채 피워보지도 못한 청춘을 우리는 오늘 묻었다. 주인 잃은 응시표만이 남겨졌다. 먼 산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편안히 잠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