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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31. 2022

연애소설을 씁시다

잃어버린 우리의 연애세포를 찾아서


최근에 연애소설을 하나 완성했다.

이 나이에 소설을 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연애소설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소설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연애소설을 쓰며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내가 창조해 낸 남자 주인공에게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주인공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형의 집약체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자 주인공은 나를 닮은 듯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도 가미해 넣었다. 물론 모든 것을 상상만으로 채울 수 없기에 내 연애사가 글에 조금씩 녹아들어 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저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연애세포가 조금씩 살아났다는 점이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기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눌려 내 가슴 제일 밑바닥에 깔려있던 그 몽실몽실한 감정들이 글을 통해 하나씩 올라왔다. 우리가 연애 소설이나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을 보는 이유도 그런 매개체를 통해 마음속 연애감정을 달래 보려는 마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요즘 각종 연애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연애 감정이라는 것이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애틋함,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항상 애틋하게 바라보고 소중하게 대해준다. 그녀에게 비난의 말도 하지 않고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녀의 편에 서준다. 오직 그녀에게만 집중하고 그녀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마음을 담은 깜짝 선물을 주기도 하고 여주인공이 힘들 때는 마음을 다해 위로해준다. 결국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또 그 사람에게 한없이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소설을 써 내려가며 나도 그런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니 옛 남자 친구이던 남편은 가정적이고 좋은 아빠이긴 하지만 어느새 이성보다는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그에겐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시작하며 연애세포 회생(?) 경험을 한 이후부터는 가끔씩 연애 때처럼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외모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가정주부로서의 삶에 익숙해져서 늘어진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 차림이 교복이 되었다. 소설을 쓰고 나서부터는 가끔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나를 본다면(?) 하는 상상을 하며 옷차림도 신경 쓰게 되었다. 물론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슈퍼리치에 혼혈 영국인이라는 설정이어서 남편과 조건은 많이 다르지만, 만약 남편이 남자 친구인 시절에라도 이런 모습을 기꺼이 보여줬을까 싶었다.


소설을 쓰며 한 가지 더 재미있었던 부분은 소설의 배경이나 사건의 사실성을 추가하기 위해 자세한 조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이 영국 남자이기도 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국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보니 영국의 풍경들, 날씨, 유명한 장소들,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게 되었고 글을 쓰면서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열망도 생겼다. 이런 호기심과 열정이 생기는 것도 소설을 쓰며 느끼는 부수적인 즐거움이다.


또한 소설을 쓰기 전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정을 하면서 만약 드라마로 만들면 누가 어울릴까 하는 생각도 내 맘대로 해봤고 실제 배우들도 매칭 해보았다.( 글로 쓰니깐 유명 배우들도 내 맘대로 캐스팅하고 나름 재미있었다. 상상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프롤로그에 등장인물을 소개하며 배우 이름을 썼지만 혹시 문제가 될지 몰라 지금은 삭제했다) 배우를 실제로 매칭하고 글을 다시 읽으니 소설은 어느새 한 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참 혼자 잘 논다~'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진짜 재밌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 보다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 재밌고 의미 있는 경험을 같이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써 본다.


매일 똑같은 삶이 무료하고 연애세포가 죽어 우울하신 분들~ 우리 모두 연애소설을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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