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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Apr 20. 2024

나의 초등문화유산답사기

35년 된 친구와 유년시절 추억여행


지난주 벚꽃이 한창일 때 우연히 구글맵으로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찾아보았다. 혹시나 하고 스트리트뷰를 보니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뭐야 고대로네.... 대박!"


어릴 적 살던 동네 사진을 보니 나의 유년시절이 파노라마처람 지나갔다.

바로 베프에게 전화를 해서 즉흥 여행을 제안했다 

(초5 때 만난 35년 된 친구이다.)


"ㅇㅇ아 우리 가락동 가자 가락동"

"뭐? 가락동? 거긴 왜?"

"너랑 나랑 함께했던 추억여행 가자고~"

"진짜? 너무 좋지!!"


우리는 여러 곳을 걸어서 돌아다니기로 한터라 차를 놓고 버스로 가기로 했다.


답사예정코스 : 가락 우성아파트 -신가초등학교 - 석촌충 - 잠실여고 앞 가나안분식


오랜만에 타는 버스에 차창밖으로 보이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더욱 설레는 여행길이었다. 예전 초등학교 때 등굣길처럼 가는 길 내내 친구와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대부분의 주제가 애들 걱정이었지만 그또한 좋았다.)



1시간 남짓한 시간을 달려 드디어 가락시장 정류장에 도착했다.

가락시장... 중3에 이사를 갔으니 무려 33년 만이었다


"우와 가락시장 봐 엄청 깨끗해졌다!!"


예전에는 곳곳에 쓰레기도 보이고 여름이면 수박이나 야채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지금은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보기 좋았다.

 


"와 ~ 저기 봐 롯데타워 엄청 가깝다!!"


1989년 잠실에 롯데월드가 들어왔을 때는 엄청 큰 충격이었다. 어린이 대공원이나 자연농원(에버랜드의 옛 이름)이 아닌 새로운 놀이동산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동네가 들썩였다. 오픈초기에는 각종 이벤트도 많이 했었다. 유년기에는 거의 롯데월드에서 살다시피 했었는데 이제는 제2롯데타워라니 세월이 실감 났다.



"ㅇㅇ아 저거 아직도 있네 우리 저기서 태권 V 나온다고 했었잖아 "

"맞네... 넘 웃기다. 원래 저기에 과일 야채그림 있지 않았냐? 겉에다 뭘 씌워놨네"

(아래 사진에 깔때기 모양의 구조물인데 아직도 저게 뭔지 모르겠다)



드디어 가락우성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야 이건 사진 찍어야 돼!! 우성아파트다!! 진짜 그대로야... 그때 있던 빵집은 없어졌겠지?

아... 없어졌네..."


30여 년 전 있었던 아파트 상가 빵집엔 당시에 생크림 케이크를 조각으로 팔았었다.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케이크 하나 사는 것도 큰 맘을 먹어야 했었다. 다행히 그 빵집은 조각케이크를 팔아서 나는 용돈을 모았다가 언니와 돈을 합쳐서 조각케이크 하나를 사 먹었다. 당시에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아직까지 그 달콤한 맛이 생생히 기억난다.



"야 저 8동에 ㅎㅎㅈ 살지 않았냐?"

"맞아 걔 거기 살았지"


갑자기 35년 전 친구들 이름이 팍팍 떠올랐다. 3동엔 누구 4동엔 누구...

친구와 우리 집은 우성아파트 뒤편 주택가였다.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도 우성아파트 사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었다.



드디어 우리의 추억이 담긴 놀이터에 도착했다.

" 이제 모래가 아니고 우레탄이네... 아쉽다. 저 모래에서 동전 주워서 오락실 많이 갔었는데..."

" 맞아... 오락실에 맨날 가서 엄마에게 많이 혼났었잖아..."


'따다 따따 다 땄다~'

갑자기 슈퍼마리오 BGM이 들리는 듯했다.



지나가는 낯선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35년 만에 친구와 추억의 놀이터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 저 그네 위치 고대로 뭐니... 저 밑이 바로 일명 모래은행...)



당시 아파트 사는 아이들은 놀이터 입구로 다녔지만 주택가에서 온 아이들은 저 울타리를 넘어 다녔었다. (원래는 아래 사진에 있는 검은 울타리 밖에 없어서 주택가에서 자유롭게 넘어 다녔는데 이제는 높은 울타리가 쳐져 있어 뭔가 씁쓸하다.)



친구네 집은 이제 원룸 건물이 들어섰다.

(친구야 너희 집 어디 갔니....)



친구네 집을 거쳐 이제 예전 우리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은 친구네 집에서 큰길을 건너 반대편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기 아쉬워 우리 집까지 같이 갔다가 다시 친구집으로 같이 갔다 다시 우리 집으로... 그걸 몇 번씩하고 헤어지곤 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인지...)



우리 집 앞에 있던 큰 놀이터도 그대로였다. 비록 시설도 새 거고 바닥도 역시 우레탄으로 변했지만 그 느낌만은 변하지 않았다. 눈이 오면 눈싸움도 하고 공터가 넓어 눈사람 만들기도 안성맞춤이었다. 미끄럼틀 뒤편으로 내가 살았던 집이 어슴프레 보인다. 이제 원룸건물이 되었구나....


당시 우리는 주택 밑에 세 들어 살았었는데 그런 가정형편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좋아졌지만 사춘기에 들어섰던 초5 소녀에게는 심각한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놀이터를 보니 그때의 복잡했던 마음까지 되살아 나는 것 같아 벤치에 앉아 친구옆에서 한참을 울었다. 놀란 친구가 휴지를 건네며 토닥였다. 우리가 매일 몇 시간씩 이야기 나누었던 그 벤치에서 과연 크면 뭐가 될까 궁금했었는데 둘 다 무사히 잘 큰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그 당시 고생했던 부모님도 생각나고 가슴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게 올라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감정에 적잖이 당황했다. 한참 울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아직까지 나도 모르는 응어리가 있었는데 그게 풀린 느낌이었다.



드디어 매일 등교하던 길에 들어섰다. 어릴 때는 진짜 멀게 느껴졌는데 네이버지도로 도보시간을 재보니 고작 10분 거리였다. 무슨 얘기를 그리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쉴 새 없이 수다 떨면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친구와 옛 등교길을 걸으며  '애들이 등교길에 횡단보도 건너는 게 걱정되서 학교 바로 옆 아파트로 이사를 한건데  혹시 친구와의 등굣길 추억을 억지로 뺏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드디어 신가초등학교 도착!

베프와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처음 만났다. 원래는 각자 다른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동네에 학교가 새로 생기면서 2학기에 신가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특별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없어 좀 외로운 생각이 들었는데 2학기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갔던 학교에서 평생 베프를 만났으니 인생이란 게 참 재밌는 것 같다.(그 이후엔 신기하게도 우린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그때 난 부끄러워서 이야기도 잘 못했는데 네가 나한테 뒤돌면서 지우개를 빌려달라 그랬잖아... 그래서 우리가 친해진 거야" 친구가 수줍게 고백했다.

"내가? 그랬구나... 잘했네 나..." 친구가 그 오래된 일을 기억하는 것에 놀라면서 멋쩍게 웃었다.

"허정선생님 생각나지? "

"당연하지... 허허 웃으시며 정이 많은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지도해서 만든 노래책 너무 소중했는데... 지금까지 살아계실까?"

(난 신가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내 인생 선생님을 꼽는다면 신가초등학교 5학년 2반 허정선생님이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



가락동에서의 답사를 뒤로하고 맛집의 성지 송파로 넘어왔다.

송파 잠실여고...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진짜 고대로였다.


"뭐야... 시간이 멈춘 것 같아"

"KFC와 아메리카나는 없어졌구나."

"당연하겠지... 백만 년 전에 사라졌겠지..."


처음 KFC가 들어선 후 '비스킷'이란 것을 처음 먹었던 충격이 아직도 생각난다.

버터향 가득했던 그 맛...!!!



드디어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가나안 분식!

아주머니 아직 건강하실까?

간판에서 역사가 느껴진다.

이곳은 이미 스타들의 추억맛집으로도 너무나 유명하다.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꼭 먹었던 것 같다.



예전엔 떡볶이 2인분에 에 쫄쫄라라(쫄면사리 2 라면사리 2?) 이런 식으로 시켰던 거 같은데(기억이 가물가물...) 이제는 아예 세트로 판매하신다. 쫄쫄라라를 다시 말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이곳의 시그니쳐 딸기빙수도 먹고 싶었지만 너무 배가 불러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만족했다.

계산을 하며 아주머니 얼굴을 찬찬히 보니 많이 늙으셨다. 흰머리도 가득하다. 눈물이 핑돌았다.


"아주머니 건강하셔요. 또 먹으러 올게요"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신다.



식사 후에 주변을 걷다가 엄마손 백화점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손 백화점은 그 당시 핫플레이스였다. 어릴 때 엄마손 백화점 내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도 많이 봤었다. 그 옆에 잠실학원도 유명했는데 송파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한 번쯤은 다 다녔을 것 같다.


"ㅇㅇ야 설마 엄마손 백화점 아직도 있는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혹시 모르니 한번 가보자고 했다.


" 뭐야... 아직있어... 대박이네..."



엄마손백화점을 보니 또 추억이 밀려왔다. 꽤 먼 거리였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요즘 초등학생들은 집 학교 학원이 다 근처라 반경이 작은데 우리는 참 먼 거리를 걸어 다녔던 것 같다.

옆에 있던 잠실학원은 없어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잠실학원은 없어졌나 봐 "

" 그러게... 참... 너 ㅊㅅㅎ 좋아해서 학원 다녔었잖아..."

"ㅊㅅㅎ이 누구더라? 아......!!! 걔? 아우야 내가 언제 좋아해...."

서로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엄마손 백화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올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보니 걸음수가 만보를 넘겼다.

초등학교 때는 이렇게 많이 걸어 다녔으니 살이 틈이 없었을 것 같다.




롤러코스터같았던 나의 초등문화유산 답사기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친구가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뭔가 재밌기만 할 것 같았는데 갑자기 터진 눈물에 당황도하고 후련한 마음도 들고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고 참으로 묘한 여행이었다. 항상 아이들을 돌보며 루틴화 되었던 잔잔했던 내 마음에 커다란 바위를 던진 느낌이었다.


누구나 저마다의 학창 시절 추억이 있고 곳에 함께 있었던 친구도 있을 것이다. 일상이 정말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동네를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와 같이 가보는 나만의 추억문화유산 답사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 어릴 적 상처가 다시 떠오를 수 도 있고 복잡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결국 집에 오는 길에는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건 우리가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재나 유물을 봤을 때 이상의 감동일 것이다. 등굣길, 놀이터, 떡볶이집, 학교등은 남들눈에는 특별하지 않겠지만 우리 눈에는 아주 귀한 문화재 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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