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 (+새로운 소식)

by 해서뜬 손유빈

글을 올리지 못하는 지난 한 달간 어딘가에 발행하지 못할 글을 열심히 썼다. 인간은 자신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을 쓴다는데, 나는 성향상 그러지 못한다. 내 글은 당시의 나에게 그 자체로 진실이다. 누구는 자기소개서도 자소설로 쓴다는데, 나는 그때에도 늘 진실로 썼다. 거짓으로 쓰느니 안 쓰고 말겠다. 나는 내가 그렇게 쓰는 사람이라 자부한다. 글에서 보이는 나의 변화를 목도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쓴다.


나는 한달 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솔직하게 어떤 것이 괴롭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총 25개, 지금까지의 글은 다 매주 무언가를 느끼고, 통찰하고 썼다. 물음표가 생기자마자 바로 어디에서든 답을 얻을 수 있었고, 교훈을 삼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은? 정말 암흑 속이었다.


정수를 비롯한 동료들과 격렬히 다투었다.

다투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일방적으로 내가 퍼부었다. 나를 제외한 셋은 함께 다니던 회사가 첫 회사였고, 나와 너무 다른 업무 스타일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하지만 더 많은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알려주고, 이끌어줘야지라며 참던 마음이 기어코 동이 나버린 것이다.


그리하야 정말 사랑하는 동료들에게 기어코 함께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이별 멘트를 했다. 고상하게 썼지만 여기 쓸 수 없는 몇 가지 발언들을 하기도 했다. 이 멘트는 일주일 정도 지나서 자의에 의해서 다시 수습되었다. 하지만 그 이별 선언이 절대로 마음에도 없으면서 윽박을 지르거나 괜히 엄포를 놓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이후 동업자 정수와의 대화에서 발췌하자면,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파멸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일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각자 역할을 안 해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라고 표현했지만 본질은 내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나는 왜 이정도밖에 안 될까. 이정도밖에 안되는 나에게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기대고 의지하는 걸까? 너무 버겁다. 만약 내가 틀렸으면 어쩔 테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동안 나는 분노와 서운함, 괴로움과 자책 사이를 헤매면서 지냈다. 나는 어떻게 대표인 주제에 그만두자는 말을 이리 쉽게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나를 지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쉬었다.

출근을 안 하고, 집에서 남은 일을 처리했다. (다 외면하면서 살기란 어려운 사람)


자책과 자기위로를 오가는 사이에 회사는 말 그대로 혼돈으로 변했다. 정수는 멘붕이 왔고, 수빈이는 아팠고, 지민이는 우왕좌왕했다. 이사님은 나를 붙들고 두둔을 포함한 걱정과 우려를 한 시간 가량 쏟아내셨다. 다 알아요. 안다고요. 하지만요! 이번엔 정말 안 되겠어요! 나는 한 시간을 그렇게 대꾸했다.


사람들은 회사는 다 그런 거라고 말한다. 고통스럽고, 괴롭고, 불편하고, 얼른 집으로 뛰쳐가고 싶어지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다고. 그런데 나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적어도 회사를 운영하는 몇달 동안은 출근하면서 행복했다. 함께 먹을 점심을 준비하고, 매일 회의를 하고, 일이 되어감을 느끼고, 성과를 내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이 사람들과 그려낼 1년 후, 10년 후가 기대되었다.


그런데 일의 중심이 나에게 쏠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고장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말도 안되는 무게추가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내가 시작하자고 하고, 내가 마무리 짓고, 끝내 그 모든 것의 의미를 내가 찾아야만 하는. 어디론가 자꾸만 숨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네가 (아리씨에서는 경력직이니까) 외부 사람이잖아. 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하는 거구나' 바라보면서 배우고 싶었어. 너는 그렇게 일하는 구나, 그런데 나는? 자책했던 것 같아."


정수는 나에게서 무언가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억울했다. 사업을 이제 시작한 마당에 내가 이들에게 가르쳐줄 것은 무엇이겠는가.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생각보다 내가 아주 잘 정리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토록 충실한 '직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잘 정리된 내 모습이 너무 숨막혔다. 그건 내 기준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간 만나왔던 직장이 나를 재단하면서 생긴 습관에 가까웠다.


대표가 되고 나서 탁 트인 자유를 느낀 이유도, 내가 드디어 그 무엇도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나와 행복한 터전을 일구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고, 그저 정리된 사람 취급했다. 그게 너무 너무 속상했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 <19호실을 가다>의 수전처럼 나에게도 19호실이 필요했다. 정수가 따로 방을 얻어주겠다고도 했다. 사실 그런 공간 없이도 나는 충분히 고립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두운 방 안에 나를 누이고, 가만히 내 생각 속을 헤엄치다보니 부표처럼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들에게 너무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너무 좋은 대표이자 동료이고 싶어서, 나답지 않은 긍정과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다. 조타실에서 엄청난 바보 짓을 벌이면서 대단한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척을 했고, 동료들은 나로 인해 안심했다. 안심시켜서 좋았으면서. 나는 금방이라도 반파될 배를 떠올리며 불안해 했다. 그래, 결국 다 내 탓인 걸.


사무실로 돌아가서 정수와 지민을 만나고, 이들이 새로 세운 업무 분장 계획을 들었다. 다음 날 몸이 좋지 않은 수빈을 위해 수빈이네 집을 찾았다. 장장 다섯 시간의 대화를 거쳐 화해했다.


그렇게 모두가 예상했듯이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 바보야!!!! 나는 정말 부족해!!!!! 나는 정말 냉소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러지 않은 척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그렇게 외치면서. 회사에 없는 동안 각자와 연락하면서 나는 떠날 때 듣고 싶었던 말을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수에게는 동업자로서의 적극적인 태도를 기약하는 말을, 수빈에게서는 나를 비판하고 화내는 말을, 지민에게는 숨지 않고 표현하겠다는 말을 모조리 들었다.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으니 다행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공감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는 걸 안다. 근 3주가 넘는 시간들을 추리고 추려 꽉 눌러 담은 글이기 때문에. 내 소중한 세 명의 독자만 이 행간 사이의 일들을 잘 간직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더위가 가시던 계절에 우리가 이렇게 지독하게 싸우고, 화해했던 일을 기억하고자 말이다.


(+)

2월부터 계속 만들고 싶었던 레터를 시작하게 되었다

https://dobigticket.stibee.com/


지독했던 9월과 10월을 지나 11월, 우리는 여러가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레터도 그 중 하나다. 이 시작이 또 어떤 과정으로 나를 데려다줄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행복할 것 같아 시작한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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