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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02 ]

- 조건 없는 응원은 큰 감동이었다 -

by 올제

이번 제주도 여행은 내가 제작하는 인간극장이었다.

인생은 삶의 순간순간이 모여서 누구에게나 인간극장이 되는 것 같다.

아주 연로하고 장애를 가지신 어머니와 같이 제주도로 가기 위해서는 휠체어가 필요했고 휠체어를 상시로 이용하기 위해서 자가 승용차가 필요했으며 배편을 이용해서 제주도로 입항해야만 했다.


시기도 여름 장마철인 6월 말인지라 300mm 물폭탄이 쏟아진 6월 30일, 몹시 흔들리는 배에 승용차를 싣고 5시간 동안 몸을 맡긴다.


뱃멀미를 하는 어머니를 위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손을 꼭 잡아드리고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면 어머니의 멘트는 정해져 있다. 자식과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이다.


니 아부지, 내를 만났기 때문에 하고 지번 거 다하고 편안하게 살다 갔다 아이가


내가 판단해 볼 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아버지의 예술가적 기질 때문에 하고 싶은 것 다하시고 어머니의 다소 억센 성격과 미약한 요리실력 때문에 집밖으로 도신 것 같다.

어려운 환경에서 제주도 여행을 시작한 만큼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탄성은 내 가슴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참 고마운 사람들...


제주도여행하는 동안 저녁에는 우리 집사람이 샤워를 시킨다. 덩치가 아주 큰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고 난청이라 안 들려 샤워시키는 일이 몹시 힘들다. 특히 집에서 하는 샤워는 어렵다. 그래서 대개는 목욕탕에 세신을 하곤 하였다. 이 글을 통해 부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런데 참 난감한 일이 생겼다.

어머니를 씻겨드리기 위해 보청기를 샤워실 앞에 두고 샤워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그 사실을 몰랐던 어머니가 밟아버렸다. 순간 멘붕이 왔다. 어머니는 고도 난청이셔서 우리는 대화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제주여행일정을 포기하고 급하게 보청기를 구해보기로 하였다.

이비인후과도 둘러보고 기존 보청기회사에 수선을 의뢰하였지만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서귀포 다비치보청기 판매점이었다. 상담사님은 육지에서 오신 손님이라 육지로 가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해주시면서 아주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시고 무료로 한 달간 빌려주신다고 하신다.

데모버전이라 이전 보청기만은 못하지만 어렵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보청기 상담사님은 작은 배려를 해준 것이지만 대화가 절실한 우리 모자에게는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몸이 힘들면 설득해서 나서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휠체어에 다비치 보청기 봉투를 들고 계신다.>

정말 고마운 분이 또 계신다.

하루종일 휠체어를 타신 어머니의 상황에 맞추다 보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잠시 휠체어에 쉬도록 하고 조용히 걷기를 하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중문색달해수욕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면서 나의 시름을 달래고 답답했던 기분을 전환시켰다.

그런데 나무그늘 아래 어머니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일트럭 사장님에게 해수욕장 맨발 걷기 잠시하고 올 터이니 우리 어머니 조금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하니 “여기 와서 편하게 나랑 이야기도 하면서 쉬라고 하세요” 하면서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감동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속에서 나오는 것인가 보다.


제주도 서귀포에 가면 베케라는 개인정원이 있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로 구성한 정원인데 사장님만의 독특한 철학으로 일반정원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입장료가 12,000원이고 커피와 음료는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사랑받는 곳이다. 한정된 소수의 인원이 예약을 하여 정원에 관한 도슨트 설명을 받을 수 있어 한국정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장애인은 무료입장이라 한다. 중증 장애인은 동반자까지 무료입장이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개인사업체에서는 거의 누리기 힘든 혜택을 누렸다.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유를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이곳에서 꼭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정성을 다해 멋진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도 참 고마웠다. 인생사진이라 할 만큼 멋진 사진도 여행지에서 만난 분이 찍어주셨다.>

여행도중 어머니의 허리와 고관절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을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다. 서귀포 중문에 있는 시골병원 같은 느낌의 파티마통증재할의학과 의원이었다. 시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주 고객인 노인성 통증관리 전문의원처럼 보였다. 노숙해 보이는 원장님은 허리가 많이 아프다는 할머니의 상태를 보시더니만 한 말씀하신다. "무릎도 아플 텐데요?" 협착증 중증이라고 하신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는 나에게 "할망들은 수술도 안되고 살살 달래가면서 그렇게 다들 사세요." 하시면서 주사 맞고 신경통이 추가된 처방전을 주셨다. 그리고 병원비를 계산하니 1,900원이라고 하신다. 내가 받은 느낌은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서 봉사활동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휠체어로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다. 휠체어를 가진 분들에게 대한항공 회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이번에 알게 되어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장애우 전용 리프트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탑승하도록 정성을 다해 돌보아 주었다.


어머니와 휠체어로 다니면 비슷한 연령의 할머니들께서 참 보기 좋다면서 말을 걸어온다. 난청이라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 마음만은 전해지는 것 같다. 세상에는 95%의 선한 사람들과 5%의 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살아있는 모든 날들은 아름다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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