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호주식 브런치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 Bills와 같은 브랜드가 들어왔던 2015, 6년 정도가 아닌가 한다. 호주식 브런치란 뭔가 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 식용 꽃과 발사믹 글레이즈 같은 것으로 접시에 마법진을 그려가며 알록달록 화려하게 꾸며놨는데 먹어보면 뭘 먹는지 잘 모르겠는 음식들이 내겐 호주식 브런치다. 한남동에 있는 유명한 호주식 브런치집을 갔을 땐 아보카도 토스트를 시켰더니 아보카도는 찻숟갈 하나 정도만 달랑 나왔었고, 삼각지에 있는 한 곳에선 에그 베네딕트를 시켰더니 청경채가 잔뜩 흩뿌려져 있어서 샐러드를 먹는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호주식 브런치였다. 쓸데없이 비싸고, 뭔가를 마구 올려놓은 여러 가지 재료의 잡탕.
아니면 한국식 호주식 브런치가 그렇게 타락한지도 몰랐다.
멜버른에 와서는 거의 매일 브런치를 먹은 것 같았다. 그게 이곳 사람들의 스포츠였다. 호주의 대표 스포츠는 풋볼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보간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크리켓? 한여름 살인적 뙤약볕에서 니트 조끼와 긴바지를 입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공을 맞추는 스포츠는 차라리 코미디였다. 풋볼이고 크리켓이고 죽고 못 사는 국가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풋볼이고 나발이고 소닭 보듯 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그랬다.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브런치를 썰어가며 영화와 책을 얘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갔던 1월은 심지어 세계 3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호주 오픈이 한창이었지만 우리 세계엔 그것도 남 이야기였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주말에 어디 가서 무얼 먹었다고 하는 대화가 주였고,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꽃과 발사믹 글레이즈를 흩뿌린 추상화 같은 음식 사진이 흔했다. 어디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쉽게 교환이 됐다.
"It’s amazing."
세바스찬은 그 소릴 잘했다. 어딜 가서 무슨 브런치를 먹었는데 어메이징 했다고. 꼭 '엄'자에 강세를 넣어 '엄'메이징이었다. 그 소릴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돈을 주고 줄을 서가며 사 먹었는데 어메이징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애써 좋았다고 확언하고 싶어 하는 속셈을 느꼈다.
멜버른에서 먹은 브런치들이 그랬다. 메뉴를 고르고 음식이 나오면 과도한 장식에 짐짓 탄성을 터뜨리고 처음 한 입을 먹고는 '음' 소리를 내가며 음식 맛이 어떻냐고 묻는 상대방에게 "It's really good!"이라는 뻔한 말을 하지만 그렇게 먹어놓고 다시 찾아간 곳은 없었다.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브런치는 끝없는 실망뿐이었다. 어쩌면 언제나 과도해 보이는 메뉴만 시키려는 내 자세가 틀린 걸지도 몰랐다. 어느 식당이나 메뉴 제일 맨 첫 줄에 보이는 복잡해 보이는 주력 메뉴를 지나면 토스트, 아보카도, 달걀과 같은 기본의 음식을 입맛대로 고를 수가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시켜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걸 식당에서 먹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래도 자꾸 브런치를 먹으려는 건 무슨 마음일까? 화려하고 비싼 음식이 주는 풍족함 때문이다. 나쁜 소비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보려는 호기심도 있었다. 다소 과장을 보태 포장하자면, 그런 도전의 의지가 없으면 새로운 맛을 알지 못하고 영영 익숙한 음식만 찾다가 끝나버릴 터였다. 세계 어디를 가서도 맥도널드와 스타벅스만 찾고 밤에는 신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소세지를 올린 에그.베네딕트. 눈에 보이는 딱 그 맛.
브런치 와플. 장식을 잔뜩 올린 호주식 브런치의 전형.
오코노미야끼 에그 베네딕트. 달걀 밑으로 볶음밥이 깔려있다.
소프트쉘 크랩 에그 베네딕트. 스리라차 소스를 뿌려 동양의 맛을 흉내냈다.
크로와상으로 만든 에그 베네딕트. 가츠오부시를 뿌려 단맛과 감칠맛을 더했다. 호주의 브런치는 이렇게 동양의 맛을 많이 접목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