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녀다.
나는 키가 크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장녀인 나는 항상 어른스럽다, 듬직하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이터울이 나는 동생이 있어서 인지,
또래보다 훌쩍 큰 키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지,
사람들은 나를 또래 어린아이 보다 성숙한 아이처럼 여겼다.
어른들의 칭찬이 좋기도 했지만
때론 나도 귀여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 시절 나는 짧은 머리를 곧잘 하고 다녔다.
두발규정이 있던 그 시절,
단발머리가 유난히도 안 어울렸기에 한 선택이었다.
큰 키의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닐 때면 곧잘 남자로 오해받곤 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엄마, 여동생과 함께 목욕탕에 갔는데 남탕표를 받기도 했다.)
친구들은 나랑 다니면 남자친구와 다니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여고에서 나는 기대고 싶은 친구였다.
듬직하고 믿을만한 그런 친구.
친구들은 내 옆에 나란히 서보고
'남자친구랑 나란히 서면 이런 기분일까?'하고 말하며 까르르 웃곤 했다.
여고라고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S.E.S가 가요계를 강타했던 그 시절,
십 대 소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볼 만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린 첫사랑의 이미지가 돼 보고도 싶었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건장(?)했다.
나를 귀여워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그런 남자보다
나를 보호해주고 싶다고 느끼는 그런 남자를.
남편은 그런 남자였다.
나를 귀여워해준,
유일무이한 사람.
내가 살아온 이 세월 속에서
나를 이렇게 귀여워해준 사람은 부모를 포함해서도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반백이 되어가는 이 순간에도
남편은 "귀여운 우리 부인!"이라고 외쳐준다.
나는 그게 너무 좋다.
보호받고 사랑받는 느낌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사실 가끔은 '솔직히 내가 그리 귀여울 일은 아닌 거 같은데...'라는
메타인지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ㅎㅎㅎ)
호호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
남편에게 계속 귀여운 부인이고 싶다.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고 귀여워해주는 남편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
"부인~~!!!"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