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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Oct 10. 2022

병실에서 보낸 스물아홉의 끝자락

갑상선 암과 자궁 근종

  최근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다시 보고 있다. 지역의 어느 대형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여째. 예전에 병원의 일원이 아닐 때 봤던 드라마 내용들이, 어느새 병원의 일원으로서 일하는 와중에 보니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의학 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수술 장면이 나올 때에는, 불과 몇 달 전에 받았던 갑상선암 그리고 자궁 근종 수술에 대한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갑상선암은 집에서 먼 타지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아직까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수술장으로 홀로 향할 때 사무치는 서러움과 외로움이었다. 갑상선암 수술 특성상 목이 드러나야 하는 수술이라서 상의를 두 겹 겹쳐서 수술에 용이하게 입었는데 그래서 수술실로 향하는 이동 베드에서 실제 수술장의 베드로 옮겨갈 때에 가슴이 드러나는 약간의 수치스러움도 있었지만, 수술장에서 누군가의 배려 깊은 손길에 부끄러운 시간은 덜고, 그보다는 눕혀진 내 몸을 두고 주위로 바삐 움직이는 모습들에 나 홀로 긴장감을 곱씹었다. 수술 후 약 반년이 지난 지금에 수술장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프로포폴 얼마 들어갑니다'라고 하는 말뿐이었다.

  몇 시간 후, 눈을 뜨고 밀려오는 사무치는 고통과 침조차 삼키기 어려운 불편감에 그날은 밤을 꼬박 지새웠다. 하필 코로나 시기여서 그날만 당일 수술 환자가 넷 중 셋이었던 우리 병실은, 그날 밤 해당 간호 통합 병동의 '집중 인력 필요 병실'이었달까..

'누군가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괜히 간호사님이나 조무사님들을 성가시게 하기 싫어서'라는 마음은 둘째 치고, 밀려드는 고통에 세명의 호출벨을 새벽 중에도 끊이지 않고 울릴 수밖에..

간병을 해줄 보호자가 머무를 수도 없었기에 그나마 간호 통합 병동인 혜택을 많이 받았다.

  그런 '민폐 아닌 민폐'를 뒤로 하고 다음날, '우리 셋'은 눈 씻듯 회복되었고 고작 개인 냉장고에서 얼음찜질팩 하나 꺼내지 못해 아등바등 호출벨을 누르던 우리들 언제 그랬냐는 듯 병실과 복도를 활보하고 다녔다.

나의 경우에는 계속 흰 가래가 끊이지 않아 며칠간 힘들어서, 나랑 달리 그런 증상이 없는 이들이 부러웠고 혹시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런 게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걱정들은 '기우'였고, 쓸데없이 과하게 챙겨 온 짐을 조금씩 편의점 택배를 이용해 집으로 부칠 꿍꿍이도 해볼만큼 회복되었으나, 괜히 무리하다가 수술 후 사흘 째는 코피를 잔뜩 쏟아 지혈제를 써야 했다.

  수술 당일 밤, 밀려드는 고통과 외로움을 병실 개인 커튼 속에서 낯선 도시의 창밖 풍경을 보면서 삭이면서, 길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세월도 잠시나마 돌이켜보았지 싶다. 아니, 그 당시에는 그저 고통과 적막함 뿐이었지만 이제 와서 그날을 돌이켜보면, 당장 어떤 복잡한 일의 한가운데 있어 어지러운 내 마음이 다잡아지고 더 굳건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날의 고통은 지금의 내 모습의, 내 삶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3개월의 시간이 흘러서 나는 또 한 번 수술대에 올랐는데, 갑상선암을 발견하게 된 계기인 '생리량 과다' 증상의 원인이었던 자궁 근종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원래 직장 근처의 병원에서 자궁 근종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수술 전 검사'에서 갑상선 수치 이상이 발견되어 수술이 취소되고 이후 정밀검사를 통해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던 것이다. 초반에는 과다 출혈로 인해 수혈까지 했지만, 다행히 일련의 과정 동안 생리량이 안정이 되어서 생리문제에는 약간 걱정을 뒤로하고 그럭저럭 견뎌왔다. 돌이켜보면 생리량이 갑자기 많아져서 일상생활, 특히 업무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고 밤동안은 앉아서 자는 기간도 길었다. 결국 그 모든 것(근종, 갑상선암)으로 일을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

  근종 수술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받았는데, '내일모레 서른'인 다 큰 딸내미를 간병한답시고 어머니는 지정 보호자가 되어서 일주일 내내 곁에 머무셨다.

엄마의 고단한 얼굴을 보면서 이제 다시는, '정말 아프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엔 엄마가 옛날부터 항상 강조해오셨던 '스트레스 관리(가족 간에는 '독소 해독'이라고 부르는 것)'에 공을 들이고 있다.

먼저 '운동으로써 하루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몸의 피로를 푸는 것'이다.(가끔은 음식으로 피로를 풀기도 한다.)

요즈음엔 반신욕과 퇴근길 산책 및 스트레칭을 한다. 특히 집이 위치한 곳은 산을 바로 뒤에 두고 있어 공기가 참 좋아서 선선한 여름 날밤에 그 공기를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매사에 '너무 끙끙 앓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세상엔 해결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특히 '이미 벌어져버린 일'이라면 빨리 인정할 건 인정하고 떨쳐버리려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곱씹으면서 나 자신을 책망하고 갉아먹는 일은 참, 습관이 되어버리기 쉬운 것 같다. 이제는, 가급적이면 퇴근 후에는 몸과 마음의 긴장감을 한껏 풀고 나 자신의 평온한 내면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허물없는 대화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가족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까'하면서 입을 꾹 닫고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내가 속상했던 일이나 힘들었던 것을 숨기지 않고 얘기한다. 그러면 가족들 중 누구든지 위로나 충고 혹은 농담을 해주는데 그 말을 듣는다 해서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다음날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가족들이 해준 얘기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 문제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난생처음 스물아홉에, 두어 차례의 전신마취 수술을 받으면서 잊고 있던 일들도 상기할 수 있었다.

특히,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것.'

갑상선암 정밀검사 결과를 앞두고, '왠지 암일 거 같다'는 걱정에 인터넷상 갑상선암 카페에서 환우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었고 엄마랑 결과를 들으러 간 날, '암입니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흔들리시는 엄마를 이끌고 나와서 '내가 다 알아놨다'라고 하면서 그날 바로 수도권의 어느 병원에 외래 예약까지 어렵사리 마칠 수 있었다.(비록 갑상선암이 다른 암들에 비해 대수롭잖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작 가족이나 본인이 걸리면 느껴지는 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수의 환우들은 암 진단 후 심란한 와중, 주위의 '이상한' 위로와 조언들이 더 힘 빠지게 했다고 한다.)

 여하튼 두 차례의 수술로, '젊음=건강'이라 자부하면서 주위의 만류와 몸의 이상신호에도 일주일을 내리 휴일 없이 일하던 나는, 이제는 좀 덜 벌어도 쉬엄쉬엄 사는 방식을 계획에 없이 실천하게 되었다.

가끔 패기 넘치는 또래들을 보면 한때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너무 일찍 떠나보낸 갑상선이 젊은 날 '나의 무모했던 객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 와서야 나의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운동과 휴식, 재충전 그리고 제시간에 잘 자고 잘 먹는 것. 머리론 알지만 의외로 실천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 기회를 빌어 지난 (바쁜 현재에는 잠시 잊고 살 때가 많은) 투병생활을 회고한 데 큰 의의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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