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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05. 2023

단 하루의 가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서평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흘려보냈던 모든 하루를 추모하자. 그 하루살이들은 결코 그렇게 생을 마감해서는 안 됐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마지막 장을 덮고 들었던 생각이다. 주인공인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하루가 값지고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치열함은 숭고하다. 그렇기에 반문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그 숭고한 하루보다 더 값졌던 날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기록문학, 수용소문학, 증언문학 등으로 불린다. 본작은 실제 정치범으로 오랜 기간 수용소에서 생활한 작가가, 그 경험을 십분 살려 써내려간 작품이다. 물론 일기처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일부 각색하거나, 강조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본작은 슈호프의 시점에서 수용소 기상 시간은 오전 5시부터 취침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하루에 일어나는 일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일부 과거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정직하게 순행적 구성을 따르기에 본작이 하고자 하는 말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형기가 끝난 죄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p43


 본작은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다. 명확한 죄명도 없이 끌려온 정치범만을 이야기 핵심 인물로 구성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 비롯됐다 볼 수 있다. 


 본작을 다 읽고 난 후에 명확한 공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슈호프의 행적에 따라 일부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볼 수는 있으나, 작가는 공간 묘사에 크게 힘을 쓰지 않았다. 참조한 논문에서는 “작가는 슈호프가 지내는 강제수용소의 형태를 특징짓지 않음으로써 이 공간이 소련에서 유일한 수용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김원한, 러시아학 제26호 (2023. 2. 28.), pp. 85~107 충북대학교 러시아⋅알타이지역 연구소 p97)”라고 이를 설명했다.


구매한 책이 불량이라고 지인한테 말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귀한 책이네요!"라고 해주셨다.


슈호프는 그제서야 빵을 아낀다는 계획이 결코 빵을 아낀 셈이 아니라는 것을 톡톡히 깨달았다. p59


 물론 기록문학으로서 본작의 가치는 훌륭하고, 그런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 끝까지 읽었을 때 가장 매력적이었던 지점은 슈호프가 하루를 대하는 태도였다. 슈호프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생존을 위한 하루였으나, 그는 최선을 다 하는 태도로 임했다. 수용소로 잡혀 들어오기 전, 포병 장교였던 슈호프는 배급받는 200g짜리 빵을 아끼는 것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며 몰입할 정도로 적응했다.


어쨌든 제104반은 이곳으로 쫓겨왔고, 새로운 생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p71


 슈호프는 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지금 현상황을 비참하다고 폄하하지도 않고 덤덤하게 인정한다. 슈호프를 비롯한 수감자들에게는 작업 현장이 바뀌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누군가는 불만을 토로할 수 있으나, 슈호프는 작업 현장이 어렵고 쉽고를 나누지 않고, 바뀌는 삶 자체를 순응한다. 이는 순교자의 자세와 닮아 있다.


수용소에선, … 반 전원이 상여 급식을 타먹게 되느냐, 아니면 배를 주리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것이다. 이것이 수용소의 반이라는 제도다. p73


 수용소는 잔인하게도 수감자 스스로를 감시자, 동시에 피감시자로 둔다. 연대 책임과 관리의 용이성을 위한 담당자 지정, 보상 등을 이용해 수감자 내부에서 감시 체계를 만든다. 이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교도관이 일일이 채근하지 않아도 수감자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수감자는 어느새 자신이 부조리하게 수감됐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듯, 현실에 몰두한다.


말하자면, 이백 그램의 빵이 수용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p75


 수감자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받는 것은 고작 200g 빵이 전부다. 사실 계획량 초과에 따른 수익은 수용소에게 돌아가고, 빵은 수감자에게 돌아가는 부산물이자 전리품이다. 그러나 수감자 입장에서 추가 지급되는 빵은 수용소 생활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작업 현장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조금 더 확장하자면 수용소 삶의 대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아니, 그 따위 법령은 누가 만들었던 말이야?” “소비에트 정부지!” p80


 수감자들은 비합리적인 일조차 수긍한다. 오랜 선조부터 내려온 지혜, 상식인 ‘해가 가장 높게 떠 있을 때가 정오, 12시다.’라는 개념도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렇듯 슈호프와 주변 인물은 없는 죄조차 만들어서 체제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인물을 수용소에 감금시킨 소비에트 정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에둘러 비판한다.


“이봐, 중령, 당신네들 과학적 이론으로는 없어진 달은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 “어디로 가냐구?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우리 눈에 안 보이게 될 뿐이야!” … “만약 눈에 안 보이면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p134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한다. 잡힐 듯 말 듯한 것을 실재한다고 믿으면, 그것은 곧 희망이고, 좌절의 씨앗이다. 슈호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유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야 버틸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연명해야 길고긴 형기를 끝마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 그 다음에는 형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204


 좌절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좌절의 지름길이다. 슈호프는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모든 것을 일상인양 받아들였다. 슈호프는 고작 빵 하나에 진심으로 달려드는 삶을 그 어떤 폄하를 덧붙이지 않고, 그저 수많은 생 중 하나라는 덤덤한 사실로서 이해했다.


작품 해설은 꼭 읽는 것이 좋다.


 치열하고 맞닥뜨리는 생존은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다. 치열해야만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는 그 상황은 당신이 자초한 것이니, 주변 사람 손가락질을 받아도 된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없다. 당사자는 단 한 명뿐이다. 누군가에게는 하찮고, 누군가에는 귀중한 그 단 하루, 우리는 무던하게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포용해야 한다. 가치판단보다는 그 사실 자체의 소중함을 우리는 슈호프처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민음사

작가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옮긴이 : 이영의 옮김


-참고 자료


김원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강제수용소와 생존, 러시아학 제26호, pp. 85~107 충북대학교 러시아⋅알타이지역 연구소, 2023.


김은희, 수용소 문학의 문법(1) :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타난 ‘수용소 체험의 객관적 사실화’, 슬라브학보 제35권 4호 2020년 12월 30일 pp. 51~74, 2020.


김은희, 수용소 문학의 문법 (2) :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타난 극한생존지구로서 수용소의 이미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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