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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7코스_태화강전망대에서 염포삼거리까지

울산 구간 3

by 정순동


울산의 상징, 태화강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한 태화강은 울산의 도심을 도도히 흐른다.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신불산, 가지산, 고헌산 등 울산 서부 고산지역 깊은 골짜기의 물줄기를 모은 태화강(太和江)은 울산광역시의 도심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흐른다. 언양읍, 범서읍, 남구, 중구, 북구, 동구를 모두 거쳐 울산항에서 동해를 만난다.

도도히 흐르는 태화강

울산의 문화는 태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태화강은 울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울산의 각급 학교 교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태화강 물구비에 지혜를 닦아"

"쉬지 않는 태화강 학문의 길 본떠"

"태화강 기슭의 높은 뜻 겨레에 영광이 나린다"

태화강국가정원 삼호지구 산책길

해파랑길 7코스는 태화강 전망대에서 삼호교까지 태화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작한다.


넓은 태화강 고수부지는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 남구 무거동의 삼호지구는 철새들의 휴식공간이다. 철새 광장, 은행나무 정원, 보라 정원, 조류 생태원, 숲속 정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화강국가정원 삼호지구 계절 정원

산책길은 ‘철새 쉼터’인 삼호대숲과 소나무 숲을 끼고 시작한다. 넓은 잔디밭에 쉼터가 있다. 자전거를 대어 놓고 원두막에 누워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


자전거가 줄지어 지나간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수레국화가 활짝 핀 계절 정원에서 젊은 남녀가 사진을 찍는다.

근대문화유산, 옛 삼호교

남구 무거동과 중구 다운동을 잇는 옛 삼호교. 일제강점기(1924)에 군수산업체를 위해 건설한 울산 최초의 근대식 철근콘크리트 교량이다. 노후화되어 현재는 보행자 전용 교량으로 이용하고 있다. 태화강은 여기부터 하구까지 국가하천이다.


다리를 건넌다. 다시 둔치로 내려선다. 다운 자전거 연습장, 풋살장, 다운동 운곡마을 태화강 보가 있던 곳을 지나간다. 모형 물레방아가 전시되어 있다. 물레방아 터다. 벼, 보리, 밀 등을 하루 8석가량 찧었다고 한다. 이 보의 밑은 황어와 연어의 산란장이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어린 시절 고기를 잡던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물레방아는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되었다. 물레방아 옆에 있던 나이 300년의 팽나무는 보호수로 남아 그늘을 제공한다.

물레방아 터

태화강 둔치공원, 축구장이 이어진다. 둑 너머는 태화십리대밭 먹거리타운이다.



십리대숲 은하수길


십리대숲. 대한민국 20대 생태관광지역인 태화강 국가정원 서쪽에 솟은 오산을 중심으로 삼호에서 용금소까지 10리에 걸쳐 236,000제곱미터 넓이의 대나무 숲이 길게 뻗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울산 12경 중의 하나인 십리대숲은 왕대가 빽빽하게 자란다. 대도시의 도심에 형성된 보기 드문 대나무 군락이다.

십리대숲

은하수다리 아래 쉼터에서 쉬어간다. 태화강과 명정천이 만나는 곳이다. 명천교를 건너면 얕은 구릉이 강에 닿는다. 내오산(오산)이다. 강을 따라 돌아가는 산책길은 대숲과 태화강이 어우러져 그윽한 분위기를 풍긴다. 산기슭의 대숲에 그림 같은 정자가 있다. 조선 중기 부사를 역임한 만회 박취문이 세운 '만회정'이다. 안내문은 1800년대에 소실된 것을 2011년 울산시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만회정

만회정 아래 강가에 낚시터가 있었다고 한다. 강가의 암벽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 낚시터로 간다. 만회정 남쪽 아래 물속에서 솟아 있는 바위에 '觀漁臺(관어대)'라고 새겨져 있다. 새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옆에 학 암각화가 있다. 1700년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이곳으로부터 북쪽으로 50m 떨어진 명정천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었다. 명정천 직강공사를 하면서 소실되었던 것을 이곳에 새로 만들었다. 복제하는 과정에 원본과 달라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관어대 서쪽 5m 지점의 바위에 자라가 새겨져 있다. 조성시기는 미상이다.

관어대(위), 학 암각화(아래 왼쪽), 자라 암각화(아래 오른쪽)

돌아 나와 십리대숲 은하수길을 들어선다.

산책길은 간벌한 대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따라간다. 공기가 상쾌하다. 대나무 숲은 많은 양의 음이온을 뿜어낸다. 공기 속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음이온은 심신을 편안하게 해 준다.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공기 정화력이 탁월하고 살균력도 뛰어나다.

십리대숲 은화수길

2011년에 왔을 땐 태풍의 피해를 입어 상당수의 대나무가 넘어져 있었다. 대숲은 회복이 빠르다. 일 년이면 족하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죽순이 대지를 뚫고 나온 후 일 년 만에 다 자란다.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는 연인들의 행복한 표정이 부럽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체험장이 있다. 아이가 대나무 실로폰을 연주한다. 군살이 붙은 중년부부는 '뱃살 빼기' 체험을 한다. 대나무 사이를 통과하며 서로를 '배 나왔다'며 놀린다. 엄마와 아이는 대나무 신장계로 키를 잰다.


야외공연장, 십리대밭교를 지나 여울다리를 건넌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작약원, 무궁화 정원, 용금소로 이어진다.

무궁화 정원



신비를 간직한 용금소와 '태화'의 유래


용금소. 태화강 물이 휘돌아 친다. 암벽을 깎아 만들어진 절벽 밑은 수심이 깊다.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강바닥에 닿지 않는다고 한다. 용이 산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신라시대 자장 국사가 중국 유학을 하던 중, 태화지에서 그곳의 신인인 용(龍)을 만나 큰 도움을 받는다. 그 용은 자장 국사에게 신라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용금소를 용들의 안식처라 여겨 용연(龍淵)이라 하였다. 자장 국사는 귀국하여 용금소 인근에 태화사를 짓고 용의 복을 빌었다고 한다.

태화루와 용금소

절벽 위의 누각이 태화루다. 울산시민공원으로 연결되는 태화교와 태화동의 높은 빌딩이 보인다. '태화강', ‘태화동’, '태화루', '태화교'에서 사용된 ‘태화(太和)’는 자장 국사가 지은 ‘태화사(太和寺)’에서 유래하여 울산의 상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태화사는 지금의 태화교 옆 로얄예식장 일대에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해파랑길은 태화교 밑을 지나 둔치로 내려선다.

칠팔십 년대 울산공업단지를 이끌던 산업화의 역군들은 이제 인생의 뒤안길에 앉아 다리 밑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일정 내내 지나는 다리 밑에는 어김없이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아예 '장기바둑 쉼터'라는 명패가 붙어진 곳도 있다.

태화교 아래 쉼터

마두희(전근대 시기부터 매년 경상좌병영과 울산부의 주민들이 동서로 편을 갈라 당기던 큰 줄 당기기)에 사용하는 쌍줄을 만들고 있다. 매년 단오에 칡으로 만든 줄을 당겨서 승부를 가린 뒤 줄은 태화나루로 가져가서 배를 메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2012년 이후부터 울산의 종갓집 중구는 매년 태화강 축제를 열고 큰줄당기기를 재현한다.

마두희에 사용할 쌍줄을 만들고 있다.

강바람이 거세다.

넓은 고수부지의 명촌 억새 군락지는 초록 물결로 일렁인다. 억새 군락지라는 안내판이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갈대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멀리 태화강 하구가 보인다. 울산항에 위로 방어진과 장생포를 잇는 울산대교가 지나간다. 화정산 산마루에 우뚝 솟은 울산대교전망대가 울산항과 장생포항을 내려다본다.

울산항



태화강 하류의 소금 생산지 ‘합도(蛤島)’와 ‘대도(大島)’


양정1교에서 아산로로 올라선다. 석유화학공단과 현대자동차가 태화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돋질산. 건너편을 바라보면 야트막한 산이 태화강 어귀에 닿는다. 돋질산이다. 중구 쪽에서 바라보면 돼지머리처럼 생겨서 저두산(猪頭山)이라고 불렀다. 돋(돝)은 돼지의 옛말이고, 질(찔)은 머리를 뜻하는 이곳 말이다.


예전에는 돋질산 북쪽 끝자락에서 태화강을 따라 길게 모래섬이 있었다. 합도다. 대부분 염전이었다. 1969년 매립되어 대한알루미늄, 한국비료 등의 공장이 들어서면서 돋질산 주변에 살던 사람과 합도는 사라졌다.

태화강 어귀를 지키는 돋질산

지금 우리가 걷는 이곳에도 큰 모래섬이 있었다. 명촌동에 속했던 대도다. 대도도 염전이었다. 현대자동차가 들어서고 아산로가 생기면서 지형이 달라졌다. 그 흔적으로 염포라는 지명과 소금포역사관이 남아있다.

울산항 자동차 선착장에 수출할 차량이 선적을 기다린다.

현대자동차와 아산로



염포, '3포 개항지’ 기념비


현대자동차 공장의 울타리를 따라 현대자동차 기술교육원 앞의 염포삼거리에 이른다.


염포는 부산포와 제포와 함께 1418년(태종 18년) 일본인에게 개방한 삼포 개항지의 한 곳이다.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쇄될 때까지 92년간 대일 교역 창구 역할을 하던 국제무역항이었다. 주민들은 염포의 대부분을 현대자동차 공장 부지로 내어주고 뒤로 물러 앉았다.

염포, 3포 개항지’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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