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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 저지곶자왈

올레14-1길, 저지 예술인 마을에서 서광 녹차밭까지

by 정순동


저지 예술인 마을에서 시작한 올레길은 마을과 밭길을 잠시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온몸을 휘감는 '숲의 생명력'과 '초록의 힘'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임도의 단조로움을 덮는다. 문도지오름 정상에 오르면 왜 문도지오름을 찾는 사람이 많은지 사방의 오름들이 말해준다. 곶자왈을 빠져나오면 또 다른 초록의 물결이 넘실댄다. 드넓은 녹차밭 사이로 올레길은 끝이 난다.




저지곶자왈 가는 길


올레 14-1코스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교통편에 대한 고민을 한다. 중산간 지역이라 노선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동광환승센터에서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면 편리한다. 30분 간격으로 820-1, 820-2번의 양방향으로 8대가 순환하고 있다.

제주올레 14코스 공식 안내소 앞은 온통 저지리 마을 자랑이다.

생태관광 우수마을, 저지리 농촌체험 휴양마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생물권 보전지역이 있는 마을 등, 제주올레 14코스 공식 안내소 앞은 온통 저지리 마을 자랑이다.


우선 저지오름과 곶자왈 등 원시 제주도의 생태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으니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할만하다.

저지리 마을회관 앞에도 어김없이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비를 세워 칭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가는 곳마다 비석 군이다. 저지리 마을회관 앞에도 어김없이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훈장, 학사, 박사, 처사, 거사, 구장, 주사, 국가유공자 등과 그의 부인들의 송덕비고, 공덕비다.


중산간서로를 건너, 돌담이 예쁜 길이 시작된다. 제주올레의 길 안내 리본을 벗어나 동네를 돌아보는 체험활동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다음으로 미룬다.

중산간서로를 건너, 돌담이 예쁜 길이 시작된다.

밭 사이로 들어선다. 들머리에 아이들 십여 명이 책이 든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나온다. 책이라 쓰인 천에 보일 듯 말 듯 한 글씨로 '소리소문'이라 적힌 간판이라 하기엔 소박한 현수막이 걸린 집 앞에서 주인인지 인솔교사인지 젊은이가 아이들을 배웅한다.

책이라 쓰인 천에 보일 듯 말 듯 한 글씨로 '소리소문'이라 적힌 책방

카페인가 생각하며 들여다본다. 책방이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을 전하고 싶어' 책방을 열었다는 책방지기 부부의 인사말이 적힌 액자가 한편에 놓여 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을 전하고 싶어' 책방을 열었다고 한다.

저지마을의 가치를 알아보고 일찌감치 들어앉은 카페와 펜션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산골 마을에 파격적인 디자인을 한 건물이 있다. 전시실을 겸한 카페다.


저지리는 제주시 한경면으로 안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인 한경면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한라산에 가까운 곳이다.


손질하여 꾸미지 않은 돌담길을 들어선다. 어른 키 높이의 접시꽃이 돌담을 가리고 있다. 가시덤불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채 돌담을 타고 오른다. 멀구슬나무가 연한 보라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구주나무라고도 하는 낙엽 활엽교목이 골목을 덮고 있다.

꾸미지 않은 돌담을 가시덤불이 타고 오른다. 접시꽃이 돌담을 가리고, 멀구슬나무는 하늘을 가린다.

제주도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주민 자율적인 저지리 생태관광사업은 환경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지오름과 곶자왈이 있는 저지리는 문화예술인마을과 함께 자연과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생태관광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자연을 담은 습지 '알못'을 만난다. 알못은 저지리 마을 아래쪽에 있는 못이라는 데서 불여진 이름이다. 1개의 먹는 물통과 다른 1개의 쇠물통(소물통)이 남아 있다.

자연을 담은 습지 '알못', 먹는 물통과 소물통이 각각 1개씩 남아 있다.

여기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예술인 마을이 있다. 예술인 마을의 전시관은 따로 방문할 생각이다. 갈 길을 총총 걷는다.


경작지를 지나간다. 반 상록의 활엽 덩굴성 관목인 인동덩굴이 '사랑의 고리'로 농장의 울타리를 타고 오르면서 올레꾼을 반긴다. 돌담으로 넓게 경계를 지은 호박밭, 무밭, 보리밭이 차례로 나타난다. 보리밭 뒤로 풍력 발전기의 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꽃말이 '계절이 주는 풍요'인 무꽃이 정말 풍요롭게 온 들판을 덮고 있다. 연한 자주색과 흰색의 꽃이 그려놓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호박밭, 무밭, 보리밭이 차례로 나타나고, 무꽃과 인동덩굴이 들판과 돌담을 덮고 있다.

마중오름 기슭을 지나니 길가에 작은 언덕이 나온다. 강정동산이다. 동산에 올라 땀을 식힌다.

강정동산에 올라 땀을 식힌다.

본격적으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저지 곶자왈 연구 시험림이다.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가 점차 나무와 덤불이 우거진 숲으로 변화한 곳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 아열대 산림 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산불예방과 산림 관리를 위한 임도가 나 있다. 시멘트 포장이 된 임도가 지루하게 계속되지만 임도 양옆의 초록 숲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임도를 벗어나서 숲 속으로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막아놓지 않아도 가시덤불로 출입이 불가능하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 아열대 산림 연구소가 관리하는 저지 곶자왈 연구시험림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전망이 뛰어난 문도지오름


한적한 산길인데 차량 통행이 많다. 비포장도로도 있어 먼지를 덮어쓴다. 이 오지에 웬 차들이 이렇게 다니는가 했더니 앞에 문도지오름이 떡하니 나타난다.


오름의 들머리는 말 목장이다. '사유지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소유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걷자. 말에게 접근하지 말자. 말이 놀랄 수가 있다.'라고 제주올레는 당부한다.

오름의 들머리는 사유지로 말 목장이다.

문도지오름은 해발 260.3m, 비고 55m로 곶자왈 깊은 곳에 나지막하게 솟아 있다. 초승달처럼 생긴 굼부리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휘어진 말굽형 분화구 형태를 하고 있다. 오름 주변은 사유지다. 남쪽 사면은 빽빽한 삼나무 조림지고, 능선의 너른 초원은 말 방목지다.

능선의 너른 초원은 말 방목지다.

벌노랑이가 지천에 널리어 있다. 벌노랑이는 해열 및 지혈의 효능이 있어서 약재로 쓰인다. 가축이 좋아하여 가축의 사료로도 활용된다. 말은 벌노랑이를 혀로 핥듯이 남김없이 뜯어먹는다. 끈질긴 성장력으로 빠르게 번식하여 (그 양이 너무 많아) 대부분 잡초로 취급되는 벌노랑이가 방목하는 말의 좋은 먹이가 되고 있다.


약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익모초도 초원을 덮고 있다. 익모초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캄보디아가 원산지인 두해살이풀이다. 꽃말은 '모정, 착한 마음'이다.

벌노랑이(좌), 익모초(우)

문도지오름은 정상까지 오르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들인 노력에 비해 전망이 뛰어나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많은 오름이다. 이름난 저지오름과 주변의 남송이오름에 비하면 탐방객이 훨씬 많다.

문도지오름은 전망이 뛰어나다.

정상에는 이동통신 기지국 안테나가 서 있다. 정상 남쪽으로 삼나무가 우거져 있을 뿐 능선의 대부분은 풀밭으로 사방이 훤하게 틔었다.

남쪽으로 삼나무가 우거져 있을 뿐, 정상부와 능선의 대부분은 풀밭으로 사방이 훤하게 틔었다.

동쪽은 바다같이 넓은 곶자왈이다. 도너리오름, 정물오름, 원물오름, 당오름, 멀리 바리메오름과 한라산이 다도해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과 같다.

동쪽은 바다같이 넓은 곶자왈이다. 한라산과 오름들은 다도해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과 같다.

서쪽은 저지오름, 당산봉, 판포오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가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서쪽은 저지오름, 당산봉, 판포오름과 용수포구의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북쪽은 조금 전 지나온 곶자왈 숲 속에 습지를 안고 있다.

좀 더 멀리 금오름, 느지리오름 등 나지막한 오름 군이 나타난다.

북쪽은 저지 곶자왈과 금오름, 느지리오름 등 나지막한 오름이 보인다.

바로 남쪽으로 남송이오름, 조금 멀리 바닷가로 모슬봉, 단산, 산방산, 군산이 차례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오설록, 제주신화월드와 서광리 마을이 보인다.

남쪽은 남송이오름, 모슬봉, 단산, 산방산, 군산과 제주신화월드와 서광리 마을이 보인다.

오름의 남동쪽으로 내려간다. 길섶에는 멍석딸기가 연분홍색의 꽃을 줄기 끝에 모아서 달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꽃자루에 털과 가시를 가지고 있다.

멍석딸기. 장미과 산딸기속의 낙엽 활엽 덩굴성 반 관목이다. 꽃말은 '겸손, 선견지명'등이다.

저지마을로부터 5.5km 지점인 문도지오름 출구 쪽에 중간 기착지 스탬프가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임도를 따라간다. 이쪽은 입구 쪽보다 차량 통행이 적다.


길가 숲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5장의 꽃잎 가장자리에 옅은 분홍색이 돌고, 가운데 황금색 수술이 모여 있는 하얀 꽃이 핀 찔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분홍색 꽃봉오리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찔레꽃. 원산지는 한국, 중국, 일본이다. 장미과 / 장미속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꽃말은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생명의 숲, 저지 곶자왈


다시 곶자왈로 들어간다.

곶자왈 입구에 '진 박물관'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거북선, 조운선, 태우 심지어 일본 전통배까지 모형들을 전시해 놓았다. 장소도 내용물도 좀 뜬금없다. 왜, 누가 환상의 숲에 어떤 이유로 배 모형을 전시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자세한 설명도 없다. 하여간 이런 전시물이 있는 곳에서부터 제주올레는 저지곶자왈로 들어간다.

본격적인 저지 곶자왈이다. 제주올레는 곶자왈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제주말로 곶자왈이라고 한다. 보온 보습 효과가 있는 곶자왈은 북쪽 한계 지점에서 자라는 북방한계 식물과 남쪽 한계 지점에서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한겨울에도 푸른 숲인 곶자왈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한다. / 제주 올레

저지곶자왈. 곶자왈은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올레11길의 신평 무릉 올레에서 정리한 곶자왈에 대한 정의가 가장 신뢰할 만한 정의라 생각된다.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볏바른궤. 곶자왈 돌무더기 속에 동굴이 있다. 제주 도민들이 오래전에 이용했던 주거용 동굴유적이다. "궤"는 작은 규모의 바위 굴을 뜻하는 제주어다. 곶자왈 여러 곳에서 궤가 발견되었다. 이 동굴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터널형 용암동굴이다. 탄피와 옹기 편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4.3 때 피난했던 주민들이나 무장대가 희생되었던 장소로 보인다.

볏바른궤. 4.3 때 피난했던 주민들이나 무장대가 희생되었던 장소로 보이는 바위 동굴.

개다래. 줄기 윗부분의 잎이 하얀 특이한 나무가 눈에 띈다.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 뒤엉켜 있다. '개다래'다. Silver Vine, 개다래 덩굴, 말다래, 목천료( 木天蓼), 못좃다래나무, 묵다래나무, 쉬젓가래, 쥐다래나무 등으로 이름도 다양하다.

개다래. 다래나무과의 낙엽 활엽 만경목으로 꽃말은 '꿈꾸는 심정'이다.

개다래는 혼자 서지 못하고 다른 나무나 물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만경목이다.


잎 표면 상반부가 흰색이다. 때로는 잎 전체가 흰색이 되기도 한다. 뒷면은 연한 녹색이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서 꽃에서 화학물질을 품어내어, 꽃이 달리는 윗부분의 잎이 개화기에 흰색으로 변한다. 아니면 흰색 무늬가 생긴다. /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참조


환상적인 곶자왈의 아름다움에 황홀경에 빠져 피곤한 줄 모르고 내려온다. 화산석이 박혀있는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단숨에 내려온다.

곶자왈을 빠져나와 앞이 열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검은 천으로 녹차밭을 모두 덮어 놓았다. 오설록 녹차밭에서 곶자왈과는 다른, 정제된 녹색의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을 보려던 기대는 무너진다. 허탈한 마음에 잠시 쉬어 간다. 오늘 일정을 여기서 마친다. (2022. 5. 20)




오설록. 저지 예술인마을을 가는 길에 녹차밭을 보려 오설록을 다시 들른다. 검은 천이 걷혔다.

오설록은 녹차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주) 오설록의 녹차 브랜드로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계열사다. 1983년 3월 황무지 약 15만 평을 녹차밭으로 개간하여 다원과 녹차 공장을 만들어 ‘오설록’이란 이름을 붙였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녹차의 생명력에 대한 감탄의 표현'과 ‘origin of sulloc’(설록차의 고향)이란 뜻도 담고 있다고 한다.

오설록 티뮤지엄에 들어간다.

주문한 지 20분을 기다려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다.

특별히 맛이 있는 것도 아닌데 줄을 서서 기다린다.

대 자본 앞에선 작아지는 사람들.

우리도 그 행렬에 끼여 있다. (202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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