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돌담이 많은 길이다. 중산간 마을의 집담 길, 끝없이 펼쳐지는 밭담 길과 난대림 숲길, 들꽃이 피기 시작한 오름의 흙길을 걷는다. 한수리ㆍ수원리의 해안마을에서 시작하여 전반부는 이내 대림리의 고즈넉한 농촌 마을과 채소밭으로 이어진다. 후반부는 납읍리 금산공원ㆍ과오름ㆍ도새기 숲ㆍ고내봉을 지나가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한마디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중산간 마을과 환상적인 난대림을 함께 만나는 길이다.
특이한 지도, 폭 80m인 작은 대림리 포구
"한림항은 ‘천년의 섬’ 비양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닿는 연안항이다." 보통 이렇게 알고 있고, 지도도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 선착장'으로 표시한다.
비양도 도항선 선착장은 한림항에 속하지만 원래 대림리포구였을 뿐만 아니라 행정구역도 대림리다.
비양도 도항선 선착장은 한림항에 속하지만 원래 대림리포구였을 뿐만 아니라 행정구역도 대림리다. 한림리와 한수리 사이의 폭 80m 정도의 좁은 해변이 대림리 포구다. 제주올레15코스 공식안내소가 있는 '한림항 도선 대합실'도 대림리다. 제주도의 행정구역을 나누는 방식이 특이하다. 일부라도 해안을 접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림리의 경우는 극단적이다.
대림리는 (도항선 선착장이 있는) 폭 80m 정도의 좁은 해변만 바다에 접한 지역이다.
오늘은 승용차를 이용한다. 올레15코스 공식안내소 뒤에 대림리 ‘큰물’이 있다. 큰물 근처에 주차한다.
대림리포구(비양도행 도항선 선착장)에서부터 대수포구까지 바다 위로 한림해안로가 지나간다. 제주올레 15코스는 이 길을 따라 가면서 시작된다.
대림리 ‘큰물’
바닷가 한수리 마을의 유래
5, 6분 걸으면 한수리에 닿는다.
한수리는 1953년 북제주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원리에서 분리(分里)되었다. 한림과 수원의 중간(실제는 좁은 폭의 대림리가 가운데 끼여 있지만)에 있으므로 한림의 '한'과 수원의 '수'를 따서 한수리가 된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한수리 설촌 유래' 안내판을 읽고 있는데, 칠십 대로 보이는 마을 노인이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수리 마을 입구의 '하물', 뒤로 한라산이 보이고 앞에는 대섬이 있다.
"한수리 해안가에는 해안 용천수가 여섯 군데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1002년 비양도가 태어나는 화산 폭발이 있기 전에도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화산 폭발로 해일이 밀려와 마을을 덮쳐, 살던 사람들이 수장되었다고 봅니다."
"마을이 모래로 덮여 모래 동산이 되고, '그 모래 동산에 지의류가 자라고 이끼가 자라고, 세월이 지나면서 (짠물을 뒤집어쓰고도) 잘 자라는 순비기나무가 무성해지고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지요. 마을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한라산이고요. "
마을 앞에 대섬코지, 톤대섬이라 불리는 대섬(죽도)이 있다.
그 입구에 죽도연대의 옛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명월진에 속하는 죽도연대는 동쪽으로 귀덕리의 우지연대와 서쪽으로 한림리의 마두연대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마두연대가 폐쇄된 후에는 금능리 배령연대와 교신하던 곳이다.
죽도연대 옛 터를 알리는 표지석
대섬은 많았다는 대나무는 찾아볼 수 없고, 한림항 서 방파제와 연결되어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원래 대섬은 코지이었고, 톤대섬은 섬이었다. 톤대섬의 검은여가 방파제로 연결되면서 바닷물의 흐름이 변한다. 따라서 모래밭 환경이 달라졌다.
많았다는 대나무는 찾아볼 수 없고, 대섬은 한림항 서 방파제와 연결되어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조개잡이 체험장이었던 검은여 해변에는 여러 개의 솟대가 서 있다. 갈매기와 기러기 모양의 나뭇조각이 솟대 위에 앉아 있다. 검은여 위의 솟대는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대섬에는 횟집 두 곳이 있고 그 안쪽에 ‘한수리 대섬밧 하르방당’이 있다. 풍어와 풍년을 축원하는 당인데 신체인 순비기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한수리 대섬밧 하르방당
한수리 본향 개당은 해안일주도로를 건너 ‘하물’의 안쪽에 있다. 주로 어업을 관장하는 문 씨 할망을 모신 당이다. 바위틈에 나지막하게 자란 팽나무 신목에는 물색과 명실이 많이 걸려 있다. 하물에서부터 목재 데크가 놓여있어 만조 시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물 안쪽에 자리 잡은 한수리 본향 개당, 주로 어업을 관장하는 문씨 할망을 모신 당이다.
물에 잠기는 땅, 잠수포
바다 위를 달리던 한림해안도로는 대수포구에서 뭍으로 내려온다. 제주 비양도에서 외할머니부터 시작해 어머니, 이모들 그리고 세 자매까지 물질을 하며 살아왔다는 '해녀세자매'집에서 수원리 마을로 들어간다.
오래된 마을이다. 나지막한 돌담이 있는 좁고 긴 골목길 안에 정든 고향집의 향수를 일으키는 집이 눈에 들어온다. '개조심' 경고문을 단 초록색 나무 대문은 열여있고 개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개조심'이란 경고문이 붙어 있는 집을 개가 지키고 있다.
동구 밖 정자나무 밑에는 유모차를 짚고 마실나온 안 늙은이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수원리의 옛 이름은 한자어로 (한수리와 함께) 잠수포인 '조물케'다. 잠수포는 물에 잠기는 땅. 식수로 이용했던 큰물, 생이물, 돈지물 등 11개 용천수가 만조가 되면 모두 물에 잠긴다. 그래서 잠수포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물질하던 해녀들의 사고가 잦아지자 잠수포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여긴 마을 사람들은 1882년 이름을 수원리로 바꾼다. 한수리가 떨어져 나간 것은 한참 후의 일이고.
수원리의 옛 이름은 한자어로 잠수포인 '조물케'였다.
수원초등학교 앞을 지나간다. 마을 중앙의 오래된 나무 밑에 '구룡 소공원'이라는 작은 쉼터가 있다. 수원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재활용품으로 '수원리 마을 이야기'를 꾸며 놓았다. 수원리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구룡석(九龍石)의 전설'을 소재로 표현한 작품이다. 어린이들의 예술적 감각에 감탄한다.
어린이들이 재활용품으로 '수원리 마을 이야기'를 꾸며 놓았다.
전해지는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수원리 해안가에 남수왓이 있다. 그 근처의 용구못(龍九池)에 아홉 마리의 새끼 용들이 살았는데, 승천할 때 입에 물어야 할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매일 으르렁거리며 다툰다. 여의주는 하나밖에 없고. 이를 놓고 아홉 마리의 새끼 용이 매일같이 다투다 보니 하늘과 땅은 분위기가 혼탁해진다. 어느 때는 비가 계속 내리고 어느 때는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마을 사람들의 삶은 고단해진다.
참다못한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 여의주를 둘러싼 싸움을 멈추게 해달라고 빌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아홉 용들이 차지하려던 여의주를 돌로 만들어 석수굴 앞에 던져 버린다. 여의주를 갖지 못한 아홉 용은 이무기가 되어 승천하지 못하였고, 돌로 변한 여의주는 구룡석(九龍石)이라 한다."
올레 15코스는 수원리 마을회관 뒤에서 A, B로 나누어진다.
한림항에서 시작해 대수포구를 지나온 올레 15코스는 수원리 마을회관 뒤에서 A, B로 나누어진다. 종점인 고내포구까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15A코스가 중산간 지역의 푸르름을 주제로 한 길이라면, 15B코스는 서쪽 쪽빛 바다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길이다.
올레 15코스는 수원리 마을회관 뒤에서 A, B로 나누어진다.
오늘은 오른쪽 15A코스를 선택한다. 한림로 건너 수원초등학교는 대림리다. 대림리에는 넓은 채소밭이 펼쳐진다. 농부는 트랙터로 수확을 끝낸 양배추밭을 갈아엎는다. 다음 작물을 심기 위한 땅고르기다.
트랙터로 수원초등학교 뒤의 채소밭을 갈고 있다.
울창한 수풀과 드넓은 농토가 있는 대림리 들에는 대파, 쪽파, 브로콜리, 양배추, 기장, 양파 등을 재배하고 있다.
수확을 앞 둔 양배추(상), 꽃이 핀 브로콜리(하)
길가 밭 한가운데 장엄한 대석 군이 쌓여 있다. 그 중앙의 거대한 궁돌을 선돌이라 한다. 1975년까지 이곳에서 마을제를 지냈을 만큼 신성하게 여기는 마을의 수호석이자 상징이다.
길가 밭 한가운데 마을의 상징인 선돌이 서 있다.
난생처음 탄 119 구급차
대림리에는 유난히 오래된 팽나무가 많다. 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보인다. 여기도 안 노인 몇 분이 모여 있다.
일주서로를 건넌다. 지난가을 추자도를 제외하고는 마지막 남은 올레15A코스를 걷다가 개에 물렸던 사고 장소가 이 마을이다.
개에 물린 사고 장소는 황금 측백나무가 서 있는 집 앞이다.
지금은 자주색 꽃을 피운 광대나물이 덮고 있는 이 채소밭의 가장 깊은 곳 돌담 밑에 개 두 마리가 지나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주인이 없는 들개였다. 마침 그 앞에서 물을 마셨다. 들개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컹컹 짖으며 달려 나왔다. 겁이 났다. 빨리 도망가면 공격할까 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게 실수였다. 등을 보이지 않고, 공격하는 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어야 했는데.
들개가 있던 채소밭. 지금은 광대나물이 덮고 있다.
119 구급차가 삐뽀 삐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다. 난생처음 타는 구급차의 침대에 누워서 제주중앙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후의 이야기는 올레15A길(하)에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