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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품은 마을,영등할망이 드나드는 길

올레15B길(상), 한림항에서 귀덕까지

by 정순동

밭담과 설화를 품은 한림읍 한수리, 수원리, 귀덕리를 지나며 한수풀해녀학교, 영등할망신화공원을 돌아보는 전반부와 애월읍 곽지리에서 애월리까지의 카페촌, 한담해안산책로, 애월 환해장성을 지나는 후반부로 계획된 길이다. 한마디로 신구의 문화가 함께 녹아 있는 길이다.



2017. 4월 제주올레는 15-B코스를 새로 열었다. 기존 15코스와 같은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 대합실 앞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전날 14코스를 마친 한림수협 앞에서 부터 이어 걷는다.

기존 15코스와 같은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 대합실 앞에서 출발한다.


수원리 마을회관에서 A, B길이 나누어진다


대림리·한수리를 지나 큰물개(대수포구)에서 팽나무와 나지막한 밭담과 기다란 집담이 정겨운 수원리 안 길을 들어선다.

팽나무와 나지막한 밭담, 기다란 집담이 정겨운 수원리 안길

제주올레 15코스는 수원리 마을회관 뒤에서 A, B로 나누어져, 종점인 고내포구에 닿기까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A코스가 중산간의 풀내음을 맡으며 걷는 길이라면, B코스는 쪽빛 바다의 갯내음을 맡고 걷는 길이다.


우리는 왼쪽 길을 선택한다. B코스는 일단 거리가 짧다. 총길이는 13㎞며, 다 걷는 데 4∼5시간 정도 걸린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수원리 마을회관이다.

수원리는 농경지가 잘 정리된 광활한 옥토를 가진 평야지역이다. 마을회관 뒤의 넓은 채소밭이 비닐하우스만 제외하면 지평선만 보인다. 똑바로 뻗은 농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밭담 위에 씨 마늘을 말리고 있다. 2개월 말려서 6월에 파종하여 8월에 수확하고, 다시 2개월 말려서 10월에 파종한다고 한다. 종자를 늘리는 작업이다. 부지런히 하면 일년에 3모작도 할 수 있단다.

밭담에 씨 마늘을 말리고 있다.

드넓은 밭에는 여름철에는 기장과 밭벼의 푸르름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양배추, 브로콜리, 비트, 쪽파 등의 월동채소를 재배하여 사철 푸른 들판을 유지한다.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했나. 노란 호박꽃이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다. 옥수수가 사람과 키재기를 한다.

수원리는 농경지가 잘 정리된 광활한 옥토를 가진 평야지역이다.


4.3 피해 사찰 해운사와 분동산 꽃길


다시 바다가 나타난다. 마을의 지세가 곱고 아름다운 라신비(라신동) 마을 해안을 지나간다. 해안가의 정자에서 쉬어간다. 파도가 밀려와 검은 바위에 부딪쳐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난다. 물이 좋은 동네다. 나신물, 굼들레기물(굼둘애기물), 큰이물 ㆍㆍㆍㆍ마을 형성의 근원이 되는 용천수가 연이어 있다.

나신물

해안도로변에 4.3 피해 사찰 해운사가 있다. 본래 묘음사였던 해운사는 4.3 때 토벌대에 의해 마을과 함께 전소된다. 소개지인 귀덕에서 해운사로 절 이름을 바꾸어 중창하고, 다시 돌아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는 아픔을 안고 있다.

해운사는 여기부터 사찰임을 알리는 일주문도, 법문을 지키고 사마를 막는 천왕문도 없이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해운사 앞에도 용천수가 있다. '굼둘애기물'이다. 바위에서 놀던 인어가 다쳤는데 굼둘애기물에서 상처를 씻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닷가에 인어 상이 세워져 있다.

굼들레기물(굼둘애기물)

귀덕리 한수풀 해녀학교와 진지코지, 귀덕2리 사무소 근처에서 올레 리본과 카카오 맵의 올레길 표시가 다르다. 해안을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가다가 돌아온다.

여러해살이풀인 덩이괭이밥의 꽃말은 '빛나는 마음, 기쁨, 축하, 경사' 등이다.

길을 찾아 헤매다가 분동산의 덩이괭이밥 꽃길을 만난다. 분홍색의 꽃이 우산 모양으로 모여달려 있다. 흰색 꽃도 일부 보인다. 크로버 잎과 유사한 3장의 작은 잎이 햇볕을 받아 오므라들었다.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는 허튼층쌓기 한 돌담을 담쟁이가 덮고 있다. 추녀 밑의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올라간다.


다시 길을 바로 잡는다. 해안 방조제에 장난꾸러기들의 익살스런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멱감던 어린시절의 향수를 되살리는 익살스런 벽화가 방조제에 그려져 있다.

해녀들의 고령화와 어족자원의 고갈, 작업여건의 어려움으로 해녀문화가 점차 사라져간다. 제주 한수풀해녀학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해녀의 명맥을 유지하고, 해녀문화를 전수하기 위해 해녀양성교육을 하고 있다. 귀덕2리 해녀들이 강사로 나선다.

제주한수풀해녀학교


영등신맞이 굿과, 복덕개의 '제주영등할망 신화공원'


한수풀해녀학교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해모살 해변을 조망한다. 장리동, 장흥동, 사동, 하동, 금성포구로 이어지는 귀덕마을의 해안선은 바닥이 매우 고르고 판판한 암반조간대를 이루고 있다. 물이 빠지면 이 조간대에서 거북등같이 규칙적으로 갈라진 빌레 용암을 볼 수 있다.

귀덕마을의 해안선은 바닥이 매우 고르고 판판한 암반조간대를 이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기암괴석의 파괴와 섬 밖으로의 반출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크니물을 정비하면서, 해안 곳곳에 정자를 지어 올레꾼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귀덕포구(모살개)

매년 음력 2월 초하루는 천하를 바람으로 움직이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오는 날이다. 영등할망은 마지막 꽃샘추위와 봄 꽃씨를 가지고 제주를 찾는다. 영등할망이 맨 처음 들어오는 '바람의 길'이 귀덕리 복덕개다. 영등할멈이 오면 밭에 씨를 뿌린다. 영등할망이 왔다가야 새 봄이 온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음력 2월을 영동달이라 한다.

제주영등할망 신화공원.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이 차례로 세워져 있다.

천연 암반을 이용한 복덕개 포구에서는 옛날부터 (영등할망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영등신맞이가 마을 당굿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귀덕마을은 영등신맞이 굿을 복원하고 복덕개에 '제주영등할망 신화공원'을 만들었다.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이 차례로 세워져 있다.


재미있게 생긴 돌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해모살 해변을 바라본다. 앞에 영등며느리 상과 멀리 거북등대가 보인다.

영등며느리 상과 멀리 거북등대가 보이는 해모살 해변


영등할망은 남풍(마파람)이 불면 우도로 간다.

영등할망은 며느리를 질투하고 싫어한다. 영등며느리는 세지만 곧은 하늬바람 같은 신이다. 며느리는 할망이 아무리 궂은 척 해도 '예, 알겠수다. 내가 잘 못 했수다.'하고 할망의 기분을 맞춰준다.


착하고 부지런하고 어질고 반듯한 영등며느리는. 바당밭에 전복, 소라, 미역, 천초 등의 해초 씨를 뿌려주는 잠녀의 수호신이다.

복덕개포구의 도대불(왼쪽), 복덕개 잣길(오른쪽)

복덕개포구는 복어모양을 하고 있어 복덕개로 불렀다. 귀덕리에서 처음 생긴 포구라 큰개라고도 했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루 새벽 들물에 들어온다. 귀덕 앞바다에 많은 씨 종자를 뿌린다. 이 시각에는 어부들의 출항도 해녀들의 물질도 금지된다. 어민, 해녀 들은 복덕개 포구 서쪽 돈지빌레에서 영등 용왕제도 지낸다.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복덕개포구

귀덕1리 마을을 지나간다.

연한 녹색과 점차 누런색으로 변하는 꽃이 층층으로 달려 있는 소리쟁이가 도로변에서 내 키 높이로 곧게 서있다. 꽃은 전체가 어우러져 원뿔형 형태를 하고 있다.

소리쟁이. 마디풀과 소리쟁이속으로 분류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말은 '명랑, 인내, 애정'이다.

금성포구를 지나 금성천 하구의 실크 브리치를 넘으면 한림읍을 뒤로 두고 애월읍으로 들어선다. 이곳이 곽금 6경으로 불리는 정자정천(鼎子亭川)이다. 한라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큰 두 줄기의 물길이 금성리에서 만나 금성포구로 흘러든다.

금성포구

금성리와 귀덕리의 경계인 이 천은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지만 그 장엄함은 대단하다. 오늘도 물이 반반히 차서 흐른다. 정자정천은 상류의 내가 정자 모양의 물줄기를 이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류가 정자 모양의 물줄기를 이룬다는 정자정천

해변의 방조제에 벽화를 그려 놓았다. 지나온 분동산 서쪽 바다에 고래가 들어왔다고 분동산을 고래홈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지 고래가 놀고 있다.

벽화를 그려 놓은 방조제(위), 실크브리지를 형상화한 브리지 카페와 민박집(아래)

뒤로 돌아서면 지렁이 같이 꿈틀꿈틀 기어가듯이 연결된 집이 인상적이다. 민박집과 카페가 이층에서 연결되어 있다.


해안 일주도로에 정자가 많다. 올레 15-B코스의 중간 기착지인 금성천 정자에서 잠시 쉬어간다.

올레15B길(하)로 이어진다.

금성천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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