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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개는 맞서 싸워야 한다

올레15A길(하), 대림 선돌에서 납읍 난대림으로

by 정순동


그놈의 개 소식이 궁금하다.


지난 가을 개에 물렸던 곳을 다시 찾았다. 그 자리에 노부부가 자색 양배추를 포장하고 있다. 다가가서 물어본다.


"어르신 여기 이 밭에 있던 들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여기서 개에 물렸거던요. 개를 잡아가라고 119에 신고했던 사람입니다."


"아 그러셨구나. 두 마리 잡았지요. 아유 말도 마세요. 그 개 잡는다고 119 대원들이 애를 먹었어요."


그날의 기막힌 일이 생각난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도 겁이 나서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며 우리에게 신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방서와 경찰서에 몇 차례 신고해도 개에 물린 사람이 있어야 출동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함께 가는 119 구급 대원은 포획 팀이 따로 있으니 다시 신고하란다. 119에 다시 신고한다. 개를 잡아가라고. 포획 팀은 물린 사람이 현장에 있어야 출동할 수 있단다. 동네 사람들이 사고 현장에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대처 매뉴얼이 그렇단다. 나를 태우고 가는 구급 대원은 아무 말이 없다.


광견병, 파상풍 등이 머리에 떠오르는 나는 아내에게 짜증을 낸다. '사람이 다쳤는데 치료가 급하지 개 잡는 일이 먼저냐'라고 화를 낸다. 그러나 병원에 가는 동안에 응급치료 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아내는 개 잡는 일에 집착한다.


"아니 우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잖아요. 올레를 걷는 사람과 동네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다친 사람은 구급대원과 함께 병원으로 가고 있고 현장에는 상황을 설명할 주민들이 남아 있는데 더 이상 어떤 상황이 필요합니까? 주민의 안전은 중요하지 않는가 보지요."


뼈 있는 일침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던지라, 119 안전신고센터 접수요원은 '안전'이란 말이 나오니 당황한다.


"이 전화는 긴급 신고전화라서 전화를 길게 못합니다. 전화 끊습니다."


아내는 접수요원의 이해할수 없는 상황인식에 황당해하면서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번엔 제주올레에 전화한다. 도청에도 112에도 전화한다.


그러는 중, 조금 전 '출동할 수 없다'던 안전 센터 접수요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포획 팀이 사고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참 씁쓸한 추억이다. 어쨌든 개들을 잡았다니 다행이다.


아내는 화제를 바꾸어 농부가 수확한 농산품에 관심을 보인다.


"양배추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이제 조합에 가봐야죠. 5천 원은 받아야 하는데, 3천 원 줄나나."


"한 개 3천 원입니까?"


"아니요, 5~6개 들이 8kg 한 상자의 조합 수매가가 그래요. 유통 업체가 마진을 다 챙기고, 농가는 주름만 늘어요. 농사 지어 봤자 ㆍㆍㆍㆍ 그렇다고 밭을 묵힐 수도 없고."


자색 양배추 한 박스를 사서 맡겨 놓는다. 오후에 찾아가기로 하고. 만 원을 드렸더니 '이렇게 받으면 안 된다'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내는 우리가 마트에서 사려면 한 개에 오천 원을 줘야 한다며 할머니 손에 쥐어준다.


다시 가던 길을 간다. 깊이가 1m가 넘는 영새생물을 지나간다. 암반 위에 물이 고여있는 연못이다. 옛날에 이곳의 찰흙을 파다가 집을 지었다. 자연히 찰흙을 파낸 웅덩이는 물이 고이고, 연못이 생겼다. 이 연못은 제비가 자주 찾아오는 곳으로 염세서물, 영서생이물, 영새성물, 영세성물이라고도 부른다.

영새생물. 암반 위에 물이 고인 연못이다.

영새생물 인근의 양지빌레와 구릉이 있는 곳에 관전(官田)이었는데 조선시대 선조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였던 ‘사장밧(射場밭)’이다.

옛날 관전이 있던 활쏘기 연습장이 이었던 곳으로 '사장밧'이라한다.

이번 길은 멀구슬나무와 팽나무, 돌담, 연못이 많다. 귀덕리 4길 교차로를 건너면 길가에 ‘정워리연못’이 있고 멀구슬나무가 누렇게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정워리연못’가에 멀구슬나무가 누렇게 익은 열매를 달고 있다.

'반농반어'의 생활과 문화가 뚜렷이 남아있는 귀덕리로 들어선다. 잣질동네 성로동이다. '영등할망 밭담길'은 마을을 지나 5km 지점까지 이어진다. 성처럼 돌담을 쌓은 초가집, 축대 위의 팽나무 쉼터, 허튼층쌓기 한 밭담과 집담, 그리고 잣질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성로동 잣질동네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잣질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이한 풍경은 돌담을 덮고 있는 송악이다. 송악은 검은 열매를 소복이 달고 있다. 올레는 귀덕로를 건너 ‘연화못’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길섶에 조군성 시혜비(施惠碑)가 세워져 있다. 사재를 들여 동네 우물을 판 조군성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는 비석이다.

곳곳에 돌담을 덮은 송악이 있고(상), 길섶에 조군성 시혜비가 있다.

금성천이 금성리와 봉성리 사이로 흐르고, 그 언저리에 제법 큰 규모의 선운정사가 있어 들어가 본다. 대적광전이 본당인 것 같은데 앞쪽에 대웅전도 함께 있다.

선운정사 대적광전

주위에 버드나무가 많았다는 버들못 농로를 지나간다. 천덕로 큰 길가에서 납읍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숲길인 ‘언거니동산’을 내려선다. 옛 동네 ‘둥뎅이’에는 펜션,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등이 보인다.

언거니동산 숲길

좀 더 가면 납읍초등학교 앞에 금산공원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있다. 이번 올레길의 하이라이트인 '납읍리 난대림지대'다. 노꼬메오름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애월 곶자왈의 환상적인 난대림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납읍리 난대림지대

후박나무, 곰솔, 푸조나무, 생달나무, 식나무, 종가시나무, 아왜나무, 동백나무, 메밀잣밤나무 등 한겨울에도 울창한 상층목을 후추등이 감아 오른다.

납읍리 난대림지대(금산공원)

그 아래로 자금우, 마삭줄 등 다양한 식물들이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평지에서는 보기 드문 상록수림이다. 곶자왈은 신비로움과 편안함을 준다. 이 숲은 자연림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만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37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 보호"라는 표어가 나무에 걸려 있다.


숲 속 쉼터에 납읍초등학교 학생들의 시화를 전시하고 있다. '돈'을 세상 일의 중심에 두는 세상에 '생명의 소요함'을 노래한 어린이의 시를 옮긴다.

숲속 쉼터에 납읍초등학교 학생들의 시화를 전시하고 있다.
금산공원에는 탐방로가 있다.
탐방로 근처에는 나무가 있다.
나무 근처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 근처에는 풀이 있다.
풀 근처에는 곤충이 있다.
곤충 근처에는 어떤 생명이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한다.

<금산공원> 납읍초등학교 5학년 철쭉반 한영재


금산공원 한가운데 전통가옥이 한 채 있다. 마을의 제사를 지내는 납읍리 포제단이다. 서신지위(홍역신), 토신지위(마을 수호신), 포신지위(인물재해의 객신)의 세 신위를 모신다. 납읍리 마을제는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납읍리 포제단

'효도시범마을', '납읍리 선비마을' 등의 문구가 적혀있는 마을 회관을 지나면서 '핫한 동네 애월'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예스러운 분위기에 중압감을 느낀다. 마을 중심의 고씨 열녀비와 1937년도 조성한 ‘새못’도 고전적 납읍리의 고전적 이미지를 상승시킨다. 물오리가 떼를 지어 물 위를 미끄러져 간다. 사진을 찍으려 따라가니 더 멀리 달아난다.

새못

길가에 있는 작은 교회 앞 평상에 앉아 물을 마시는데 차를 타고 나가던 젊은이가 돌아온다.


"저 이 교회 목사입니다. 들어가셔서 차도 마시고 쉬어 가십시오."


​일부러 가던 차를 돌려와서 하는 친절함이라 '고맙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우리는 그냥 가던 길을 간다. 마을 외곽의 4.3 성과 배롱나무 길을 지나서 과오름 둘레길을 들어선다.


​과오름은 큰오름, 샛오름, 말젯오름이 초승달 형세를 하고 있다. 올레는 큰오름의 허리를 집고 돌아 도새기 숲길을 지난다. 너른 채소밭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앉아 취나물을 따고 있다. 밭 옆 건물에서는 상자에 넣어 포장하고 있다.

농부들이 도새기 숲길의 너른 채소밭에서 취나물을 따고 있다.

이제 고내리로 들어선다. 제주에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마을은 거의 없다. 그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가 고내리다. 남동쪽에 있는 고내오름이 높지는 않지만 한라산을 가리기 때문이다. 정상까지 20여 분이 걸리지만 우리는 고내오름 표지석과 고내봉수터 표지석만 보고 그냥 지나간다.

고내오름 들머리에 세워진 고내봉수터 표지석

일주서로 건넌다. 올레는 배염골을 따라간다. 루핑 방수포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이 보인다. 고내포구 앞에서 우주물을 만난다. 여기서 올레 15B코스를 만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제주올레 16코스 안내센터가 있다.

(2023. 3. 14)

옛날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우주물


운동 시간 4시간 44분(총 시간 6시간 2분)

걸은 거리 18.8km (공식 거리 : 16.5km)

걸음 수 30,584보

소모 열량 1,659kcal

평균 속도 3.9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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