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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May 08. 2022

야구 유니폼이 한 사람의 인생 항로를 바꾸다

프로스포츠 비즈니스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My Story


오늘, 저는 프로스포츠 산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귀하디 귀한 보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었던 모교 야구부 유니폼입니다.

연세대학교 야구부 유니폼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나이키)


제 눈에는 이 유니폼이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 만큼이나 이쁘게 보입니다. 색상, 디자인, 그리고 마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그렇기에 이 유니폼을 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구할 방법이 없어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애만 태우던 차, 오늘 마침내 연(緣)이 닿았습니다. 오... 세상에!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유니폼은 제 인생의 항로를 바꿔 놓았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브런치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NAVER 라는 검색 서비스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던 그 시절, 제가 선택한 첫 번째 검색어는 바로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이었습니다. 야구장에 가면 분명히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군데 군데 눈에 띄는데 당시 시중에선 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었거든요.

(*본격적인 상품화 사업 시행 이전 인지라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방문한 이들은 대부분 선수의 가족이나 친지 혹은 친구나 애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제 고충을 혹시라도 해소할 수 있을까 싶어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검색란에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이라는 아홉 글자를 입력했는데... 앗, 이럴 수가! 거짓말처럼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을 14년 동안 납품해 온 공장이 검색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Skyline이라는 브랜드의 하청 공장이었습니다.)


아... 하느님, 부처님, 광통신님!!

(*광통신...이라는 용어, 기억하는 분 계시려나요? ^^)


그 날은 마침 태풍이 올라와서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는데, 저는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길로 공장이 위치한 장충동으로 달려갔습니다.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콸콸콸... 낯선 골목길에 흘러 넘치는 것이 빗물인지 냇물인지...

첨벙 첨벙거리며 약도 하나에 의지한 채 이 건물 저 건물을 한참 기웃거리다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한 저는 두근대는 심정으로 노크를 한 후 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롯데자이언츠 뿐만 아니라 두산베어스, KIA타이거즈 그리고 국가대표 유니폼에 이르기 까지...

공장 사무실 벽엔 제가 그토록 갖길 갈망했던 프로야구팀들의 유니폼들이, 한 장도 아닌 무려 십 수 장씩 걸려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놀란 마음을 진정 시킨 뒤 공장 사장님을 만나 뵙고 조심스레 이 곳을 찾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저기... 사장님, 혹시 제게 저 유니폼들 중 한 장만 판매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잉? 어디다 쓰려고?"

"제가 프로야구팀 유니폼을 갖는게 소원입니다."

"어휴~ 안돼요. 우리도 납품하는 입장이라 함부로 유통시키면 벌금 세게 맞아요."

"사장님... 제 몰골을 좀 보십시오. 유니폼 구해보겠다고 저 빗속을 뚫고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학생 사정은 참 딱한데,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안돼요 안돼..."


그렇게 두 시간 여를 매달렸지만 저는 끝끝내 공장 사장님을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상도의를 매우 철저히 지키는 분이셨거든요.


"휴우... 네...아쉽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이렇게 마음이라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라면서 출입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파랗게 빛나는 티셔츠 한 장이 눈에 딱 띄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 인생의 향방은 이 때부터 스포츠 산업 쪽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사장님, 이 티셔츠는 재질이 특이하네요. 면은 아니고... 이게 뭔가요?"

"아~ 그거? 냉장고 티셔츠 라고 이번에 새로 나온 거예요. 바람 잘 통하고, 물 묻어도 금방 마르고, 먼지도 안 묻고."

(*소재는 코오롱에서 만든 쿨론이었습니다.)


'오호라... 다음 달에 연고전이 있으니 그 때 단체티로 만들어 입으면 딱 이겠는데? 기능도 좋고, 색깔도 좋고...  이번 참에 내가 좋아하는 학교 야구부 유니폼 디자인을 차용해서 만들어볼까?'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바로 아래 사진 속의 기능성 티셔츠 입니다.

야구부 유니폼을 모티브로 하여 필자가 제작한 기능성 티셔츠


보시는 것처럼 학교 야구부 유니폼 디자인을 그대로 기능성 티셔츠로 옮겼죠.


제대로 된 샘플 제작을 위해 틈만 나면 장충동 공장을 제 집 드나들 듯 찾았습니다. 일손이 부족하면 시다 노릇도 기쁜 마음으로 도맡았죠. 내가 원하는 옷을 만드는데... 이런 수고 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옷 제작 공정을 밑바닥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너스였죠. ^^

(*재단, 마킹, 컴퓨터 자수, 옷 조립 등)


이렇듯 온갖 정성을 쏟아부은 끝에 마침내 기능성 티셔츠를 완성시킨 저는 자신 있게 초도 물량 30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연고전에 함께 참여하기로 한 교내 친목모임 구성원들 중 고작 10명 만이 티셔츠를 신청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남은 옷은 20장... 혼자 다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에 구성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교내 타 학우들을 대상으로 기능성 티셔츠 판매에 나섰습니다. 홍보 방법이 마땅 찮아서 학교 홈페이지 내 자유게시판에 티셔츠 사진과 제 e메일 주소를 게재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그 날 제게 도착한 구매 의향 e메일은 무려 296통이었습니다. 연고전 때 입고 나갈 '학교 이름이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를 구할 방법이 마땅 찮았던 개별 학생들의 고충을 제가 부지불식간에 공략한 것이었죠.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이에 저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답게 살아있는 전공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300장의 티셔츠 추가 발주를 낸 뒤, 공강시간마다 학생회관 앞에 나가 현장 주문 신청 또한 병행하여 받았습니다. 특정 사이즈는 일찍 동이 난 까닭에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던 일부 여학우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전량 완판에 성공했습니다.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이러한 저의 활동을 취재해가기도 했습니다.)

학생회관 앞에서 티셔츠 신청을 받던 모습과 훗날 제작한 과 잠바들


이후 (동아리나 학회 활동을 하지 않는)개별 학생들의 고충을 찬찬히 살핀 뒤 기능성 티셔츠 이외에 이들이 손에 넣기 힘든 '과 잠바' 또한 주문 제작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신촌 일대엔 제 손을 거친 '과 잠바'가 바글바글 했습니다. ㅎㅎ

다양한 색상 및 소재, 컴퓨터 자수가 도입된 '과 잠바' 제작은 아마 제가 국내 최초일 겁니다.여기에 더해 개인별 요구사항까지 반영했으니... 커스터마이제이션이라는 용어를 온 몸으로 배운 셈이죠.  

기능성 티셔츠 에피소드보다 좀 더 다이나믹한 '과 잠바' 제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찬찬히 풀도록 하겠습니다. ^^


위와 같은 활동들은 훗날 제가 롯데자이언츠 마케팅팀 재직 중 '유니세프 유니폼' 및 '뉴 선데이 유니폼'을 디자인하여 상품으로 출시함에 있어 훌륭한 경험 자산이 되어주었습니다.

(선수용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 하는 것은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필자가 직접 디자인 하여 출시한 '유니세프 유니폼'과 '뉴 선데이 유니폼'


인생 참 모를 일이죠?
갖고 싶은 유니폼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그 날의 발걸음이 한 인간의 인생 항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다니.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마침내 손에 넣게 된 당시의 모교 야구부 유니폼은 제겐 둘도 없을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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