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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11. 2023

[13] 나는 나의 심연과 대화를 했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원래 시간 순서상 인사과 면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일기장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내용을 보니 별로 쓰고 싶지 않더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몇번씩 쓰려고 했다가 코피가 흘러나오더라...그래서 다음에 쓰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인사과가 인사과 했다. 정신의학과 선생님과 전문 상담사 말고는 모두 다 '내 탓을 한다'. 나에게 가까운 부모님, 여자친구도 내 탓을 한다. 인사과도 역시 내 탓을 하였다. 본인의 업무가 늘어서 귀찮았겠지... 썩을,






이번 이야기는 좀 나중의 일인데, 생각이 문득 나서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글이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좀 활기찬 이야기를 작성해보려고 싶은 마음도 있다. 분위기 전환을 해보고 싶은데, 아마 내용은 즐겁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이야기보다 더 어두울지도... 그래도 나의 희망의 시작이 되는 이야기이다.



혹시, 길거리에서 혼자 떠들고, 화내고 자기 혼자 대화하는 '미친 사람'은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파트가 아니라 시장 근처 주택가에서 살다 보니 종종 보게 된다. 중얼중얼거리면서 조용히 길을 가는 사람은 그나마 얌전하게 미친 사람이고,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적당히 미친 사람이다. 남에게 물리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아주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렇게 혼자 자신과 이야기하는 하는 미친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도 혼자 중얼중얼거리게 된 것이다. 사실, 이건 또 다른 나와 대화를 하는 과정인데, 또 다른 내가 어떻게 나에게 말을 거는지 한번 이야기해보겠다. 





'너의 잘못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늘 깊은 상처를 받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같이 오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이게 왜 내 탓인데...'라는 억울함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가라앉는다. 이 감정이 점점 사그라들면, 가장 큰 것이 찾아온다.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어? 대단한걸?!'

'이러한 힘든 감정을 견뎠구나!'

'그럼 이것도 견뎌보렴'  



하면서 이전 감정을 추스르느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숨도 고르기 전에 '끝판왕'이 찾아온다. 이 끝판왕의 공격은 정말 대처하기 쉽지 않다. 공격이 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전 감정들은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건데'라는 생각으로 남 탓을 하면서 버틸 수가 있었다. 부모님 탓, 여자친구 탓, 가해자 탓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끝판왕'의 공격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느낌으로 공격을 한다. 남 탓을 하며 버티고 버티며 회복하고 있었는데, 너덜너덜 해진 나의 마음에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끝판왕'. 



똑똑!! 나에게 끝판왕이 노크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감정을 선물해 주었다. 




끝판왕은 바로 '나는 쓸모가 없고, 세상에는 나 혼자 밖에 없다'라는 감정이다. 이 끝판왕의 감정의 뿌리는 매우 깊다. 그리고 이 뿌리는 매우 깊어서 보이지 않는 컴컴한 '심연'으로까지 뻗어 나가 있다. 이 뿌리를 말해보기에 앞서서 니체의 말을 하나 적어보겠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_프리드리히 니체



내가 나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 것일까?? 나는 나의 심연과 대화를 나눴다. 이 '끝판왕'이라는 놈은 나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온 존재이다. 심연이라는 단어가 어려우니 쉽게 설명을 하자면 또 하나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나는 또 다른 나와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안녕~ㅎㅎ'

"응 안녕"



'기분은 좀 어떠니?'

"이해를 받지 못해서 쓸쓸하고 우울해"



'그렇구나, 힘들겠다. 근데 네가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응... 힘들어. 근데 오해라니, 어떤 오해?"




'그거 알아?? 그 누구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걸??'

"아니야!! 나는 잘못이 없어, 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잘못된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근데 너는 돈으로 산 공감을 제외하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잖아'

"... 그건 너 말이 맞아. 나는 이해받기 위해서는 돈으로 공감과 이해를 사야 해"




네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부모님이나 여자친구가 널 마음으로부터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 맞아. 내가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이해해 주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라 생각해"




'이제 대화가 좀 통하네^^, 결국 너는 그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소중했으면 너를 지켜주려고 하지 않았겠어?'

"....... 나는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닌가봐"




'너는 너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어, 다른 사람에게는 더더욱 이해받지 못할 거야'

"......... 그렇겠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거야??"




'응!! 그걸 질문이라고 하니? 스스로 더 잘 알 거 아니야, 내가 확실히 말해줄게. 네가 쓸모가 없어서 그래'

"........... 그런가?"




'아직도 의심을 하니? 다시 말해줄게, 너는 쓸모가 없어^^ 그래서 세상에 혼자야'

"맞아, 나는 쓸모없어, 그래서 세상에 혼자야..."




이 끝판왕은 엄청나게 논리적이고, 강하다. 혹시 이 끝판왕의 공격을 반박할 수 있는가? 나는 반박을 할 수가 없어서 수긍을 했다. 반박이 가능하면 댓글로 누가 좀 적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심연을 바라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이 이후로는 더 깊이 있는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끝판왕'이 저 깊은 곳 심연으로 부터 올라왔다 보니, 끝판왕이 만들어낸 '나는 세상에 혼자다'라는 생각은 저 깊이 있는 심연으로 뿌리를 내려버렸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았으려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젠장, 그리고 한창 상담을 잘 받고 있었는데 '돈으로 산 공감'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전문 상담사도, 정신의학과 선생님도 믿지 못하겠더라. '내가 돈을 안내면 저 사람들이 날 공감해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알고 있다. 답은 NO이다. 



돈으로 산 다른 사람의 감정들. 예를 들면 사랑, 공감, 이해 이런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치료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세요' 라는 말이다. 이 말이 왜 중요한지 아는가? 이 혼자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 버리면 회복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질환의 치료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을 인식하는 것 부터 시작한다. 



'내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은 나를 더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인간관계를 스스로 단절 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더욱 더 고립시킨다. 마음으로 부터 외부세계와 나를 분리하고, 나 혼자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혼자 살아간다. 상처받는건 이제 지쳤기 때문이다. 혼자가 편해진 것이다.



나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간 이후로는 다른 사람의 조언도, 도움도, 공감도 모두 다 소용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벽은 원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다. 다른사람으로 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안 받는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영향도 받을 수 없다. 



즉, 회복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온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이다. 이 심연에 더 깊게 빠지기 전에 다행히도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숨을 쉴수 있었다. 신이 날 지켜준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스스로 돕지 않아도 도와주기도 하는 것 같다.




신은 내가 열심히 만든 마음의 벽을 타고 넘어서 나를 도와주었다.




어떻게 도와주었는지 궁금해 할 거 같다. 회사에서 직장내괴롭힘 조사를 진행화던 와중 내가 코로나에 걸려버버렸다. 사실 회사에서 정말 숨도 못 쉴정도로 답답했다. 몸도 마음도 긴장 되다 보니 계속 안좋은 생각만 하게 되더라. 그래서 심연과 대화도 하게 된것이고 말이다.

 



신을 나를 코로나에 걸리게 함으로써, 이런 회사를 안가게 해주었다. 집에서 맘 편하게 있게 해주었다. 집에 있다 보니 눈치 볼 것도 없고, 힘들면 그냥 잠을 자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 마음이 점점 편안해 졌다. 



신은 심연에 빠져서 내가 어푸어푸 하고 있을 때, 내가 물 밖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코로나를 걸리게 함으로써 말이다. 




이 우연 같은 시간 동안 나는 단순하게 쉬고 있지만은 않았다. 나 같은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다보니, 신기하게 내가 회복을 할 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기간은 내가 밑바닥에서 회복을 할 수 있는 첫발을 내 딛는 시간이 되었다. 아마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게 될 것이다. 글을 적다가 코피가 나서 적지 못한 이야기 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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