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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14. 2023

[14] 괴롭힘 신고 후 조사 위원과 이야기하다

조사 위원의 태도는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인사과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전에 사장님과의 면담에서 사장님이 인사과에 한마디를 해주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사장님을 포함하여 높으신 분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메일을 써서 그런지 면담을 많이 하였다. 인사과와 면담도 그중 하나이다. 사장님과 인사과를 포함하여, 전부 4분 정도와 면담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면담을 하러 돌아다니는 것이 참 힘들었다. 



나는 당시에 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고 있었다. 나의 행동은 느릿느릿했고, 작은 반응에도 크게 놀라기 일쑤였다. 누군가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어도, 이것을 내 뜻대로 해석하여 나를 공격한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즉, '피해망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늘 경계하고, 의심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하였다.




이렇게 늘 긴장되어 있는 상태로 대화를 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게 컸다. 더욱이 나에게 비협조적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상황은 더욱더 내가 겪고 있는 정신질환을 더 크게 만들 뿐이었다.


 




인사과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되었다. 나는 의자 손받침을 잡고 일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바로 벌떡 일어나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일어나려고 하는 그 순간, 과거 정신을 잃고 쓰러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의자에서 일어난 후 목뒤 쪽이 뻣뻣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그 기억 말이다.




일어나려고 손과 발에 주었던 힘을 살며시 풀었다. 그러고 나서 심호흡을 하였다. "후... 하...." 한 3회 정도하고 나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본 안대리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가 해주려고 입술을 꼼지락 하더니, 다시 본인의 일을 하였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올바른 선택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의 위로와 공감을 바랐지만, 막상 사람이 다가오면 경계했다. 아마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오지 말라고 쳐다봤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 하다. 자존심 때문인가, 쪽팔려서 그런 건가 아마 이 둘 다 인 것 같다.



천천히 일어나서, 축 처진 어깨로 느릿느릿 걸어가 인사과와 만나기로 한 회의실로 향했다. 문을 노크한 후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힘없이 인사했다. 조사위원이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흘긋 쳐다봤다. 귀찮아하는 표정이 얼굴에 뚜렷하게 다 드러났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면 회사가 적이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괜히 문제를 발생시킨 직원, 참을성 없는 직원으로 낙인이 찍힌다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 나는 인사과의 표정 한 번에 이 모든 것을 느꼈다. 바로 나의 적이 눈앞에 앉아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라고 순간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꿀게요"라는 말을 하면서 음성 녹음을 켰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였다.

 


인사과 직원은 우선 나에게 서류 뭉치를 주었다. 서약서와 내가 작성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문서였다. 서약서에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고 싸인과 지장을 찍었다. 인사과 직원도 같은 행동을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하였다.



"신고 문서를 쭉 다 읽어보았어요. 이렇게 힘들면 미리미리 말하지 그랬어요" 처음에는 이 말이 나를 공감해 주는 말인 줄 알았다. '위로를 해주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 네, 저만 참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제가 이렇게 망가져있는지는 잘 몰랐어요"



그리고 내가 작성한 신고문서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사과 분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을 물어보았고, 나는 대답했다. 신고 문서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증거가 없어서, 목격자 진술로 조사가 이루어질 거예요. 그래서 목격자들이 기억을 할 수 있도록, 날짜와 시간 그리고 상황을 자세히 떠올려서 말해봐요"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고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다 보니 머뭇머뭇거리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나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하였고,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물론 호흡도 점점 가파라 오르고 있었다.



사람은 보통 안 좋은 기억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생존 본능'이다.



안 좋은 기억을 계속해서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잊어버린 기억을 끄집어내서 자세히 말하는 과정은 '생존본능'을 억누르고 하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게 힘이 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머뭇머뭇거리는 게 답답했는지 인사과 직원이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한마디 하였다.



"많이 힘든가 봐요. 그러게 일이 이렇게 커지기 전에 미리 말해서 조치를 취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두 번째다. 왜 미리 말을 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나에게 건넨 것이 말이다. '지금 내 탓을 하는 건가?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따로 대꾸는 하지 않았다. 기억을 끄집어내서 이야기하는데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따. 내가 한 이야기를 인사과 직원이 받아 적었다. 내가 작성한 모든 내용을 다 말로 할 무렵 인사과 직원은 지나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목격자 진술은 5명 정도 할 거예요. 증거가 없으시잖아요. 사장님이 '제대로 조사해서 보고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까지 하지는 않는데... 음" 



'아... 사장님이 한마디 해주셨구나'. 



'근데 사장님이 말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까지는 안 해준다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말로 하지는 않았다. 이 말을 한다면, 가뜩이나 언짢아하는 표정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 괜히 싸우자고 덤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참고 조사를 진행하고,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근데 인사과 직원이 또 말을 하였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있으면 미리미리 말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폭발했다. 



2번까지는 참았으나 세 번째에는 못 참겠더라. 나에게 '미리미리 말을 하라는 소리'를 세 번이나 했다. 인사과의 태도가 이런데, 사장님이 한마디 안 해주었으면 이 조사가 얼마나 더 힘들게 진행되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아마 인사과 직원도 짜증 나는데 꾹 참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쏘아붙이는 말은 순간순간 그 짜증이 튀어나온 것이고 말이다. 인사과의 이 말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아니 왜 일을 키워서 사람 귀찮게 해'

'미리미리 말하면 서로 얼마나 편해, 너 때문에 일이 늘었다'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를 복잡하게 가져가네'



하... 썩을. 나도 못 참고 한마디 했다. "미리미리 말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셨는데, 지금 제 탓을 하는 건인가요?" 나의 필명은 내성적인 회사원이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평소라면 절대 이런 말 하지 못한다. 회사의 높은 어른한테 이런 말을 한다니 평소의 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마 나의 두뇌에 있는 필터링이 사라져서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참는 게 이기는 것이다' '웃는게 일류다' 라며 늘 참았던 과거의 나는 죽을 뻔했으니 이 필터링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공격을 받으면 참지 않고 갚아준다'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마음은 나중에 'tit for tat' 이라는 나의 인간관계 법칙으로 진화 한다. 내 분노를 들은 인사과 직원은 적지 않게 당황을 하였다.



"아니, 내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그럼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건가요, 저 지금 녹음하고 있으니까 말 조심해 주세요"



'녹음'이라는 이야기에 인사과의 태도가 돌변했다. 갑자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우리 회사는 불리하면 고함치는 사람들이 있는 거지. 썩을... 나도 고함치는 거나 연습해볼까. 왠만하면 다 통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말이 괜히 있는건 아닌가 보다.



"녹음이라고요??!!, 저도 이제부터 녹음할 거예요. 좋게 대해주었는데 말이에요" 인사과 직원은 핸드폰을 켜더니 녹음을 시작했다. 과장되게 행동을 한 것을 보니 적지 않게 당황한 듯 하였다. 



'좋게 대해주었다고?? 좋게 대해준 사람이 내 탓을 세 번이나 하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냥 나도 내 말이나 해야겠다.



"소리는 안 지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불안 증세로 약을 먹고 있어서, 주변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해요"

"제가 언제 소리를 질렀어요?!!!"

"지금도 지르시잖아요!!" 



티격 태격 하다가 이 쓸모없는 말다툼이 멈춘 건 의외의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회의실 데스크에 '뚝뚝' 하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당황해서 손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손으로 감당이 안되어서 옷으로 막았다. 눈물샘이 폭팔한 것이다. 갑자기 울다니 쪽팔렸다. 



인사과 직원은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곧 표정을 바꾸어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표정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과와 함께 부드러운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아... 미안해요. 제가 ㅇㅇㅇ 탓을 하려고 한건 아니에요. 정말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느꼈다면 다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



인사과 직원이 휴지를 건네어서 주었고, 시원한 캔 커피도 하나 주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나니 나도 화가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사과를 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나 봐요. 저도 기분 상하게 한점 사과드립니다"



몇마디 더 나누고 나서 "몸 관리 잘해요" 라는 마을 끝으로 이렇게 인사과와 면담이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훈훈하게 끝났는데, 아마 싸운 상태로 끝났으면, 내 마음이 더 안좋았을 것 같다. 거의 2시간을 진행하였던 면담이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진이 다 빠진다. 이런 상황들을 겪고 나면 원래도 힘든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든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환멸감이 든다. 그냥 모든 게 다 싫어진다.





근데 재미있는 건 무엇인지 아는가? 



내가 당한 상황은 약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사과 직원이 이렇게 내 탓만 하는 것은 애들 장난 수준이다.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예 면담 자체를 안 하는 곳도 있고, 조사 자체를 안 하는 곳도 있다. 반대로 면담을 몇 번씩이나 진행하여 힘들게 하는 곳도 있다. 피해자를 더욱더 괴롭혀서 정신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목적은 단순하다. 피해자를 퇴사시키는 것이다. 본인이 편하도록 말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인사과 직원이 스스로 말을 했듯이, 사장님이 '제대로 조사해서 보고해'라는 말이 없었으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 본인 마음대로 진행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

'아마 다른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처럼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 운을 고통을 받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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