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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18. 2023

[16] 성희롱으로 보복성 신고를 당하였다

가해자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가해자가 나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사과에 신고하였다.



참고로 가해자와 나 둘 다 남자이다. 남자가 남자를 성희롱으로 신고한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면 이렇게 보복성 행동을 한다. 크게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거나, 작게는 같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다거나, 근무태만으로 신고한다거나 한다.



세상살이 참 재미있다. 정말로. 피해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 약자의 억울함에 강자는 더 강하게 약자를 짓밟는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고 조사가 하나하나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목격자들이 인사과에 불려 가며 관련 진술을 하였고, 나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용히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직장 내 괴롭힘 조사가 마무리되었나?' 하는 기대감에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인사과의 답변은 내 예상과는 아예 달랐다. 내가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를 당했으니, 조사를 해야 하고 면담을 하자는 것이다. 



'응?? 직장 내 성희롱?' 

'내가 잘못 들었나?'

'내가 성희롱으로 신고를 당했다고?'



일단 당황스러웠고, 그다음으로는 무서웠다. 회사생활에서 성희롱 신고는 정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회사뿐만 아니라, 까닥 잘못되면 성희롱을 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서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회사생활, 결혼생활,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져 버린다.



갑자기 온몸에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성희롱범이 되어 더 이상 사회생활이 불가능 해지면 어떡하지?'라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현재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찾아온 큰 충격과 걱정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평소 한 알 먹던 약을 두 알 챙겨 먹고 인사과에 면담을 하러 갔다.



인사과는 문서를 주었다. 내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작성한 문서와 비슷한 형태였다. 문서 맨 위에는 직장 내 성희롱 조사라고 적혀 있었으며, 그다음에는 신고자와 피 신고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고자 : 가해자

피신고자: ㅇㅇㅇ 대리



당황스러웠다. 내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가해자가 나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를 한 것이었다. 담당 인사과 직원들도 내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인사과 직원들도 당황스러웠겠지. 나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말이야'



한 사람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한 사람은 직장 내 성희롱 조사. 서로 서로 물고 뜯고 난리난 개판인 것이다. 인사과 직원이 조심히 말을 하였다.



"어... 이게...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하... 눈에 안 봐도 뻔하다. 나는 보복성 신고를 당한 것이다. 가해자는 나를 괴롭힌 이유로 내가 성희롱적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성적으로 문란하여 이를 고치기 위해서 나를 훈계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다.



내가 성희롱 신고당한 이유를 쭉 살펴보니, 3가지였다. 나머지 2개는 직장 내 성희롱과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었고, 남은 한 가지는 여직원의 대답에 따라 달랐다. 이 대답에 따라 내가 직장 내 성희롱이 될지 안 될지 정해지게 되었다.



그 내용은 이전에 작성한 신고문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해당 여직원이 최근에 결혼을 했는데, 신혼생활 관련하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구는 어떻고, 집은 어떻고 이러한 이야기이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웃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솔직히 각방을 쓰고 싶어요. 가스가 많아가지고 너무 부끄러워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자나요. 그리고, 눈치 안 보고 시원하게 뀌면서 유튜브 보는 게 너무 좋거든요"  



서로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여직원과 이런 대화를 한 것을 가해자는 말을 조금 바꾸어 이렇게 포장을 하였다. 



"ㅇㅇㅇ 대리는 여직원이 불편해하는 와중에도 신혼생활에서 생리적인 현상을 가지고 집요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ㅇㅇㅇ 대리의 앞으로 회사생활에서 좋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이를 훈계하고자 한 행동했습니다. 본인의 회사생활을 도와주기 위해 한 행동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다니 말이 안 됩니다"



"제가 성평등기관에 문의해 보니 이러한 행동은 성희롱이 맞다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ㅇㅇㅇ 대리는 여직원을 성희롱을 하였습니다. 제가 ㅇㅇㅇ 대리에게 한 행동들은 여직원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입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불안해졌다. 적혀 있는 상황은 사실이고,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나는 성희롱을 일삼는 문란한 사람이고, 가해자는 본인의 후배를 위해 훈계해 주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성평등 기관의 인정 이야기도 있다. 가해자도 제대로 준비해서 나를 신고한 것이다.



이게 참 무서운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이다. 증거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상황을 조금만 바꾸면 이렇게 피해자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런 것으로 2차 피해를 받기도 한다. 



가해자가 상황을 본인이 유리하게 주변 동료들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목적이 내 멘탈을 부시는 것이라면 성공하였다. 이 이후로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내 남은 인생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희롱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걱정이였다. 괜히 들쑤셔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나 싶기도 하였다. 



'역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가...'

'괜히 신고했나...'

'나만 참으면 되었었는데'



이런 생각이 밤새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모든 목격자 조사가 마무리되었고, 나의 성희롱 혐의에 대한 결론이 나왔다. 어떨 것 같은가??



나는 성희롱 '경고'를 받았다. 요약하자면,



 동료직원인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성희롱은 아니다. 다만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판단. 피신고자가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였으면 하여 성희롱 '경고'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주장한 성희롱을 막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은 성희롱과 연관성이 없으므로, 따로따로 조사한다.

 


추후 민사소송 이야기를 할 때 따로 말하겠지만, 성희롱은 매우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경고라도 주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누군가 성희롱으로 생각되는 행동 자체를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따로따로 조사를 한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이 연관되어 버렸으면 나는 정말 끝이 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막상 성희롱 조사 결과가 나온 후부터는 잠을 잘 잤다. 그 전에는 정말 한숨도 못 잣는데 말이다. 걱정할 거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신기하지 않는가?



사람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성희롱 조사에 관한 상상을 하면서 잠을 못 이루었는데, 막상 결과가 나오니 더 이상 상상할 게 없었다. 내가 상상하던 것에서 현실로 돌아와서 그런지, 몸도 이전보다 건강해졌다. 뇌에서 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잘 자게 되더라. 참 아이러니 하다. 



사실 이건 정신질환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만 갖고 있어도 앞으로 살면서 발생 할 수 있는 정신질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를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뇌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헛된 망상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은 것이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비 오는 날 길을 가면서 하수구에 빠질까 봐 혹은 천둥에 맞을까 봐 걱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조심하면 좋지만, 쓸데없이 허황되고, 크게크게 걱정을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헛된 상상이 나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명확하게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헛된 상상을 하면서 걱정을 하거나 불안함에 떨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결국, 나는 직장 내 성희롱은 아니지만, 성희롱으로 '경고'를 받았다. 아마 가해자는 내가 직장 내 성희롱으로 경고를 받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이 가해자의 착각은 나중에 민사소송에서 본인의 발등을 찍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남은 건 나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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