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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May 02. 2023

[20]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결과를 받았다.

집에서 2주간 쉬고 난 후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원래는 코로나 차단 휴가로 1주일만 쉬는 것인데, 여전히 양성반응이 나와서 1주일 더 쉬게 되었다.



쉬는 동안 블로그에 많은 글들을 적었고, 앞으로 어떤 글들을 적을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블로그 댓글 중에 '너무 필요한 정보인데, 제가 글을 잘 못읽겠어요 ㅠㅠ' 라는 댓글이 있어서 한참 고민을 했다. 



'이거 어떻게 하지' '이 사람만 이런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그런건가' 하고 '글을 못 읽겠어요' 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문자보다는 영상으로 공부를 하고 정보를 얻기 때문에 글을 어려워 한다고 하더라.



시대가 바뀌니 나도 따라가야만 했다. 나는 꼰대가 되기 싫다. '글을 못 읽는 사람들이 많으면 영상으로 전달을 하면 되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유튜브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동안 블로그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나는 자존감이 매우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회사에 출근을 하는 것이 2주전 과는 다르게 크게 무섭지는 않았다.





회사 생활도 평범하게 하였다. 나에게 눈총을 주는 윗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냥 그대로 받아드렸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발생한 일인데' 말이다.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윗분들이 가해자를 가만히 냅둔것도 문제가 있었다. 




'내탓만 있는게 아니야, 당신들 탓도 있어'



라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하루 이틀 신고 결과가 나오기 까지 회사생활을 지속했다. 물론 사람들이 나를 피하고, 어려워 하는 것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약을 먹으면서, 마음을 안정 시켰다. 확실한건 2주 전만큼 죽을만큼 힘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버틸만 했다.



마침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나서 한 달 후 3/10일 신고 결과를 받았다.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것도 아니고, 아침에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니 메일이 와있었다. 




[안내] '22.1차 직장 내 괴롭힘 신고처리 결과




매일 제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원한 대학의 합격 여부를 확인하는 것처럼, 오랜 취업 준비 기간 중에 면접을 본 회사 합격여부를 확인하는 것처럼, 심장이 매우 쫄깃했다. 그래서 인지 선뜻 읽기 버튼을 누르지는 못 하였다.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2022년 2월 이 한 달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었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위해 정보를 정말 많이 찾아보았고,

신고 메일을 쓰기 위해 정말 많은 책을 보았고,

서점을 가기 위해 도심지로 향하다가 공황장애가 와서, 번화가 한가운데서 펑펑 울었고,

처음 정신의학과에 방문하여 진정제, 불면증 약 등을 먹었고,

전문 상담사에게 찾아가 상담을 받았고,

갑자기 회사에서 가해자를 만나 공황장애가 와서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고,

목격자로 적은 동료직원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시선을 느꼈고,

회사에서 내가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고, 나를 모르는 사람인 척 지나가는 사람들도 만났고,

코로나에 확진되기도 하였고,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블로그를 시작하기도 했었다.  






이 많은 일들이 한 달 만에 일어났다니, 내가 지금 직접 글을 쓰는데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태원 클래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유명한 대사라 이미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감옥에서 만난 조연과 주인공이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음식점 사장이 되어있었고, 조연은 여전히 조폭의 부하였다.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서로 이루어 놓은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닫고 조연이 하는 말이 있다. 



"그와 나는 시간은 그 농도가 너무나도 달랐다"



이 한 달간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농도 짙은 시간이었다. 아마 이 기간이 없었다면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까지 돌아보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책도 정말 많이 읽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게 생각해 보았다. 긍정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회사생활이 달린 그 긴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왜 깊게 생각하느냐?'라고 의문을 가질 수가 있을 것 같다. 당시에 내 생각을 블로그에 적어 놓은 게 있는데 그대로 옮겨 보겠다. 





마지막으로, 저 자신에게 제엘 안타까운 건, '지금까지 내가 잘못 살아왔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는 거예요.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현재의 저 자신은 이 선택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잖아요. 근데 그 선택들의 결과가 참 슬픕니다. 주변 관계가 무너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나 자신이라니... 그래서 이런 생각이 계속 드나 봐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생황들 속에서 



말을 잘못했거나, 

행동들을 잘못했거나, 

대응을 잘못했거나,

 

등등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한 선택과 생각들이 가해자 입장에서는 괴롭히기가 쉽고, 만만해 보이는 선택을 해왔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도 글을 적다 보니 책을 읽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제 장점 같기도 하네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된다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어요. 저 또한 꾸준히 스스로 극복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같이 노력해 보아요.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해 왔다. 많은 책을 보았고, 이리저리 많이 배우러 다녔다. 마침내 훌륭한 스승도 만났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당시보다 엄청나게 성장해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말이다. 



서론을 이렇게 까지 길게 적을 생각이 없었는데, 적다 보니까 길어졌다. 결과메일을 같이 보자.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신고 메일을 클릭하였다. 메일이 생각보다 길었다. 사내 직장 내 괴롭힘 처리 절차를 안내해 주었고, 신고인 사고내용접수 → 신고인/피신고인 조사 → 참고인 조사 → 심의위원회 순서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6명의 목격자 조사를 진행하였고, 노무사 및 변호사의 자문도 받았다고 한다.



중요한 말만 적어 보겠다.



신고하신 사항은 위원회에서 심의한 결과,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 되었다. 내가 이긴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마음고생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내가 이긴 것이다!!! 증거가 하나도 없이 신고했다. 나의 억울함을 모두가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못하더라... 그래서 결과에 대해 매일 매일이 불안했었는데,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을 받았다. 



정말 어렵게 인정받았다. 나는 결과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같이 축하할 사람도 없어서 혼자 스스로를 축하 파티를 열었다. 내가 직장내 괴롭힘 신고한 것을 주변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내 상황과 과정을 이야기 하면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어.. 그래 많이 힘들겠다' 하고 분위기가 축 처진다. 하핫. 가족이나 여자친구에게도 결과를 이야기 해보았지만 떨떠름 해 하더라 하하...



아마 다들 나에게 무슨말을 해줘야할지 모르는 거겠지. 그 마음 잘 안다. 그래도 나는 너무나도 기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막 껄껄 거리며 웃었다. 



하하핫!!!

하하핫...

하하...

...



같이 기뻐할 사람이 없는게 좀 섭섭하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나는 결국 같이 축하해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축하파티를 열었다. 이 날은 혼자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페리카나 반반 치킨에 클라우드 맥주를 먹었다.



혹시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인정받았다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 내가 진심을 다해 같이 축하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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