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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Apr 30. 2023

[19] 코로나 차단휴가와 블로그의 시작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중에 코로나가 걸려 차단 휴가를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코로나가 걸린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주장만 있고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목격자 진술을 5명이나 하면서 조사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에게 가장 큰 착각이 있었는데, 나의 억울함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착각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모두 한다. 




-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목격자 진술을 해줄것이다

- 나의 동료들이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 상황을 아예 잘 기억을 못 하더라. 그리고 나에게 발생한 일들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어떤 마음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건 당연한 것이다. 그 사람들도 그 사람만의 삶과 힘듦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기 바쁜대, 다른 사람을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한번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은 다른사람에 대해 10분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건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고, 당시에는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너무 서운했다. 아마 당신도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면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슬픈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다시 회사에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신고 후 나의 회사생활은 어려웠다. 주변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으며, 가해자를 어디서 만날지 불안했고, 늘 긴장된 상태로 있어야만 하는 정말 힘든 회사 생활이었다. 나에게 남은 휴가도 없었고, 현재 상황에서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그냥 힘들때 마다 정신의학과 약을 먹으면서 버티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코로나가 확진되어 차단휴가를 받았다. 이건 앞에서도 이야기 한적이 있다. 신이 나를 도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은 타이밍에 코로나가 확진되었다. 코로나가 확진되어 회사를 약 2주일간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있을 수 있었다.



이 순간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온전한 정신으로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아마 정신이 망가졌을 것 같다. 다른 피해자들 처럼 퇴사를 했을 수도 있겠다. 참고로 나는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하고도 회사를 그대로 다니는 몇 안되는 피해자 이다.






처음 3일은 정말 고생했다. 목이 부어오르고, 근육이 마디마디 저리고, 무엇을 먹어도 음식 맛을 못 느끼고 말이다. 나중에는 모든 음식 맛이 쓰게 느껴지더라. 결국 한 5kg 이 감량되었다. 3일이 지난 후로는 몸이 좀 괜찮아져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몸이 이전보다 괜찮아 졌다는 거지, 막 움직이고 그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나면서, 근육이 아파왔다.



막상 회사를 안 가니 집에서 할 게 없었다. 게임도 재미가 없었고, 영화를 봐도 재미가 없었다. 아마 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늘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다. 과연 회사에서 조사가 잘 이루러지고 있을지, 목격자들이 진술을 해주었을 지 이러한 생각 뿐이였다.



그래도 마음은 한결 평온했다. 



가해자를 만날 위험도,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가 있었다. 시간이 정말 남아돌았다. 책을 보고, 낮잠 자고 이렇게 하염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봐야 겠다'






혹시,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 할 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가해자도 아니고, 인사과도 아니고, 주변의 눈총도 아니였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보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게 제일 힘들었다. 무슨일이 발생하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나도 알 수없었기 때문에, 안개낀 거리를 걸어가는 느낌이였다.



안개낀 거리 속에서 눈앞에 무언가 갑자기 튀어나올까봐 걱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인터넷에서는 내가 참고하거나 마음의 위안을 받을 만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검색을 해보아도 대부분 노무사와 변호사의 법률 관련 이야기 일뿐이였다.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가 없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핸드폰도 안되고, 지도도 없는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야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나... 그렇다. 앞길이 막막한 그 느낌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두려움'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바르게 가고 있는 건지 모르는 그 '불안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 한 사람들의 앞에 가시밭길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무슨 일 이 펼쳐질지 안다면, 정신적으로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고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상황이 괴롭힘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겪었던 이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적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쉬면서 정보를 공유할 준비를 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잘 읽히는 글을 써야 했다. 



나는 책을 종종 보기 때문에 안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읽히지 않는 다면, 정보의 가치가 떨어진다. 본인 마음대로 적어놓은 글은 개인 일기장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글이 잘 읽히는 글인지에 대해 공부를 했다. 책을 한 3권 훝어 보고, 유튜브를 통해 공부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요약이 되었다.



1. 문장을 짧게 써라

2.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라

3. 소리 내어 읽어 보아라



그 다음으로는 검색이 되어야 했다. 아무리 글을 써봐도 검색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검색이 되는 글을 또 공부를 했다. 제목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글 안에 중요 단어는 몇 번 들어가야 하는지 글의 길이는 어떠한지, 이미지는 어떤 것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했다. 끝이 없더라. 적당히 공부하고 마무리 지었다.



이 당시 집중력은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집중력보다 훨씬 높았다. 공부하는 대로 머리에 쑥쑥 들어왔다. 그다음으로는 초반에 어떤 형식으로 글을 풀어 나갈지 고민하였다. 쉽고 체계적으로 써야 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결심하였을 때 누구나 따라서 진행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현실적인 이야기도 적어야 했다. 



정보 전달은 쉬웠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힘들었다. 늘 말하지만 사람은 극도록 힘든 기억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생존본능이다.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 기억은 나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생존본능이 힘든 기억을 기억에서 지웠다. 



이 생존 본능을 억누르고, 잊어버리려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제 시작하려는 순간 나의 심연이 다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심연에 대해서는 이전 [13] 화를 참고하길 바란다. 아주 고약한 놈이다. 나는 가족과 지인, 여자친구에게도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또 하나의 나이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이 너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팩트 폭격을 한다. 나는 소중하지 않고 쓸모가 없기 때문에 버림받았다며 말이다...



"너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자나, 이제 와서 뭘 하려고?"

"내가 겪은 일을 가지고 정보 공유하려고, 집에서 할 것도 없는데 뭐 어때?"



"글 쓰는 게 쉬운 줄 아냐? 며칠 하다 말걸?"

"..."



"사람들이 너가 쓴 글을 볼 것 같아, 아무도 안 볼껄??"

"..."



"이제는 글을 쓰고, 쓴 글을 외면당하면서 네가 쓸모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할 셈이야?"

"아!! 몰라. 집에서 심심해, 이거라도 할래"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심연이 뭐라고 말을 걸어도, 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려야겠다는 마음 뿐이였다. 그냥 블로그로 정보를 공유해야 겠다는 마음 뿐이였다. 단순했다. 그래서 심연이 말을 걸어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혹시 나의 직장 내 괴롭힘 블로그 첫 글이 궁금할 수도 있으니 링크를 하나 남겨 보겠다. 2022.02.26 이 발행일이니 벌써 1년이 훨씬 넘었다. 마음이 참 오묘하다.



https://blog.naver.com/cacao24/222658296233



첫날은 '두 명'이 내 글을 보았더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나의 심연이 또 말을 걸어왔다. 



"몇 날 며칠을 공부하고, 하루종일 열심히 적었는데 두 명 밖에 안 봤네 ㅋㅋㅋ"

"그래도 2명이나 봤네,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ㅎ"



이때 주된 감정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두 명' 에게나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이었다. 집에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1~2 일에 하나씩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3~4 명의 방문자 수를 보면서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때마다 나의 심연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해도 방문자 수가 늘지 않는걸?? 너 글쓰기 재능 없는 거 아냐?? ㅋㅋㅋ"

"그래도 필요한 사람은 찾아서 볼 거야. 네이버 검색 페이지 1~10까지 다 찾아본 나 같은 사람 말이야"




이렇게 블로그 글을 적던 어느날이 였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일이 일어났다. 내 블로그 글에 댓글이 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라는 감사 인사였다. 처음 달린 댓글이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벙 쪄서 댓글을 바라 보았다. 그러고는"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눈물도 조금씩 흘러나왔다. 이 눈물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마 나의 속마음을 그대로 댓글로 달았으면, 상대방은 '뭐 이런 인간이 있지?' 하면서 무서워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댓글에 대한 답변은 매우 짧게 달았다. 나의 속마음은 여기에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저는 자살충동까지 올 정도로 많이 힘들어하는 상황이었어요. 충동의 주된 이유는 '나는 세상에 쓸모가 없다는 감정' 이였습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 가족, 지인, 여자친구 등 모두가 '나의 잘못'을 말하고 있었어요.



그 누구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돈으로 산 상담사와의 공감 말고는 제 편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아무도 저를 이해해 주지 않았어요. '그거 하나 못 버티냐, 나약하다'라고 손가락질받았어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약한 동물은 점점 사라지듯이 '나도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이해를 받고 싶었어요. "너의 마음이 풀린다면 원하는 대로 해"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불편한 시선과 말투뿐들이었어요. 저를 슬슬 피하는 사람들 뿐이었어요. 이런 상황에 있다 보니 점점 이러한 생각에 빠지게 되었어요.



'나는 세상에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주변에 피해만 준다'

'나는 쓸모가 없다'



하지만 당신께서 달아주신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댓글 덕분에, 아직 나는 세상에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조금 더 힘내서 살아볼게요. 조금 더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공유해 볼게요. 나는 쓸모가 없지 않아요. 



나는 쓸모가 있어요. 그래서 아직 살아가도 돼요. 기억을 끄집어내어 글을 적는 게 가끔씩 코피도 나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볼게요. 지금 이 감정을 잊지 않고 싶어요.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었는데,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렇게 댓글을 적으면 겁나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적지는 않았다.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이렇게만 적었다. 이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갈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위해서 노력하기는 어렵지만,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가능하더라. 참 신기하다.




내가 나 자신보다는 나의 가족을 위해 용기내어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한 것 처럼, 사람은 본인 보다는 타인을 위해서 무언가 할때 더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거 같다. 좀 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쓸모없다'라고 말하던 나의 심연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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