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성적인 회사원 Mar 27. 2023

[3] 괴롭힘 신고에 대한 정보가 이렇게 없다니...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게 정말 힘들었다.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뒤는 없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고소도 하고 싶고, 손해배상도하고 싶고, 산재도 받고 싶고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마음만 앞서있었지, 당시의 나는 이런 것에 대해 단 하나도 몰랐다. 법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신고를 하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말 하나도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은 나의 '지독한 분노'와 '솟구치는 억울함' 이였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것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는 못하였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부끄럽고 쪽팔린 것이 1순위 였고, 부모님이 나를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2순위였다. 그래서 나중에 말해야지 하고 미뤘다.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다.



다음날,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에 직장 내 괴롭힘을 검색하였다. 쓰러지고 난 다음날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검색을 하였지만, 원하는 정보는 찾지 못하였다. 대부분이 노무사와 변호사의 글과 소송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직장 내 괴롭힘 법이 2019년에 생겨서 정보가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속 답답함이 더 커지더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보았는데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너무나도 불안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러다가는 정신이 더 망가지는 것 같아서 다음날 정신의학과를 예약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예약해 본 정신의학과 였다. 무엇이라도 의지할 곳과 도움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무 정보도 없고, 부모님께도 부끄러워 말씀드리지 못하고,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검색을 해보고 하루 종일 변호사와 노무사의 유튜브를 보고, 글을 읽는 것이었다. 머리가 점점 지끈지끈 아파왔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는 정보는 찾지 못하였으나, 법에 관련된 형사고소, 민사소송, 산재 이러한 정보는 많이 있었다. 이거라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하나하나 정리해 두었다. 이는 나중에 내가 블로그로 직장 내 괴롭힘 정보를 공유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검색을 통해 두 가지 확실한 건 알았는데,



1)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여도 우리 회사는 10명이 넘어서 조사는 회사에서 진행한다는 점. 

2) 회사는 보통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회사에서 조사한다고 하니 나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의 예시는 아니지만, 직장 갑질에 대한 뉴스를 몇 개 보았다. 정말 놀라웠다. 좋은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였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억울한 마음에 목숨을 끊은 사람

 - 신고 후 가해자가 역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람

 - 회사에서 피해자를 보호해 주지 않고, 더 몰아붙여 퇴사를 강요당한 사람



이뿐만 아니라 다른 뉴스들의 공통점은, 회사가 문제 상황을 조용히 덮으려고 하는 경향이 많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고한 피해자를 문제 삼아 퇴사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검색을 통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좋은 이야기는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무턱대고 신고하면 분명 나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은 뻔했다. 그래서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에 있는 책들을 쭉 살펴보고 책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는데,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문제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본다는 점이었다. 



나의 앞선 시대의 훌륭한 사람들이 본인의 해결 방법을 쓴 것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똑같은 문제는 아니더라도, 나와 비슷한 문제 상황에서 누군가는 고민을 했을 것이고, 해결을 했다. 그리고 이 해결 방법은 반드시 책으로 적혀 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직장 갑질 119의 박점규 님이 지은 직장갑질에서 살아남기'라는 책을 내가 검색할 수 있었다면 훨씬 편안하게 신고를 진행했을 것 같다. 지금은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지만, 당시에는 이 책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약자들을 위한 정말 훌륭한 책이다. 



회사생활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서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만 검색을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직장갑질이라고 검색을 해야 나오더라. 참고로 '직장갑질 119'라는 조직을 알게 된 것도 나중의 일이다. 이 사이트만 미리 알았어도 정말 마음고생을 덜했을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직장갑질에 고생하고 있다면, 제일 먼저 '직장갑질 119'라는 사이트로 들어가길 바란다. 변호사 노무사들이 오픈 카카오톡방에서 무료로 상담해 준다. 내가 '직장갑질 119'의 도움 받은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이 되고 난 후의 일이다. 추후 따로 이야기하겠다. 



정보 수집이 부족했던 것은 아쉽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당시의 내가 최종적으로 꺼내든 책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허브코웬의 협상의 기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는데 협상의 기술이라니 의아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책들을 하나 둘 훝어 보다가 이 책을 들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뭔가 픽! 하고 깨달음이 왔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나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나의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 책을 보고 난 후 나는 나의 접근 방법을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어렴풋이 생각하였다. 이 신고를 나와 회사 간의 협상이라고 보는게 나에게 유리했다.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는것이 아니라, 나의 신고를 회사와 나의 협상으로 봐야 회사가 좀 더 나를 좋게 보고 나를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협상이라고 하면 서로서로 간 도움이 돼야 하는데 내가 가진 카드는 없어서 협상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내 상황에서 협상은 무리였다. 협상은 동등한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가해자를 혼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해서 회사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고 메일은 감정에 호소하고, 제발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방향으로 작성하였다. 이 사람에게 피해를 본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고 작성했다. 회사 입장에서 이 사람은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라고 정말 열심히 적었다.




'나는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인데 무슨 말이지?' '조사를 부탁하는 입장이라고?'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매우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나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조사를 부탁해야만 하는 이런 상황이 무척 슬프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게 정말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였다. '나는 피해자인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오히려 도움을 요청해야 하다니....'



하지만, 학교 폭력이나 집단 괴롭힘에 대한 뉴스기사만 봐도 대부분의 책임자들이 귀찮아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사자는 억울할지 몰라도 조사 담당자는 이 사건에 엮이기 싫어하고, 귀찮아한다. 어린 학생들의 상황이 이러한데, 직장인인 나에게도 이러한 상황이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다. 



학생들 간의 괴롭힘에도 이렇게 대응하는데, 직장에서는 내 신고에 더 관심을 안 가질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회사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이익으로 움직인다. 조사 담당자에게는 이 신고는 본인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주면 주었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가로 내가 신고하는 사람은 회사를 10년 이상 다닌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을 조사해야 한다. 이 사람에게 밉보이기라도 하면 조사 담당자는 회사 생활이 어려울 수가 있다. 그렇기에 담당자는 본인의 몸을 최대한 사리면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 대로 진행 될 경우 나에게 답은 없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분하고 억울하지만, 감정에 호소하여 부탁하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래서 담당자의 관심을 받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움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추가로 권력도 같이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당자는 귀찮아해도 위에서 한마디 내려오면 제대로 조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다 책의 도움이다.



오늘도 저녁 늦게 부모님이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응급실에 실려간 후 이틀 쨰이다. 두 분은 내가 휴가를 쓴 이유를 모른다. 내가 상황을 솔직히 말하지 않고, 휴가가 남아서 다 사용해야 한다고 둘러댔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초조하였다. 오늘따라 부모님의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건 착각이었을까? 



정보도 없고,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 뻔했지만 나는 부모님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가야만 했다. 내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물불 가리지 않겠다 다짐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능력 모든 것을 사용해서 이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리라!!



가능한 일을 크게 키워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이용해야만 했다. 나는 감정에 호소하는 신고 메일을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였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였고, 여러 가지 좋은 글을 보고, 공감하는 글쓰기를 익히고, 잘 읽히는 글을 쓰는 법을 공부했다. 나를 도와주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날 새벽, 신고 메일을 완성하였지만, 나는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였다. 막상 신고 하려고 하니, 또다시 겁이 난 것이다. 그동안 했던 망상들이 다시 나를 덥쳐오기 시작했다. 가시 밭길을 헤쳐가가기는 무슨, 나는 겁쟁이였다. 결국 신고 메일을 보내지 못하였다. 이 날은 잠이 오지 않지만,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나는 겁쟁이다'라고 펑펑 울면서 눈물로 베개를 적시면서 말이다. 

이전 03화 [2]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의 위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