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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Mar 28. 2023

[4] 정신의학과에 방문했다

나는 사실 정신의학과를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신고 메일을 완성했지만 보내지 못하고, 잠들었고, 잠에서 깨어났다. 이 날도 역시 불면증으로 잠을 설쳤다. 깨어났지만 개운한 느낌은 없었고, 오히려 더 피곤하고 찌뿌둥한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신고 메일을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온 몸을 덥쳤다. 나는 요즘 온 신경이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나에게 불면증은 이전부터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웃으며 억지로 넘기던 시절, '웃는 게 일류다'라는 헛된 이야기를 믿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불면증의 원인은 단순했다. 그날의 괴롭힘 당한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다음날에는 어떠한 괴롭힘을 당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생각을 하느라, 다음 날 무슨 일을 당할지 내 망상에 두려움 떨면서 새벽 3~4 시까지 잠을 못 자는 일이 많았다.



불면증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다는 게 가장 무서운 것 같다. 나 자신을 매일매일 갉아먹는다. 나의 악순환의 사이클은 다음과 같다. 



'아 잠을 또 못 잤어, 너무 피곤한데 오늘 하루는 어떻게 버티지...'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잘 경우 정신적 고통이 밀려온다. 잠을 못잔것에 대한 자책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것에 추가로 피곤하기 때문에 정신이 예민하다. 머리가 지끈 거리며 하루 종일 매우 예민해진 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예민할 경우 인간관계가 서서히 망가진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상황에서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주변 사람들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하나 둘 나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을 나는 또 느낀다. 그리고 그날 밤 '그렇게 행동했으면 안 되었는데...' 하고 후회하느라 또 잠을 못 잔다. 다음날 무슨 괴롭힘을 당할지 걱정하는 것에 추가로 나의 예민한 행동에 따른 후회의 감정까지 밀려오는 것이다. 또다시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잔다.



악순환이 +a 가 되었다.  



다시 예민해진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시작한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 직장 상사 모두와의 관계가 멀어져 간다. 점점 혼자가 되어간다. 이것이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정말 미쳐버린다. 



악순환이 +aa 가 되었다.



또다시 잠을 못 잔다. 예민해진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인간관계가 망가지면서 점점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내 잘못이라고 자책을 하는 순간들이 더 많아진다. 내가 쓸모없고, 주변에 피해만 주는 존재라고 느껴지며, 점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악순환이 +aaa 가 되어 최종국면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마음을 놓고, 이제는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악순환이 끊기게 된다. 물론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거짓말 같은가?? 나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겪어본 나로서는 이것이 사실인 것을 알고 있다. 세상에 혼자가 된 느낌. 쓸모가 없는 느낌. 주변에 피해만 주는 느낌. 이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밀려온다. 나는 뉴스기사에 나온 자살을 통해 이제 편해지고자 행동한 그 사람들을 이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정신의학과를 찾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정신의학과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생각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람들이 생각나고 그랬다. 예약을 하였지만 '굳이 이런 곳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서만 그렇지, 외국에서는 정신의학과 방문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미국 드라마나 외국 영화를 보아도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심지어 영화 '조커'에도 상담하는 장면은 중요한 내용이 될 정도로 자주 나온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선입관이 강하게 있었을 뿐이다. 정신과를 간다는 게 내가 미친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럽고 가기 싫었다. '그래도 예약을 했으니 가야지', '내가 왜 예약했을까' 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하나하나 옮겨서 정신과에 방문했다. 



세상에 혼자가 된 느낌이라 정신은 벼랑 끝에 서있고, 삶을 유지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하고, 포기하면 편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매 순간 고통을 느끼고 있던 나였다. 방문해서 의사와 상담을 하고, 약을 먹는게 과연 효과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내가 정말 싫었던 정신의학과에 찾아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엇인가가 나를 지켜주나 보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살아남으라고 말이다. 우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정신의학과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서 정신의학과를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 내가 정신의학과를 예약하게 된 상황을 한번 이야기 해보겠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정보를 찾아 하루 종일 검색에 매달렸을 때, 어디선가 꼭 정신의학과를 다니라는 글을 보았다. 당시 몇 시간 동안 지속된 검색과 나오지 않는 정보로 인한 허탈감으로 내 정신은 멍해져 있었는데, 이 글을 보고 멍한 정신으로 나도 모르게 정신과에 방문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이라고 표현을 한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필요한 정보는 얻지 못하였지만, 아예 가치가 없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고통받은 한 사람이 작성한 "정신의학과를 꼭 다니세요"라는 말에 나는 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그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 덕분에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피해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뜻깊은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고통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글을 남긴 그 사람처럼 말이다. 그 글을 다시 찾아 감사 댓글을 달고 싶었는데,  찾지 못하였다. 그러니 대신 여기서 말해야겠다.



제가 정신의학과를 방문할 수 있도록, 고통속에서도 그 글을 남겨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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